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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빛을 담는 질그릇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7.30 16:58
▲ 깨지기 쉽고 보잘 것 없는 겉모양의 질그릇에 그리스도를 아는 빛을 하나님께서 담아두셨다. ⓒGetty Image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갖고 있습니다. 이 탁월한 능력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고후 4,7)

본문의 저항을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아주 작고 단순한 것 같은데 손에 잡히지 않을 때의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조용히 내려놓고 ‘이해’를 기다림이 제일 좋은 길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것에 매달려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멈춥니다. 어리석음입니다. 이 역시 질그릇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 많은 그릇 가운데 가장 깨지기 쉽고 값싼 그릇이 질그릇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자들임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를 무시하는 말은 아닙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숨과 삶’을 받았기에 사람입니다. 그러한 자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있으니 그의 존재 자체가 놀라움이고 은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토록 높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돌아서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지금도 계속 진행중입니다. 이 상태를 가리켜 마치 흙으로 돌아간 것 같은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지나칠까요? 그를 가리켜 바울은 질그릇이라고 명명합니다.

이 질그릇에 하나님은 또 하나의 창조작업을 하십니다. 흙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듯 앎의 빛을 질그릇에 비추십니다. 그 앎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드리워진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앎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함은 그에게서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에서, 그의 죽음에서, 그의 다시 살아남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았을 때 그는 그리스도로 고백됩니다.

앎의 빛으로 채워진 질그릇, 재창조된 질그릇입니다. 그것은 더이상 깨지기 쉬운 값싼 그릇이 아닙니다. 그릇은 그릇 자체보다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옛속담을 조금 변형시켜 말하면 사람은 뒤웅박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가장 값진 그 앎의 빛을 담아두시고자 하십니다. 그 빛은 우리의 속을 밝힐 뿐 아니라 우리의 밖을 밝게 할 것입니다. 그 빛은 우리에게서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빛의 근원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잘 압니다.

빛을 담은 질그릇, 모순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드십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은총의 소유자들입니다. 우리의 답답함이나 우리의 어리석음을 넘어 비쳐오는 빛으로부터 우리는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 용기를 얻습니다.

질그릇이라고 더이상 한탄하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제2의 창조를 통해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그 뜻을 따라 살고 그의 나라를 향할 것입니다. 세상이 어두우면 어두울 수록 그 앎의 빛은 더욱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그 앎의 빛을 따라 즐겁게 살아가는 오늘이기를. 그 앎의 빛을 지닌 질그릇으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당당하게 사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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