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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가면종교의 혁명(1)
레온하르트 가라츠/신요섭 | 승인 2020.03.11 17:42

문: 하나님과 율법 사이의 큰 대립 및 예수께서 이 대립을 폭로함으로써 일으킨 혁명은 종교와 관계가 있는 것인가?

답: 물론이다. 그것이 종교와 관계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제단에 예물을 드리는 일과 형제와 화해하는 일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했을 때 이미 이것을 암시했었다. 사실 우리는 예수께서 도덕의 가장 큰 적대자이며 또한 종교의 가장 큰 적대자라는 이 엄청난 역설에 직면해 있다. 예수는 동일한 이유에서 도덕과 종교의 적대자이다.

문: 그것은 물론 엄청난 역설이다. 이런 역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성모독으로 보일 것이다. 종교와의 관계에서 이런 역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예수의 말씀을 보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장 1-18절)

문: 예수께서 안중에 두고 비난한 이른바 “경건을 가장한 위선자들”이라고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답: 그들은 종교인들이요, 그 당시로서는 특히 바리새인, 즉 “자신을 남들로부터 구분하는 자들”인 바로 그들이었다. 오늘날 그들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위선으로 사는 것은 아닌지 그리스도인의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Getty Image

문: 그러나 예수께서는 늘상 있는 경우를 두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례적인 경우를 두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답: 부드럽게 말한다면, 예수는 그런(경건을 가장하는) 경행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는 실제로 (일반적으로 그렇게 되는) 상례요, 본질을 말하고 있지 단지 (이례적으로 그렇게 경건을 가장하는 사람도 있다는 의미에서) 변질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문: 그러나 종교와 경건을 옹호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진지하고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은가?

답: 바로 그렇게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에 대항하는 것이다. 세상의 자녀들과 또한 업신여김을 받는 세리나 죄인들과는 아무튼 논쟁으로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또한 사두개인과 같은 단순히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도 거의 관계하지 않고 오히려 무엇보다도 경건한 사람들, 엄격한 사람들, 그런 일로 존경받는 사람들과 관계한다.

문: 그렇지만 오늘날의 우리 목회자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가?

답: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예수와 같지 않다. 즉 그들은 종교를 장려하고 있기에 예수는 그들과 싸운다.

문: 우리 교회의 신도들은?

답: 그들은 경건에 신경을 쓴다. 예수는 그들과 싸운다.

문: 우리 신학자들은?

답: 그들은 신학을 보호한다. 예수는 그들과 싸운다. 특히 그들이 성서를 다루는 방식과 싸운다.

문: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을 그저 “위선자”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일반적으로도 그렇게 번역되어 있는가? 그들은 모두 그들이 믿는다고 내세우는 것을 (누가 뭐라 해도) 진지하게 믿고 있지 않은가?

답: 그렇다. 그들은 그것을 믿는다. 그러나 어떻게 믿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문: 그것은 무슨 말인가?

답: 우리는 예수께서 “위선”(Heuchelei)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실제로 그들에 대해서 하신 이 말을 다르게 번역하고 달리 말해야 한다. 즉 가면을 쓴 자(Maskentraeger)라고 하거나 혹은 단순히 “배우”(Schauspieler)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대에는 배우들이 가면을 썼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가면을 쓰는 것은 좀 다른 방식이지만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께서 저들과 저들이 섬기는 모든 것, 저들이 옹호하는 온갖 것을 비난하시고 제자들에게 인상적으로 경고하신 것은 바로 과시(Schaustellung)이다. 과시는 그런 사람들과 그들의 천성에 특징적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이 우리가 위선이라고 부르는 허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나 경건과 관련된 해악 중 가장 큰 해악인 것이다. 예수께서 바로 이런 위선의 문제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것은, 아직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하고 있는 그의 엄청난 혁명의 가장 깊고 예리한 형태인 종교의 혁명을 의미한다. 기독교 내에서 이것은 예수야말로 종교와 경건의 가장 큰 적대자라는 저 엄청난 역설을 뜻하는 것이다.

레온하르트 가라츠/신요섭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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