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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의 역사2020년 미얀마 민주화 항쟁은 왜 일어났는가 ⑴
문기홍(시드니대학교, 정부 및 국제관계학과 박사) | 승인 2021.06.10 16:16
▲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 ⓒ연합뉴스

지난 2월 1일 새벽 미얀마에서는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일이 벌어졌다. 2010년도 총선 이후 직접 통치의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던 미얀마 군부(땃마도, Tatmadaw)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주정권을 전복한 것이다. 2월 1일 이른 새벽 시간 군인들은 대통령, 국가 고문인 아웅산수찌,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민주화 운동 인사 등을 감금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날은 2020년 11월 8일 치러진 총선의 결과에 따라 의회를 소집하기로 되어 있어 주요 인사들이 수도인 네피도(Nay Pyi Taw)에 있었던 상황이다. 21세기를 사는 현재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는 군사 쿠데타의 소식에 소위 황금의 땅(Golden Land)라고 불리는 미얀마는 다시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민아웅흘라잉(Min Aung Hlaing)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땃마도는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며 성명을 발표하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 2020년도 1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부정하게 선거가 치러졌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NLD 정부 및 연방선거위원회(Union Election Commission)가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충분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으로 인해 국가적 분열이 초래되었으므로 2008년도 헌법 조항 417과 418에 근거하여 앞으로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것이 성명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후 쿠데타 정국은 급격하게 대치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쿠데타 발발 이틀 후부터 공공기관 의료 종사자와 공무원들은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 CDM)을 벌이기 시작했고, 소위 Z세대라고 불리는 미얀마의 젊은 세대는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군부 통치의 부당함에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민중에 중화기를 사용하여 폭력적 시위 진압을 벌이고 있고, 체포된 사람과 사상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에 따르면 6월 7일 현재 857명의 사망자가 나왔으며, 구금·감금된 사람의 수도 4,677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2015년과 2020년도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두 차례나 압승을 거두었다. 이를 통해 민간 정부를 수립하며 지난 1962년부터 계속되어온 군부의 직간접 통치에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 쿠데타를 통해 미얀마는 다시금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미얀마 군부 정권의 기원

지난 1962년 쿠데타를 통해 혁명 의회(Revolutionary Council, RC)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군부 통치를 시작한 이래, 미얀마의 직·간접적 군부 통치의 역사는 상당히 긴 편이다. 저명한 정치학자 게디스(Geddes)가 1999년도에 발표한 권위주의 체제와 민주주의에 관한 논문이 있다. 이 논문은 정치 체제 및 민주화 연구에서 여전히 많이 인용되고 있는데, 그녀는 이 연구에서 군부 권위주의 정권의 평균 수명은 7.3년이라고 제시를 하였다. 일당(single-party) 권위주의는 35.5년, 개인주의적(personalist) 권위주의는 18.8년인 것에 비해 매우 짧은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반영해보았을 때 2011년도 준민간정부로 권력을 이양할 때까지 지속된 군부 통치는 특이한 사례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약 50년간 지속된 군부 통치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가?

독립 이후 불안정했던 정치, 사회적 환경이 1962년 군부 쿠데타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미얀마는 소수민족 독립 세력과의 내전, 연방 정부 수립 문제, 집권 세력 내부의 파벌 싸움 등 많은 문제를 떠안고 있었다. 군부의 입장에서는 민간 정부가 정치, 사회적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있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이는 의회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얀마는 1948년도 아웅 산(Aung San) 장군을 위시한 반파시스트 인민자유연맹(Anti-Facist People’s Freedom League, AFPFL)의 주도하에 독립하게 된다. 이에 AFPFL은 1947년 의회 민주주의를 채택한 헌법을 제정하고 소수민족과 연방 정부 수립을 논의하는 등 신생 국가로서 국가 건설 과정에 몰두하고 있었다. 1947년 2월 맺어진 삥롱 조약(Panglong agreement)은 연방 정부 수립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으나, 그해 7월 19일 아웅산 장군이 암살을 당하며 정국은 다소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후의 미얀마는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진다. 소수민족 독립 세력은, 특히 카렌민족연합(Karen National Union, KNU)는 당시 수도 랑군(Rangoon)을 포위할 정도로 세력이 강했고, 샨, 카친족 등 독립 정부를 요구하고 있었다.

당시 정권을 주도했던 AFPFL 내부에서는 정책적 노선의 차이로 분열이 일어났다. 총리였던 우누(U Nu)와 타킨틴(Thakin Tin)이 주도하는 Clean AFPFL과 쪼네인(Kyaw Nyein)과 바쉐(Ba Swe)가 이끄는 Stable AFPFL로 쪼개지게 된다. AFPFL의 파벌 싸움과 지속되는 내전으로 인해 정세는 더욱더 불안해졌고, 1958년도에 우누 정권은 네윈(Ne Win) 장군의 과도 정부(Caretaker government)에 권력을 넘겨주게 된다. 약속된 2년의 시간이 지난 뒤 우누가 이끄는 세력은 선거에서 승리하며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다. 우 누 정권은 연방 정부 설립 정책, 군대 개혁, 불교의 국교화 등 여러 가지 정치, 사회적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1962년 3월 2일 네윈이 이끄는 땃마도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군인들로 구성된 혁명 의회(Revolutionary Council, RC)를 설립하며 전권을 장악하였다.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외세 배척 및 국가 단결이라는 정신하에 미얀마의 자주, 독립을 강조했다. 당시 추구했던 소위 버마식 사회주의(Burmese Way of Socialism)가 그 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사유재산의 국유화 및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펼친 60년대 동안 미얀마의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에 네윈은 1974년 버마사회주의연방(The Socialist Republic of the Union of Burma)의 근간이 되는 헌법을 공포하며, 표면적으로 일당-의회 체제를 수립했다.

여기서 일당이라 함은 버마사회주의계획당(Burma Socialist Program Party, BSPP)을 의미하며,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군인, 경찰, 공무원 등을 당원으로 한 군부 정권 친위조직에 가깝다. 지난 사회주의 경제 정책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시장 경제 정책으로 선회하기도 했다. 특히, 권위주의 혹은 독재 정권에서 경제성장은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인데, 버마식 사회주의는 성과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1970년대 조금씩 회복하던 경제성장률은 1980년대 들어 추락하기 시작했고,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문기홍(시드니대학교, 정부 및 국제관계학과 박사)  kihongt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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