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칼럼
강화유리가 없는 ‘오징어게임’을 중단하자NCCK, 10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1
NCCK언론위원회 | 승인 2021.11.17 23:48
▲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유리 다리’를 건너고 있는 오징어 게임 참가자 ⓒ넷플릭스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목사) 언론위원회는 2021년 10월의 시선으로 <강화유리가 없는 오징어게임을 중단하자>를 선정하여 발표했다.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 이용자들이 <오징어게임>에 열광하는 이유는 당면한 현실이 드라마 보다 더 비참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너나없이 안정적인 주거와 더 나은 기회가 주어지는 일자리, ‘저녁이 있는 평안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강화유리보다는 일반유리를 밟을 가능성이 99.9%인 절망만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주목하는 시선 2021-10월은 <오징어게임> 드라마 속에 담겨있는 당면과제에 주목하며 선정했다. - NCCK언론위원회

기우제를 지내도 ‘강화유리는 없었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실직과 이혼, 채무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홀어머니의 뒷바라지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촉망받는 증권회사 직원이 되었던 청년은 투자선택을 잘못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억눌림과 굶주림, 가난을 피해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 남쪽으로 넘어온 남매를 기다린 건 절망뿐이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받지 못하면서 서울에서 안산까지 걸어 다녀야 하는 외국인노동자는 본국에 있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분모가 있다면, 감당할 수 없는 채무로 신체 포기각서를 써야 한다는 점이다.

넷플릭스가 지난 10월 12일 기준으로 공식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1억 1,100만 가구가 시청했고, 94개 나라에서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 시청순위 1위를 휩쓸었다.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은 한류가 전 세계를 지배했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기에 바빴고, 공영방송 사장은 국회에서는 ‘왜 공영방송은 <오징어 게임> 같은 경쟁력 있는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느냐?’는 힐난을 들어야 했다. 어쩌면 핼러윈 축제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가면과 복장이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감시원과 참가자들이 입었던 옷이었다는 사실은 성공적인 한류드라마는 경제적 파생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함의를 줄지도 모른다.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 이용자들은 <오징어 게임>에 왜 열광할까? 현실이 더 비참하기 때문은 아닐까? 모두 너나없이 안정적인 주거와 더 나은 기회가 주어지는 일자리, ‘저녁이 있는 평안한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강화유리보다는 일반유리를 밟을 가능성이 99.9%인 절망만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신들이 처해있는 어두운 상황에서 빛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이 지구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매일같이 한국에서, 미국에서, 영국이나 독일에서, 소말리아나 수단에서도 모두 <오징어 게임>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타인을 짓밟는 굿판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갈멜산에 모인 450인의 바알 선지자와 400인의 아세라 선지자처럼 오랜 가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에 폭풍우의 신 바알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굿을 하듯(왕상 18장), 일인당 1억 원의 상금과 채무삭제라는 약속에 생명을 담보로 여섯 가지 게임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저주의 굿판’을 만든 남자와 마지막 생존자를 제외하고 모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처럼 상금(번제물)을 눈앞에 두고 욕망만 살아남는다. 기우제를 지내도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강화유리는 없었다. 모두 유리를 밝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잘못된 희망을 가졌던 것일까?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채무자들은 바알이나 아세라 목상을 쫓다가 불 속에서 타죽은 자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저마다 삶의 희망을 품고 살았고,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은 평등한 기회였고, 보장된 일자리였다.

<오징어 게임>에 내몰린 노동자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뒷골목에서 봉제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 인권 운동가였던 전태일(당시 22세)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며 분신을 한다. 그가 노동청에 요구했던 핵심주장은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였다. 노동청은 봉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할 것처럼 반응했지만, 뒤편에서는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무마시키려는 음모만 꾸몄다. 권력에 행정에 시대에 절망한 한 청년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지 51년이 흘렀다.

지금도 ‘전태일 3법’이라고 부르는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제11조 개정하기,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법 제2조 개정하기, ‘모든 노동자의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기는 여전히 요원한 바램으로 남아있다. 2021년 1월 8일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근로기준법 제11조에서 정하고 있는 예외조항을 적용하여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적용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제11조는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하며,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전태일이 노동운동을 하던 시대에도, 촛불시민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기업주는 면책을 받을 수 있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던 서울지하철공사 외주업체 직원인 김군(당시 19세)이 출발하던 전동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안전 수칙에 따르면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은 2인 1조로 진행해야 하지만, 김군은 사고 당시 혼자 작업하고 있었다. 구의역 노동재해는 개인 과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열악한 작업 환경과 안전 불감증이 만연한 작업현장에서 관리 소홀로 인한 중대과실이었다. 김 군의 가방에는 스크린도어 수리를 위해 필요한 공구와 뜯지도 못한 컵라면이 들어있었다.

2017년 11월 9일,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한 음료 공장에서 현장실습생을 하던 이민호 군(당시 18세)는 오작동을 자주 반복하는 기계에 들어가 오류를 제거하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내려온 컨베이어에 끼어 사망했다, 그러나 이 군이 기계에 깔리고 몇 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동료 직원들은 끼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사고가 나면 울려야 할 비상벨을 갖추지 않았다.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상사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트랜스퍼 타워 04C 구역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서 기계에 끼어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김용균(24세)이 사망했다. 그가 일해야 했던 공간은 어두운 켄베이어벨트 속에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검은 탄가루가 휘날리고 있었다. 태안화력은 노동자에게 기계를 점검할 수 있도록 기계를 멈추지도 않았고, 충분한 환풍 시설도 없었다. 그의 유품에는 면봉, 동전, 휴대전화 충전기, 지시사항을 적어둔 것으로 보이는 수첩, 물티슈, 우산, 샤워 도구, 속옷, 과자, 발포 비타민, 작업복과 슬리퍼 등이 있었다.

대전지방노동청은 태안화력발전소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벌여 12월 26일까지 과태료 1억 원에 해당하는, 40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찾아냈고, 국회는 일명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원진레이온 사고에 따른 1990년 개정 이후 28년 만에 법을 개정했다.

20201년 10월 6일, 여수의 한 요트업체서 현장실습을 시작한 홍정운군(18세)은 7t급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떼어내는 잠수작업을 하다 물에 빠져 숨졌다. 현장실습협약서를 보면 홍군의 업무는 서빙·보트 선체 관리·조종·파손 부위 응급 처치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평소에도 물을 무서워했던 홍군에게 주어진 일은 12kg짜리 납덩이가 달린 허리벨트를 메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요트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떼어내는 일이었다. 물속에서 숨쉬기가 어려웠던 홍군은 납덩이가 달린 허리 벨트를 풀지 못하고 수심 7m 바다 맡으로 가라앉았다.

SBS보도에 따르면, 2018년 12월, 김용균 사망 이전과 이후,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이들에 대한 통계를 다시 분석해보면, 사망 이전까지 2년 6개월간 2천403명 사망이 사망했고, 사망 이후 2년 6개월간 2천211명이 사망했다. 떨어짐, 끼임, 부딪힘 순으로 희생됐다. 사망자는 8% 줄었지만, 부상은 김용균 이전 21만 4천673명, 김용균 이후 23만 5천476명으로 9.7% 증가했다. 이 수치를 10대와 20대 청년만 따로 살펴보면, 김용균 이전 127명 사망, 이후 112명 사망, 12% 가까이 줄었지만, 다친 사람은 김용균 이전 2만 2천675명, 김용균 이후 2만 6천533명, 17% 늘었다. 오늘도 노동현장에서 <오징어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 2017년 가을에서 2018년 봄으로 촛불을 들고 희망을 이야기했었다.

<오징어 게임>에 여전히 열광해야 하는가?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술래잡기, 줄다리기, 달고나, 구슬치기 같은 평범한 놀이에 외국인들이 열광하고, 철이가 가고 싶었던 깊고 푸른 바다가 있는 제주도가 관광 상품이 되기도 한다. 해 질 녘 서울 변두리의 짙은 그림자는 익숙하지만, 이제는 옛 풍경으로 남은 장면들을 그리워하게도 만든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으로 사상 최고 주가를 기록했고 2021년 3/4분기에만 유료 가입자를 438만 명 늘리는 성과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오징어 게임>이 묘사한 참혹한 노동현장, 차별받는 사람들, 계층 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가계부채에 벼랑으로 몰리는 사람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와 갚을 수도 없는 주택담보대출로 미래를 저당 잡힌 사람들의 몸부림이다. <오징어 게임>은 실패한 사람들이 자기 생명과 미래를 담보로 마지막으로 타인을 짓밟고 살아남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 뒤편에는 이 게임을 기획한 001번 참가자와 재즈를 들으며 상황극을 즐기는 졸부들이 있다.

그러나 현실의 <오징어게임>은 마치 매일같이 중대재해처벌법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에도 불구하고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노동자, 청년들처럼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생존게임이다. 드라마 종반부에서 참가자 001과 456이 눈 오는 날 길모퉁이에 쓰러진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이 올지 혹은 오지 않을지를 두고 내기를 건다. 희망은 있다고 보는 456은 자정이 다가오자 절망하고, 001은 희망은 부질없다는 신념을 갖고 세상을 뜬다. 그때, 지나쳐간 줄 알았던 한 외국인이 경찰차를 타고 나타나 길모퉁이에 쓰러진 사람에게 구원을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희망은 있다. 희망은 있어야 한다. 재즈를 들으며 근로기준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 예외조항을 둘지 말지를 고민하는 001에게는 부질없을지 모르지만, 이 시대의 456에게는 <오징어게임>을 중단시킬 수 있는 용기와 연대가 필요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부사장, 김덕재 전 KBS PD,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희상 시사IN 선임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심영섭 교수이다.

NCCK언론위원회  kncc@kncc.or.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NCCK언론위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1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