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어제 저녁 병원에 입원하며 만 24시간이 지났다. 다행하게도 검사 결과는 유경이도 나도 모두 정상수치가 나왔다. 24시간 수액을 맞으며 미음과 죽을 먹고 있다. 우리의 건강에 큰 이상이 없어서인지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102회 총회에서 총장 인준이 있었던 목요일 저녁부터 나는 이 싸움에 본격적으로 끼어들게 되었다. (사실 그래서 나보다 앞서서 싸워준 학우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 후 민주한신을 위한 신학대학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삭발과 단식투쟁까지 생각했던게... 그 후의 행동들 중 큰 희생을 감안해야만 했던 것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자퇴서 제출과 삭발/단식 투쟁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4학년인데 그냥 조용히 다니다가 빨리 졸업하지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말이다. 그에 대한 답을, 내가 어떤 고민 끝에 결단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지난 날을 회고하며 지금도 그 결단에는 변함이 없음을 확인하며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다. 나도 언젠가 변질될 수 있기에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단식 3일차에 썼던 일기에서 언급했던 내용이다. 나는 신학생이다.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더불어 신학‘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부끄럽게도 책만 봤다. 머리를 채우려고만 애를 썼다. 가슴 속에 뜨거움이 있었지만 성적을 올리고자 열을 올렸다. 불의에 화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불의를 못본 체 하였다. 다른 사람의 몫이라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려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러다 이번 사태를 보고서 크게 깨달은게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배운게 아무 소용이 없구나...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 내가 배운대로 행할때야 비로소 그 지식이 살아 움직이고 내가 배운 신학이 비로소 숨을 얻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알면 행한다. 알면서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나는 진정으로 모르고 있던 것이다. 주님께서도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그 믿음이 살아 숨쉬게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위의 생각과 연결이 되어 밀알 비유가 떠올랐다. 한 알의 밀알이 썪어 없어져야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내가 청소년기 때 하나님께 고백하고 절실하게 호소했던 찬양들이 있다. 사명, 밀알, 보내소서 등 이 찬양 가상 내용은 내가 바로 그 밀알이 되겠다고, 어딘가에서 나의 썪어 없어짐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들어난다면 그곳이 어디는 나를 보내달라는 찬양들이다.

내 앞에 지금 그러한 때가 찾아왓다고 생각했고 뒤도 안보고 썪어지려 앞으로 나아갔다. 비록 내가 그 열매를 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위와 같이 생각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저하거나 또 다시 도망친다면 부끄러워서 더 이상 신학도 못하겠고 교회 사역도 못할 것 같았다. 더 나아가 목회의 길을 가지 않으려 할 것 같았다. 나는 이 길을 계속 가고싶다. 부끄럽지 않게 가고싶었다. 이러한 의지들이 나를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었다.

물론 고민이 되었다. 진학의 걱정과 등록금의 문제 등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해결되지는 않았다. 가장 나의 발을 잡은 고민거리는 가족이었다. 아버지와 두 명의 누나, 두 명의 매형, 그리고 조카들의 걱정도 발걸음을 무겁게 했지만 무엇보다 어머니가 컸다.

나의 어머니는 몸이 많이 좋지 않으시다.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었고 다행하게도 극복하셨다. 허나 매 순간 우리 가족들은 불안감을 가지고 산다. 그러한 어머니의 큰 소망은 하나뿐인 아들이 목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혹시나 아들에게 흠이 될까봐 밖에서 마음대로 화도 못내고 싫은 소리도 못하신다. 억울한 일을 당하셔도 속으로 앓는 그런 분이다.

가장 큰 걱정은 아직 나에게 남은 과정이 많이 남아있었고 농성에 들어갈 경우 그 과정이 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아들이 목사 되는 것을 보지 못하시고 하나님의 품으로 떠나 보내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사실 가장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진행했던 이유는 자랑스러운 아들 목사, 부끄럽지 않은 아들 목사를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적어도 삵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제대로된 목사가 되려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 일기를 빌어 걱정을 끼쳐드린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들과 매형들, 조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를 응원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고 마음 써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또한 단식자들을 더 고생했고 지금의 결과를 도출한 주역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은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역할을 했을 뿐이고 우리의 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수년동안 싸우고 있어준 사람들 덕분이고 우리에게 의를 위해 싸우라는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과 선배들 덕분이고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모양으로 움직여주신 목사님들 덕분이고 함께 싸워준 동지들 덕분이다. 무엇보다 한신대학교의 학생들 모두의 덕이다. 감사하다. 우리 서로가 서로의 긍지이자 자랑이다.

우리의 싸움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협상이 제대로 실행되어가고 있는지 다른 어떤 꼼수를 써서 또 도망가려는 모습을 제제하고 감시할 것이다.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우리에겐 아직 싸워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정동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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