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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를 때 시작한 사랑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2.19 17:3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보여주셨으니, (그 사랑이란) 곧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로마서 5,8)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당연한’ 사실로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받아들일 때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피조물 특히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해방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은혜의 해’를 열어주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이렇게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랑을 인지하지 못했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 가운데 둥지를 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어디까지 사람의 아들일까요?

사람의 몸에서 나오고 사람들 가운데 살며 먹고 마시고 울고 웃습니다. 일하고 다투고 놀림당하고 배척당하고 고소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일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된 하나님의 아들이 사는 삶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인간적입니다. 인간적인 하나님의 아들이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결정적인 한계는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아들일 수 없음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려 했고, 그의 죽음에서 그가 영락없는 사람의 아들임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겐 그것이 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그것은 시작이었습니다. 죽음에 갇힌 그를 해방시키심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전에 사람들은 그들이 알아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종이 죽은 다음에야 비로서 그 죽음이 자신들과 관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사 52,13-53,12). ‘지금’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강요했던 그의 죽음에서 새삶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 이 예수 사건은 더 크고 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그를 알 수 없었던 때에 이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건은 하나님의 영원 가운데 있는 세상 전체를 위한 사건입니다.

시공간속의 세상을 하나님의 영원으로 인도하는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지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사건입니다. 그에게서 이 사랑을 보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 그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고 새삶을 살게 하시며 그가 펼치시는 새역사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에게서 얻어지는 우리의 새삶을 새하늘과 새땅으로 이어지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위의 본문은 새삶을 사는 이들이 그때그때마다 새로이 털어놓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과 함께 감사하며 충만해지는 오늘이기를. 예수 사건에서 보여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새삶을 살게 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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