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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 Vadis Domine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4.19 17:30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나를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올 것이다.(요한복음 13,36)

도미네, 쿼 바디스? 이 말은 영화로 유명해졌지만 성서에 이미 나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예수 부활 이후가 아니라 이전에 했던 말이라는 점이 영화와 다릅니다.

본문에서 예수는 자신을 기다리는 일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은 채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주십니다. 이것은 아주 오래 새계명입니다. ‘서로’라는 말은 제자들이나 그리스도인간으로 한정될 수 없는 말씀이고 ‘서로’의 범위는 이웃과 이주민과 난민을 포괄합니다(레 19장).

그런데 베드로의 마음에 지금 꽂힌 것은 이 명령이 아니라 “내가 가는 곳에”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더이상 따라갈 수 없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고, 그 의문이 예수의 명령을 삼켰습니다. 도미네, 쿼 바디스? 전에 주님께서는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12,26), 지금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하시면, 그곳이 어떤 곳이기에 그러시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당연히 생길 것입니다.

▲ Annibale Carracci, 「Quo Vadis Domine」(1602) ⓒWikipedia

그의 질문과 그가 놓친(?) 사랑의 명령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예수께서는 그의 질문에 지금은 할 수 없지만 나중엔 따라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이 십자가의 자리임을 모르는 베드로는 목숨까지도 내놓고 따르겠다고 하지만, 예수께서는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고 차디차게(!) 말씀하십니다. 이를 배반이란 말로 바꿔 말한다면 사랑과 배반이 서로 마주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나중에 예수를 따르가게 된다면, 배반과 도피의 유혹을 넘어설 만큼 그의 사랑이 그의 속에서 싹트고 자라고 성숙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서로 사랑하라는 말 속에는 예수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단계에서 그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은 크지도 않지만 다른 기대들과 뒤섞여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이후 그가 주님을 따를 때 그 다른 기대들은 소멸되고 주님에 대한 사랑만 그에게 남았을 것입니다. 이 사랑이 그로 하여금 주님 계시는 곳으로 향하게 만들고 그가 원하지 않는 곳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끌려 가게 만들 것입니다. 그 사랑은 쿼 바디스라는 물음을 이렇게 삼킬 것입니다. 지금의 한계와 벽을 넘어 영원에 다가가게 만들 것입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랑의 힘으로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시대를 맞는 오늘이기를. 사람에 대한 두려움 대신 사람에 대한 존중이 자리잡는 시대가 되도록 하나님 사랑이 사람 사랑으로 드러나는 이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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