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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일시적인 전시물이 아니다성령과 성경 (2)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19.12.07 18:16

칼빈은 9장에서 “성경을 떠나 직접 계시로 비약하는 광신자들은 경건의 모든 원리를 파괴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불어판 제목이 좀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말씀을 희생시키고 영을 찬양하는 자들에 반대하여.” 이것은 당대의 재세례파들 같은 광신자들에 대한 경고라 고할수있습니다.

개혁교회의 신앙원리

9장에서 우리는 상당히 중요한 개혁교회의 신앙원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과 성령의 긴밀한 상관성”에 대한 칼빈의 견해입니다. 일반적으로 칼빈 당시나 오늘날의 열광적인 사람들이나, 성령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칼빈이 말하는 것처럼, 성경 없이 하나님께 직접 이를 수 있다는, 소위 ‘직통계시’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우리 주변의 이단들 가운데 성경 66권외에,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말씀, 직통계시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시 재세례파, 광신적 신자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달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오도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광란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 성경의 교리를 감히 유치하고 천한 것이라고 멸시할 만큼 그들을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그 영이란 도대체 어떤 영인 가라고 나는 묻고 싶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그들이 대답한다면, 그 확신이야말로 참으로 조소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다른 영으로 조명되지 않았음을 그들은 인정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우기, 이들 중 한 사람도 그 영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도록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의 저작에서 훌륭하게 증명된 대로 보다 높은 존경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I.ix.1).

여기서 칼빈은 사도 바울이 삼층천에 이끌려 다녀 온 후에도 계속하여 율법과 선지자들의 교리를 연구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고후 12:2 이하), 디모데에게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 4:13)고 말했던 것, 그리고 성경에 대하여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라고 찬사를 보냈던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성경의 효용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궁극적인 목적지에 인도하는”데 있기 때문에, “그것이 순간적인 것이라거나 일시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악마적인 광란”이라고 비판합니다. 지난 7장 에서 우리는 “성령의 내적 증거”를 그 때 그곳의 저자와 1차 독자,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를 같은 궁극적인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사역이라고 말했습니다.

8장에서 칼빈은 다시 성경을 읽는 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누구든지 그때나 오늘이나 궁극적인 목적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오늘 새롭게, 성경에 없는 것을 성령께서 들려주실까 하고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로 그 영은 ‘자의로 말하지 않는’ 영으로서 예수님께서 친히 과거에 말씀하신 것들을 저들의 마음속에 넣어주시며 암시해 주시는 영인 것이다 (요16:13). 그러므로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의 임무는 아직 들어보지도 못한 새로운 계시를 만들어내거나 어떤 새로운 교리 자체를 날조하여 용인 된 복음의 교리에서 우리를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복음이 말하는 바로 그 교리를 우리의 마음에 새겨주는 데 있는 것이다(I.ix.1).

“말씀과 성령의 긴밀한 상관성”

칼빈은 이제 2절에서 성령은 성경에 의해 인정된다는 말을 합니다. 성경이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 되듯이, 성령은 성경에 의해 다른 영들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검토를 통해서 성령이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존재와 부합되는 영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같이 성경의 검토를 거칠 때,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는 제쳐두고 다른 교리를 우리에게 강요하는 영이 있다고 하면” 이는 마땅히 허망하고 거짓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갈1:6-9)고 말합니다.

만일 성령이 인간이나 천사, 혹은 어떤 다른 무엇의 규범에 따라 판단된다고 하면 틀림없이 성령은 그 지위에서 격하될 것이며, 또한 그렇게 말하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성령은 노예상태에까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그 자신과 비교되고 자신 안에서 고려된다고 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손상을 입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일종의 검토를 받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에 대하여 자신의 위엄을 확립하고자 하시는 검토인 것이다. 우리로서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임재하시는 것만으로 도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사탄의 영이 성령의 이름으로 침투하지 않도록 성령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형상대로 인식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시다. 그는 변하실 수도, 자신과 다를 수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분명히 그는 성경 안에서 일단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그대로 영원히 존속하실 것이다(I.ix.2).

칼빈은 3절에서 개혁교회의 강조, 개혁교회 신학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는 “말씀과 성령의 긴밀한 상관성”에 대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성경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성경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알려지고, 성경은 단지 성령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됩니다.

따라서 성령에 대한 호소는 말씀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성령 없는 말씀은 죽은 문자에 불과하고, 언제나 죽은 정통주의를 생산할 뿐입니다. 말씀과 성령을 분리하면, 언제나 터무니없는 새로운 교리들이 양산되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객관적 계시에 부합하지 않는 일반적인 경험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제1권 9장 3절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일종의 상호결속 관계를 통하여 말씀의 확실성과 성령의 확실성을 결합시키셨으므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시는 성령께서 빛을 비추어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에 말씀에 대한 완전한 신앙이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박스)

칼빈에 의하면 이러한 견해는 열광주의자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결코 죽이는 문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칼빈에 의하면, 성경이 죽이는 문자가 되는 경우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분리되어 마음에 감 동을 주지 않고 그저 귓전을 스쳐갈 때입니다(고후3:6). 그러나 “그 문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에 효과적으로 새겨지며 그리스도를 제시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는’(시19:7) 생명의 말씀”(빌2:16)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임하면 즉시 말씀을 폐기할 생각으로 일시적인 전시를 위해 자신의 말씀을 인류에게 보이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동일한 성령을 보내셔서 그 권능으로 말씀을 나누어주신 것은, 그 말씀에 대한 효과적인 확증으로 자신의 일을 완성하시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두 제자의 마음을 열어주셨다(눅 24:27, 45). … 하나님 의 자녀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영을 떠나서는 전적으로 진리의 빛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며, 따라서 말씀을 주님께서 자기 영의 조명을 모든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도구로 알고 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고 있는 영은 사도들 안에 거하였고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 이외의 그 어떤 다른 영이 아니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끊임없이 말씀을 듣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I.ix.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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