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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은 오늘 여기서 성취될 수 있나하나님 나라의 대헌장 (5)
레온하르트 라가츠/신요섭 | 승인 2019.10.16 18:18

문: 이것이 팔복의 내용과 의미의 전부인가?

답: 이것은 주님이시오, 아버지이신 하나님 자신처럼 무한한 어떤 보물에 대한 하나의 시사일 뿐이다. 그것은 언제나 이 한 가지 점을 말한다. 즉 이 세상에서 주님이시오, 아버지이신 하나님에게로 완전하게 모든 정신적 현실에서 아주 근본이 되는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중요한 몇 개의 예들일 뿐이다. 그대는 그리고 세상은, 이 근본 사실을 모든 점에서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문: 팔복과 관련된 약속은 미래에 성취될 것인가 아니면 이미 현재에도 성취되고 있는 것인가?

답: 미래와 현재에 다 적용된다. 하나님 나라는, 이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팔복인 바, 약속인 동시에 성취이며, 미래적인 동시에 현재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왔고, 앞으로 올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가까이 왔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것은 예수 자신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들 가운데” 있다(누가복음 17장 21절). 하나님 나라의 권능은 명백히 드러났고, 우리는 그 능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보다 강력하게, 보다 충만하게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 나라란 주님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지배와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은 이미 지금 여기에 계신다. 그는 바로 지금 주님이며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으로 인해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배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사람은, 민족이든 개인이든 이미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시는 동시에 오신다. 그의 지배가 가까이 온다. 그의 계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판결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신 분이며, 지금 여기에 오시는 분이시다.

▲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와 있지만 오고 있기도 하다. ⓒGetty Image

따라서 팔복 선언은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 기다리는 사람들과 기다리던 것이 해소된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과 배부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하면서 이미 가지고 있다. 그들의 하나님은 오고 계시며 지금 거기 계신다. 단지 하나만 아는 사람은 진리의 반쪽만 보며 매우 잘못 생각한다. 약속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 약속이 성취될 때 기쁨에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런가하면 그들은 이미 행복하다. 즉 행복하게 될 것이 아니라 행복하다.

문: 팔복은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가?

답: 팔복은 장차 모든 사람에게 유효해야 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주님이시오, 아버지가 되시고자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도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다만 제자들에게만 유효하다. 왜냐하면 제자들만이 팔복이 유효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제자들은 주님이시오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모시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고 있으며 하나님 나라를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산상설교 전체와 팔복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이제 모든 사람이 제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팔복은 산상설교 전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초대인 것이다. 세상인가? 하나님인가? 불행인가? 축복인가? 선택하라!

문: 하지만 우리는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즉 팔복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살았던 그 당시와 오늘날 우리 시대에 유효한 것인가?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도래가 곧 있을 것으로 보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의 약속은 그의 명령과 마찬가지로 최후의 심판 때 비로소 유효한 것이며, 따라서 현세의 피안에서만 유효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많은 신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답: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하고 엄청난 오류이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사람들이 특별히 예수의 요구를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앞으로 언급하겠지만) 부당하게 높이 치켜세워서, 그의 요구가 불가능하거나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나 성취할 수 있는 것쯤으로 여겨짐으로써 생긴 작품이자, 신학이 기교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요구는 전적으로 성취 가능한 것이다. 마치 선장들이 맨 먼저 거친 바다로 나가도 된다는 항해를 위한 지시를 받는 것처럼 예수께서 후에 가서야 비로소 성취할 수 있는 어떤 요구를 제자들에게 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의 약속이 지금 여기서 유효한 것인 만큼, 그의 요규ㅜ는 반대로 지금 여기에서 성취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예수의 약속과 요구는 주님이시오,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계셨듯이 오늘도 계시며, 앞으로도 계실 것이다. 그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의 나라는 너희들 가운데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믿는 모든 사람은 이것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약속과 요구가 유효하다. 이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이다.

문: 그러나 예수의 선포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 중에 있지 않은가?

답: 그것도 옳다. 그것은 시작되었으나, 앞으로 완성되어져야만 한다. 그러기에 제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었으나 그 나라의 완성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요구와 약속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것이다. 팔복에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비로소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할 죽음의 폐지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지만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오늘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담고 있다. 이미 오늘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요, 애통하는 자들은 오늘 위로를 받아야 하고, 정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오늘 그 기갈이 해소되어야 하고, 오늘 평화를 위한 싸움이 있어야 하며, 오늘 의를 위해서 박해받는 사람이 기쁘고 즐거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팔복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는 것을 뜻할 뿐아니라 오고 있다는 것도 의미한다. 그러나 팔복은 오늘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를 요구하며 오늘부터 유효한 약속을 준다. 팔복은 하나님을 주님이시오, 아버지로서 깨닫고 인정할 뿐아니라, 그밖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도 당연히 믿는 인간의 기본자세를 뜻한다.

이제 우리가 좀 전에 말한 것을 반복하건데 산성설교는 오늘날에도 확실히 유효한 것이다. 산상설교가 가지고 있는 진리는 영원한 것이요, 무조건적인 것이며 시간과 주위 여건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문: 그러나 산상설교가 실제로 구현되는가?

답: 나의 대답은 이렇다. 즉 십계명은 구현되고 있는가? 십계명은 구현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닌가?

레온하르트 라가츠/신요섭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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