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end(열려진 끝)

죽재는 “민담에 대한 脫神學的 고찰”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의 이야기인 마르코 복음서는 16장 8절까지라고 하는데, 신약학자 큄멜(Werner Kümmel)에 의하면 마르코 복음서 저자의 본래 의도대로 그것은 open end로 끝낸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이어갔다. ‘예수의 이야기에는 끝이 없다. 재미나고 신나는 이야기는 끝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다른 그의 글 “貧困의 사회학과 貧民의 신학”을 주제로 한 글을 맺으며, 자신의 글의 끝맺음은 ‘open end(열려진 끝)’라 하였다. 이 의미는 예수의 사역도 민중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을 그래서 누구도 끝낼 수 없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회적 약자와 빈자가 사라지는 유토피아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민중의 이야기는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계속되는 이야기로서의 민중교회

1970년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한국사회는 사회운동의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 되듯  ‘민중’은 ‘교회와 선교’의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민중교회는 1973년 3월 주민교회(성남)를 시작으로 1976년 12월 동월교회(서울), 1978년 9월 신명교회(서울) 등 3개의 민중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80년대에 들어서는 80년 11월 무등교회(광주), 81년 10월 청암교회(서울), 82년 12월 새봄교회(인천), 83년 10월 사랑교회(서울), 84년 4월에 세광교회(공주), 8월 소성교회(인천), 12월에 성수교회(서울), 그리고 한 달 뒤인 1985년 1월에 태백선린교회가 세워졌다. 그러한 가운데 비로소 민중교회의 선교협의체로서 1985년 1월 ‘한국민중선교협의회’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2년 뒤인 1987년에 ‘기장 민중교회운동협의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1년 뒤인 1988년 7월에 여러 교단의 민중교회연대체로서 ‘한국민중교회운동연합’이 설립되었다.

한 편, 1987년에 ‘기장 민중교회운동협의회’로 명칭을 변경하더니, 4년 뒤 1991년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민중교회운동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6년 뒤 1997년에는 ‘기장 생명선교연대’로 또 다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름을 왜 그리 자주 바꾸었는지, 그것이 필연적인 것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았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시대적 변화에 늘 민감하게 반응해왔던 민중교회 목회자들의 역동적인, 그래서 완결이 아닌 지속적인 변화로 이해하고자 한다.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잠언5:15)

해방신학자 구티에레쯔는 신학하는 자리와 주체, 선교하는 자리와 주체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져 주었다. 민중교회는 전태일의 죽음으로부터 신학의 자리와 선교의 자리가 ‘지금 여기’임을 자각하였고, 교회가 민중들과 함께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일꾼임을 자임했다.

▲ 지난 7월16일 <죽재 서남동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광주YMCA 강당에서 “죽재 서남동 목사 탄생 100주년 34주기 추모예배와 심포지엄 문화제”에서 논찬을 맡은 김종수 목사(사진 제일 오른쪽) ⓒ윤병희

민중교회들은 국가와 자본가들로부터 민중(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이 빼앗긴 제 권리들을 옹호하며 대신 투쟁하였고 그 권리들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민중교육과 훈련과정을 거치며 선교의 대상이었던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이 선교의 주체로 성장한 교회는 처음 선교지향을 잃지 않고 광야 40년을 지나 새로운 선교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하지만  민중이 선교의 대상에 머물고 만 채, 목회자와 선교활동가만 열심히 사역한 교회와 선교현장은 차차 사라지거나 흡수되거나 기성교회 혹은 시민사회단체 또는 복지기관 등으로 변해갔다.

급속하게 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민중교회와 선교는 끝없이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소명으로 부여 받는다. 이 소명을 무겁게 받아들이거나 자기 한계를 넘어선 교회와 선교현장은 스스로 진 십자가를 메고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생명선교연대는 회원교회가 바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짐을 나눠지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온 사역들을 상호격려하며, 무거운 짐을 조금씩 나눠질 수 있는 구조가 되도록 다양한 시스템을 구상해가야 할 것이다.

역사와 지향 그리고 지평

(1) 역사 - 민중교회와 선교의 원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1985년 1월 ‘한국민중선교협의회’가 창립된 시점을 민중교회 운동의 원점으로 본다면 33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인 만들어지기 이전에 주민, 동월, 신명, 광주무등, 청암, 새봄, 사랑, 공주세광, 소성, 성수, 태백선린교회에서 실시되던 빈민선교, 노동자선교, 의료선교, 협동조합선교, 장애자선교, 야학, 공부방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동들은 민중교회운동의 영역 밖이 되어버리고 만다. 소중한 역사적 유산을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는 민중교회운동을 사회운동의 한 영역으로서만 바라보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오히려 풀뿌리 민중교회의 선교운동사를 민중교회와 민중선교의 원점으로 삼아가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한국기독교장로회 민중교회운동연합이 1996년에 펴낸 [갈릴리로 가신 예수]의 부록에 기장 민중교회 연보를 소중한 역사로 기록해 두었다. 이 연보를 기점으로 이제 2023년이 되면, 민중교회와 선교가 시작된 지 50년째를 맞이하게 된다. 바라기는 논의를 통해 민중교회와 선교의 원점을 1973년을 기점으로 잡고 기장생명선교연대가 중심이 되어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역사위원회와 50년사 편찬을 위한 5년간의 프로젝트를 진행을 시켜나갈 수 있는 공감대를  기대해 본다.(미주 1)

(2) 지향 - 민중교회간 연대와 선교활동가들의 참여

기장 민중교회운동연합을 기장 생명선교연대로 명칭을 변경하던 당시의 상황은 일반 민중운동 영역에서 모두들 보따리 싸는 분위기에 젖어 스스로 ‘민중교회운동’을 무거운 짐으로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21세기의 주요한 키워드로서 ‘생명’과 ‘네트워크’를 새로운 지향점으로 붙잡고, ‘개방성과 다양성과 포용성’을 조직의 리더쉽으로 삼아가고자 하였다.

조직의 냉철한 자기비판은 뒤로 하고 아쉬운 점은 역시 민중교회간 연대가 그 이전에도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연대의 필요성이 사라졌으며, 민중교회 교인들 간의 조직적 만남은 기장생명선교연대가 아닌 다른 틀로서나 가능해졌다. 생선연은 교회나 선교기관, 혹은 시민단체, 복지기관에서 일하는 목회자 회원조직이 되었다.

최근 생선연 임원들은 이러한 아쉬움과 새로운 교회간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며 사안에 다른 연대를 모색하기도 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도들 간의 연대활동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렇기 위해 개방성과 다양성 그리고 포용성을 리더쉽으로 한 생선연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3) 지평

선교의 지평이 매우 넓어졌다. 기장생명선교연대 소속 회원들은 지역아동센터, 이주노동자센터, 청소년 대안학교, 장애인복지, 성매매여성 및 성소수자들의 인권옹호, 환경운동, 문화운동, 평화와 통일운동, 협동조합, 한일역사문제, 난민문제 등에서 다양하고 전문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다. 또한 선교지원을 받던 나라에서 세계로 선교지원을 하는 활동으로 그 지평이 매우 넓어지고 있다. 이렇게 넓어진 선교영역의 확장은 정의·평화·생명의 선교신학으로서 세심하게 기술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하부주제로 세분화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의 지평을 넓히려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 구심력이 있어야 한다. 구심력을 잃는다면 목적은 사라지고 목표가 목적으로 둔갑되기도 하며, 지탱가능하기 조차 힘들어 스스로가 진 자기십자가에 짓눌려 아웃되기도 한다. 생선연 회원들의 자원은 매우 훌륭했고 아직까지 여전히 훌륭하다. 다만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민중교회와 선교현장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역하는 목회자와 활동가들을 위해 각자가 지니고 있는 자원의 양과 질을 분석하여 조직적 활용을 통해 재생산구조로 만들어가야 한다. 조직은 구심력을 가져야 하며, 각기 튼튼한 구심력을 지닌 조직들과 연대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며칠 전 농목과 생선연이 함께 ‘마을목회와 협동조합’을 주제로 함께 공동과제를 풀어갈 하나의 고리를 만들게 되었다. 농목과 생선연이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과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민중선교활성화를 위한 목회자와 성도간의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해간다면 민중선교지평은 확실히 넓어질 수 있을 것이며, 서로 힘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재미있고 신나는 민중교회 이야기

서남동 선생은 ‘예수의 이야기에는 끝이 없다. 재미나고 신나는 이야기는 끝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했다. 서남동 선생은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며 ‘恨의 사제’라 명명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매우 낭만적인 감성을 소유한 분이라 생각된다. “민담에 관한 탈신학적 고찰”의 글 마무리에 죽재의 이야기의 끝을 남궁옥분의 노래로 잇는다며 노래를 소개한 바가 있다.(미주 2)

민중교회 사역자들도 죽재처럼 낭만적인 감성을 소유한 목회자들이 많았다. 멋지게 시를 읊고, 구성지게 노래하고, 아름답게 연주하고, 그러다가 둘러엎고 피터지게 싸우는 모습도 종종 보았다. 그렇다고 영영 안보는 원수가 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恨만으로는 민중교회를 계속할 수도 없고 선교의 동력을 삼아갈 수도 없다. 낭만은 恨을 넘어서는 동지들 간의 情이 있어야 하며, 이 情이 흥이 될 때 비로소 낭만이 된다. 恨과 情이 빠진 낭만은 집단의 興을 만들어 가지 못한다. 집단의 興은 다이내믹하다.

恨과 情이 깊은 한국-조선인의 興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건들을 만들어내며, 恨과 情이 어우러지면 폭력없고 타락하지 않는 興文化를 만들어낸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서로를 향한 존중과 깊은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興이 예배가 되고 축제가 될 때, 하나님과 뜻이 通하게 되며, 동지들과 연대체들과의 疏通의 리더쉽을 갖게 된다.

아마도 죽재가 지금 살아있었다면 역사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민중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고 기록했을 것이다. 또한 민중들이 역사를 바꾸어내는 현장에서 광장의 시민들과 함께 끝나지 않을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역동적인 민중신학을 발전시켜갔을 것이다.

Open end로서의 민중신학, 그리고 민중선교은 더욱 재미있게 신나게 계속되어야 한다.

김종수 목사(생명선교연대 회장)  1923kanto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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