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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는 희망, 온다는 믿음“감사할 수 있는 은혜”(이사야 40:27-31)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0.11.03 17:01
▲ 하나님은 우리에게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새힘을 주신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매 순간이 이미 주어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인지를 알 수 있는,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확증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도움은 우리가 원치 않아 하는 두려움과 고난의 상황을 사도 바울과 같이 속사람을 온전하게 하는 방향으로 돌릴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이 도움은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부정적인 마음에서 제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마음의 순간이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한 주간 우리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때로 별 것 아닌 일을 부풀려서 스스로를 괴롭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때마다 성도님들은 마음의 순간이동을 하셨나요?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뜻(의, 진리)을 드러내며 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농부들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씨앗을 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씨앗을 심고,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보고, 가을과 겨울 사이에 수확을 합니다. 그리고 열매를 거둘 수 있었음에 감사를 합니다.

농부가 아닌 이들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한 해 나에게 해주신 은혜들을 떠올리며 감사를 고백하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일들을 통해 감사합니다. 그래서 거둘 것이 없었거나 삶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을 때, 감사드릴 일이 없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오늘은 우리 자신이 농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거두어들일 만 한 열매의 관점에서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버려지고 태워져야 하는 쓸모없는 가라지(쭉정이)가 아니라 수확할 만 한 열매로 여겨주심에 감사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수확하실 만 한 ‘열매’로 여겨주심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겨주시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이 은혜에 응답하는 삶, 먹을 만 한 열매로서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귀한 열매가 되기 위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첫 구절은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시작합니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주전 720년 경 북이스라엘이 멸망합니다. 그리고 주전 587년 경 남유다도 멸망합니다. 이 전쟁들의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남거나, 포로로 끌려가거나,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됩니다.

이런 삶의 어려운 시기, 포로의 시기는 몇 년이 아니라 몇 백 년 동안 여러 세대를 거쳐 진행이 됩니다. 이토록 나아지지 않는 삶이라면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라고 불평과 불만을 하나님께 토로할 만하지 않을까요? 이해가 될 만 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늘 조급해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불평과 불만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다음 구절에서 옳지 않다고 말 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너, 아직도 하나님을 몰라?’, ‘너 아직도 하나님에 듣지 못했어?’ 그리고 ‘영원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라는 선포는 “구원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담겨진 말씀입니다.

이사야 본문은 바벨론 포로생활, 하나님의 대리자인 고레스를 세우셔서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낸 사건 등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오 가져가신 이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의 과정에 대해 조급해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그저 31절의 말씀과 같이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면 되는 줄 믿습니다.

“29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30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31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포로로 끌려갔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먼 길을 걸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그 날에 너희들은 이미 지쳐있을지 몰라도 그 때가 되면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힘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불평과 불만은 계속 머물지 않고 지나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하고 거룩한 자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 모든 방편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민돈후 목사님 기억하시죠? 저와 한 달에 두 번 정도 만나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공부를 하면서 나누었던 부분이 추수감사절인 오늘 성도님들과 나누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결핍과 풍요. 오늘 나에게 다가온 키워드. 구체적으로는, 내가 이곳 도계에 사는 것을 은연 중에 계속 ‘결핍’이라고 여기며 결핍된 의식과 상황을 내가 생산해내고, 내가 정당화하고, 내가 그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는 걸, 오늘 선명하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에게 결핍이 있다는 믿음은 실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기에 지금 다시 선택한다. 결핍이 아닌 관점으로, 다른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면, 나는 이 도계에서 사는 시간에 대해 정말로 감사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원하는 시간대에 맘껏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있었는가? 공부하기 이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다.

또 있다. 딸 세아도 안전한 보호 속에서 학교를 매일 가고 있다. 요즘 도시 아이들은 일부러 분교 있는 곳으로 이사까지 와서 학교를 다닌다던데, 우리는 이미 누리고 있다. 도계가 주는 선물이다.

나는 그간 내 집에 결핍도 느꼈다. 더 나은 집. 더 멋진 집. 더 넓은 집. 더 나은 인테리어와 더 나은 공간구조. 그러지 못해 나는 이제껏 불만족스럽고 불행하다고 “은근히”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 결핍 또한 착각이다! 내가 만들어낸 거다.

결핍이 아니라면 나는 지금 내 사는 집을 어떻게 보게 될까? 당장 내가 원하는 커튼을 사다가 설치할 거다. 당장 창고 벽에 낀 곰팡이를 제거할 거다. 공사할 때부터 붙어있던 현관문의 비닐부터 당장 떼어낼 거다. 왜? 나는 지금 가장 만족스러운 곳에 살고 있기로 선택했기 때문이고, 그 선택에 걸 맞는 관심에 따라 관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원하는 곳에 산다 해도, ‘결핍의 마음’이라면 그곳에서도 점차 맘에 들지 않는 면들을 찾아내어 이것저것 때문에 역시 여기도 불만족이라며 다른 더 나은 것을 찾으려고 바둥거리게 될 것이다.

나는 자동차에 대해서도 결핍을 느낀다. 더 멋지고, 더 첨단인, 잔고장이 없는 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역시 결핍 없이 바라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큰 사고 없이 우리 가족을 안전하고 빠르게 다닐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큰 감사를 느끼게 된다.

언제든 나는 좋은 차와 좋은 집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핍이 동기가 아니다. 나는 지금 충분다. 나는 지금 풍요롭다. 나는 지금 다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누리는 것부터 감사하고 관심을 두기로 다시 선택한다.

나는 나의 결핍을 용서한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실제로 결핍된 적이 없다. 나는 늘 풍성했다. 내 앞길조차 가만히 있었는데 그냥 펼쳐졌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계획한 게 몇이나 되더냐? 더 이상 아무런 죄책감도, 앞일에 대한 두려움도 없으리라.” 감사합니다.

결핍이라고 느꼈던 부분들이 오히려 감사의 제목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고백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내 삶을 주관하시며, 온전하게 만들어가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인도하셨습니다. 전쟁에서 지기도 하고, 살던 땅이 폐허가 되기도 하고, 포로로 끌려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고, 오랜 시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응답이 없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일들을 통해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 가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진실로 소망하는 자들은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 구원의 계획’을 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경험들을 ‘온전해 지는 일’로 변환시킬 수 있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모든 삶에 ‘감사’로 고백할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모든 일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벌어지는 것들이라면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다르게 보기를 원하십니까? 감사로 바라볼 수 있으시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합니다. 감사할 수 있는 삶은 기적이고 또한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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