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이 자라난 고향인 나사렛의 회당에서 선포하신 말씀이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삶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첫 가르침입니다. 사회변혁을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읽고 마음에 새기는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읽은 구절은 이사야가 전한 야훼의 날에 대한 것이며,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61:1-2을 읽어 봅시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느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보복보다 은혜를 선택하신 예수

하나님 나라를 표현하는 주님의 은혜의 해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지금의 정부와 우리의 삶에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인용한 예수님의 말씀(누가 4:18-19)과 비교하면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사야서에는 있는 데, 그 구절을 읽은 예수님의 말씀에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느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는데, “우리 하느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한다”는 부분을 예수님이 생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보복보다는 은혜를 선택하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사야서 61장 11절까지 계속되는 구절에서는 강대국의 횡포에 신음하고 억압받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그들의 명예와 재산을 회복하고 사회적 관계가 역전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을 행하는 주체인 야훼 하느님은 어떤 분입니까? "나 주는 공평을 사랑하고, 불의와 약탈을 미워한다. 나는 그들의 수고를 성실히 보상하여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그들의 자손이 열방에 알려지며, 그들의 자손이 만민 가운데 알려질 것이다. 그들을 보는 사람마다, 그들이 나 주의 복을 받은 자손임을 인정할 것이다."<8-9절> 오랜 세월 동안 고통과 수고를 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약속하는 하느님은 공평을 사랑하고 불의와 약탈을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계속적인 식민지 상태로 있으면서 이방인들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한 맺힌 사람들에게 은혜의 때는 그들을 억압하던 사람들에게 보복의 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약의 예언서와 시편에서는 이스라엘의 구원과 함께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세력의 심판이나 멸망을 기원하는 구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뿌리 깊은 유대민족의 원한은 지금은 강대국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탐욕과 전쟁의 광기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복은 잘못하면 애꿎은 사람들을 괴롭히게 되기도 합니다.

"유대인이여, 하느님은 당신만의 하느님이 아니야"

유대민족이 혈통의 배타적 순수성을 신앙의 순수성으로 삼을 만큼 억압했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주변의 작은 민족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강대국들에 의해서 파괴와 살육과 억압을 당했습니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생명같이 여기던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것도 그들이었고, 찾취와 수탈을 지속적으로 했던 것도 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사에서는 독일의 게르만족에게 무참히 학살당했고, 유럽 전역에서 반셈족주의에 희생당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나 지금의 이스라엘은 어떠합니까? 과연 그들은 자기들을 괴롭혔던 그 당사자들에게 항의하거나 보복할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오히려 그들의 힘을 이용해서 주변의 애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괴롭힙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오랜 식민지 상태에서 정치 종교 지배자들의 유대주의가 극에 달해서 유대 민중들을 수탈하고 사마리아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을 경멸하고 억압했습니다.

나사렛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들을 해보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시돈의 사렙다 과부와 시리아의 나아만을 예로 들어서 배타적 유대주의와 대상이 잘못된 보복심리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도 위대한 조상이며 메시아의 전조라고 생각하는 하느님의 예언자 엘리야는 이스라엘에도 과부들이 많았지만 시돈의 사렙다에 있는 과부에게로 보냄을 받았고, 그의 제자 엘리사는 이스라엘에 문둥병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을 고쳐주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당신들이 믿는 하느님은 당신들만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지명수배로 쫓기는 몸이 된 엘리야를 시돈의 사르밧에 있는 한 과부에게로 보내집니다(열왕기상 17:8-24). 엘리야는 그곳에 숨어 지내면서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이 떨어진 그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병들어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는 기적을 일으켜서, 야훼 하느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시리아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 장군이 이스라엘에 문둥병을 고치러 왔을 때, 이스라엘 왕이 곤경에 처한 것을 엘리사가 면하게 하였습니다(열왕기하 5:1-27).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하여 그대로 행한 나아만 장군을 낫게 하였습니다. 이 일로 엘리사는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를 위협한 '유대주의자의 이방인 혐오'

예수님이 소위 이방인에 대한 야훼 하느님의 구원행위를 예로 든 이유와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이 극도로 화가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혈통이 다른 이방인은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심지어 “하느님은 게헨나 불의 연료로 삼기 위해서 이방인을 창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유대인들은 이방인은 경멸했습니다. 자기들이 경멸할 정도로 만만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주의자들의 이방인 혐오는 두 가지 점에서 하느님의 뜻에 어긋납니다. 하나는 자기들만이 하느님의 구원을 받았다는 배타주의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식민지시대(BCE 587년 이후, 혹은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는 결코 배타적 유대주의가 아닙니다. 마태에 의한 예수님의 족보에도 이방의 여인들이 들어갈 정도로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다음은 유대주의자들의 적대감의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지배하고 억압했던 세력이 아니라 자기들보다 약하고 만만한 상대를 적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장군의 구원 이야기를 들은 유대인들은 더욱 분노하여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동네 밖으로 내쫓고 벼랑으로 몰아세우며 위협합니다. 자기들의 자존심을 훼손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살기 가득한 그들을 뚫고 예수님은 걸어나옵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백향목이 사라진 두로와 시돈

이스라엘은 지금도 여전히 이러한 민족적 감정과 미국과 유럽의 중동지배 전략을 내세워서 중동에서 미국의 충견 노릇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근현대사에서 유대인을 경멸하고 반목했던 사람들의 앞잡이가 되어 그들과 자기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파괴한 레바논의 국기 중앙에는 성서에서 백향목이라고 말하는 삼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에 두로의 히람 왕이 그 백향목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지금의 레바논 중심부에 있습니다. 그런데 1978년 이후 이스라엘이 자행한 여러차례(7회)의 폭격으로 레바논엔 백향목이 없다고 합니다.

미국은 중동의 민주화를 내세워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폭력을 묵인합니다. 미국은 전혀 중동의 민주화를 원하지 않으며, 그들의 민주화란 친미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은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서 중도의 제도적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합법적인 정치 세력들을 불법 이슬람 과격세력으로 규정합니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입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에 창설되었고, 하마스는 이스라엘 점령정책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 민중봉기 과정에서 1988년에 창설되었습니다. 그들의 현실적인 목표는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미국의 중동 지배전략에 반대하기 때문에 불법 폭력세력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강자는 맘대로, 약자는 당하기만"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진정으로 바라지 않는 것처럼, 중동의 평화를 바라지 않습니다. 평화를 빌비로 안보 장사를 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취할뿐입니다. 1967년 소위 6일 전쟁 이후 중동 지역에 유입된 무기의 80%는 미국산이며,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간의 영토협정을 중재하면서 이스라엘이 아랍 영토를 점령하는 것을 국제적으로 추인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이스라엘의 1391수용소를 비롯한 감옥에는 1만여명의 아랍인들이 수감되어 있지만,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국가의 감옥에는 이스라엘인이 없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중동을 비롯한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이 누구인지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를 침략하는 구실은 언제나 자국의 방어와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자위권은 유엔 안보리의 휴전결의안을 뛰어 넘습니다. 반면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공격할 권리가 없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병사 1명이 죽으면, 온 세계가 떠들썩하게 보도하며 살인자를 폭력적 테러리스트라고 규탄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수백 수천명이 학살 당해도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중동의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라고 합니다.

촘스키는 이러한 상황을 『펠로폰네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강자는 맘대로 하고, 약자는 당할 수밖에 없다.” 이는 현실적인 국제문제에서 어쩔 수 없는 원칙 중 하나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억압받는 사람에게 이루어질 것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은혜와 보복의 때를 바라는 마음에서 보복을 없애라고 요구합니다. 나 자신의 명예와 재산의 회복을 말하는 은혜의 때가 누군가의 죽음을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은혜와 보복이 시이소처럼 연결되어 함께 붙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으로 한 사람이나 집단에게 은혜는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게도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그 보복의 대상이 전혀 다른 사람일 때에 그것은 보복이 아니라 애꿎은 화풀이가 되거나 자기 욕망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이스라엘이 증오와 보복을 하려면, 자기들의 조상들을 지배했던 로마의 후예들이거나 홀로코스트라고 하는 학살을 자행한 히틀러의 추종자들이거나 반유대주의를 선동하며 경멸했던 유럽인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들과는 한통속이 되어 이익을 나눕니다.

오늘 이스라엘과 미국의 만행은 스스로 야훼 하느님의 자녀임을 포기하고 편협한 민족주의나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의 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포한 야훼 하느님의 은혜는 세상을 속이는 보복이 아닙니다. 공의를 사랑하고 불의와 약탈을 미워하시는 하느님의 은혜는 이제 그들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서 학살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불의와 약탈을 자행하는 이스라엘과 미국보다는 지금 고통받고 생명의 위협에 놓여 있는 레바논의 민중들에게 하느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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