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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을 위한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개인이 아닌 전체를”(예레미야 17:5-11)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9.14 16:26
▲ 예수를 비난하는 대심문관. 러시아 현대 화가의 그림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 하셨냐는 이 질문은 한 주간 어려움 없이 잘 지내셨냐는 물음이 아닙니다. 경제적, 육체적 또는 다른 이유들로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많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때 마다 다시 평안의 마음으로 돌아 오셨냐는 물음입니다. 매 순간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 한 주는 지식과 삶, 앎과 삶은 얼마든지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저의 말과 행동을 바라보며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주일 성도님들께 이사야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새로운 삶, 재창조된 삶으로 향하도록 인도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새 창조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새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일이란 ‘기후위기’라는 전 세계적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님들께 말씀을 전하고 교회 1층 게시판에 생태관련 실천사항들을 붙여놓았지만 정작 저는 공공연하게 이런 말을 지인들에게 해왔습니다. “나는 다른 운동은 해도, 생태문제는 안 될 거야.”

참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을 했던 이유는 생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생태 문제의 90%가 기업 때문이라는데 내가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라는 생각으로 마음에 불편함은 생기지만, 몸이 불편한 게 싫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실천들에도 눈을 감아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전체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의 편리, 이익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쉽게 해야 할 것들에, 해야만 하는 것들에 눈을 감게 됩니다. 저를 비롯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 한 삶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면서도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 외면하기 시작하고, 눈을 감아버리면 결국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오늘 본문 5-6절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삶이 결국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5 나 주가 말한다.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6 그는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불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져 자신들, 개개인의 욕망대로 살면 계획대로 다 될 것 같지만 결국엔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포인트는 ‘하나님과 분리 되려 하는 사람’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처럼 전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개인을 위해서만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과 분리되어 자신만의 왕국, 집 등을 건설하려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카라마조프의 둘째 아들인 이반이 자신의 동생인 셋째 알렉세이에게 자신이 창작한 '대심문관'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하나님의 마음과 분리 되려는 사람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인터넷 ‘나무위키’에 이 ‘대심문관’의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단 심문이 한창이던 15세기 에스파냐 세비야에 예수가 강림한다. 그것도 1500년 전 자신이 이스라엘을 돌며 교리를 전파 했을 때와 같은 복장,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이에 사람들은 굳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가 재림한 메시아인 것을 깨닫고 그에게로 나아온다. 마침 이단 심문을 위해 내려온 나이 90세 전후의 대심문관이 죽은 소녀를 다시 살리는 예수를 목격하게 된다. 친위대로 하여금 예수를 가둔 대심문관은 예수와 홀로 지하에서 얘기를 나누게 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는 광야에서 기적, 신비, 권위를 요구하는 악마의 유혹을 모두 거부하고 신앙의 자유를 선택하였지만, 자유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기적, 신비, 권위가 있어야만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자유보다는 빵을 원한다. 하지만 예수는 빵보다 자유를 선택함으로써 빵에 대한 욕구로부터 탈피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믿음과 질서를 가질 기회를 박탈하였다.’

책 내용에 보면 대심문관은 예수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도대체 뭣 하러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냐?”, “이미 8세기 전에 우리는 네가 격노하면서 그에게서 거부했던 것, 그가 지상의 모든 왕국들을 너에게 보여 주면서 너에게 제안한 마지막 선물을 취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예수를 유혹한 악마와 손을 잡고 지상에서 기적, 신비, 권위를 제공함으로써 자유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다수를 위한 빵을 제공하게 되었다. 예수가 제시한 신앙의 자유를 이용하여 겨우 현실의 질서를 만들어냈는데, 이제 와서야 예수가 재림하여 질서를 흐뜨러트린다면 지상은 지옥이 될 것이기에 대심문관은 예수를 화형하겠다고 선언한다.

참고로 대심문관 본인도 한 때 누구보다 성스러운 신심으로 하느님을 숭배하였으나, 결국 진리를 깨닫고는 오래 전부터 그 진리를 숭배한 무리에 편입, 신자들을 사목한 것이라 술회한다.

이 모든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예수는 대심문관의 말이 끝난 후 그에게 가볍게 키스하고 대심문관은 예수를 풀어주며 다시는 나타나지 말 것을 요청한다. 이후 대심문관은 다시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 <나무위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글에서 종교 지도자들을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게 하고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 보다, 이 진리를 이용해 종교장사를 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배를 불리는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돈, 권력, 빵에 눈이 멀게 되면 이 책에 나온 대심문관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지하 감옥에 가두고 세상 욕망을 누리기 위한 삶,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분리되기 위한 삶을 얼마든지 선택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창조 세계를 가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전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편리만을 생각하면서 이 세계를 파괴하고 더럽히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창조 세계를 가꿔봤자 뭐하겠어? 산을 밀고 집을 짓고, 쓰레기를 버리면서 사는 게 나에게 더 유익이고 훨씬 편하고 좋은데 말이야!’ 저와 성도님들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전체를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늘 이렇게 ‘나’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5 나 주가 말한다.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6 그는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불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다.”

시편 22:1-5의 고백을 보면,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조상을 도와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도와달라고 부르짖습니다. “1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그리 멀리 계셔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나의 간구를 듣지 아니하십니까? 2 나의 하나님, 온종일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밤새도록 부르짖어도 모르는 체하십니다. 3 그러나 주님은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의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4 우리 조상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믿었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5 주님께 부르짖었으므로,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믿었으므로, 그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시편의 고백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이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택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보다 자신들의 뜻대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보다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라며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고, 결국 고난을 당해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자신과 늘 떨어지려는 백성들을 다시 붙들어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이렇게 기록합니다. “7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8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과 분리를 택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 된 상태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복을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개인만을 생각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셨던 것처럼 전체적(공동체적, 생태적)으로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은,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처럼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언제나 열매를 맺으며 살 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문제는 이 열매에 만족하지 못할 때 벌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택합니다. 분리되면 뭐 더 좋은 게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 헛될 뿐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물려받을 수 있는 재산을 미리 받아 자기 좋을 대로 살겠다고 떠나보지만 재산도 다 탕진하고,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가 먹는 것을 먹음으로 굶주림을 해결하려는 상황까지 처하게 됩니다.

탕자는 결국 어떻게 됩니까?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을 떠나 산다는 것은 ‘나’에게만 집중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공동체 중심으로 향하지만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만 잘 못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공동체적이기에 정의, 공의, 선, 사랑의 단어들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공동체에는 인간만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공동체는 생태계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7년마다 경작하던 땅도 쉬어야만 했습니다. 가져야 할 땅의 경계까지도 정해주셨습니다. 만약 남의 땅을 소유하게 되면 ‘희년’의 해에는 땅을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사적 소유가 강조되기 보다는 공동체 전체가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율법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국의 부유한 개인들을 보며 하나님과 분리 되려는 욕망을 계속해서 가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끝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10 ‘각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심장을 감찰하며, 각 사람의 행실과 행동에 따라 보상하는 이는 바로 나 주다.’ 11 불의로 재산을 모은 사람은 자기가 낳지 않은 알을 품는 자고새와 같아서, 인생의 한창때에 그 재산을 잃을 것이며, 말년에는 어리석은 사람의 신세가 될 것이다.”

‘불의로 재산을 모은 사람’은 농사 끝에 이웃을 위해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준 사람들, 가난한 이들의 옷을 밤에는 돌려주어야 하지만 돌려주지 않고 모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5:4-8 “4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그는 쓸모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여기 계신 저와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며 불의로 재산을 모으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사는 공동체적으로, 생태적으로, 전체적으로 사고하며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공존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택한다면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기에 우리의 간구는 열매를 맺을 것이고, 우리가 구하는 기도는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시려는 사역에 기꺼이 동참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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