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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을 사로잡은 핵발전 강박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38)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 승인 2022.01.10 14:58
▲ 각 당의 20대 대선 후보들은 핵발전이 녹색에너지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Getty Image

대통령 후보들의 핵발전소에 대한 태도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대통령 후보들이 국가 발전의 방향을 어떻게 잡고 있는지, 국가 발전을 위해 어떤 기본 정책을 펴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별로 없다. 그 까닭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대통령 후보들의 자질과 도덕성에 대한 공격이 날로 극성을 부리다 보니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미래 사회의 비전과 정책 제시가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거대 양당이 고정표를 다지면서 중도층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원칙과 전망 없이 대중영합적인 공약이나 편을 가르는 공약에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나 발모 치료 의료급여 지급, 재산세나 종부세 완화 같은 공약이 그 예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도전은 사회적 양극화,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 중국과 미국의 패권 싸움에서 비롯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핵발전과 에너지 정책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 역시 가장 기본적인 정책 과제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핵발전은 우리 사회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일 뿐 아니라,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에너지 정책의 기본노선을 세우는 일에 관련된 핵심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력 대통령 후보들이 핵발전에 관해 표명한 견해를 살피면 매우 실망스럽다.

지난해 11월 26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윤석열 씨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문재인 정부의 무지가 부른 재앙”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달 29일 그는 한국의 미래 산업 발전을 전망하면서 “현재 깨끗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원자력 발전 외엔 대안이 없다.”고 단언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방사성 누출이 없었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내세우기도 한 윤석열 씨는 핵발전에 이해관계가 있는 세력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 씨는 지난 12월 22일 자신의 원자력 정책을 ‘감(減)원전’ 정책으로 규정하고, “이미 가동하고 있거나 건설 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그냥 계속 지어서 가동 연한까지 사용하되 신규로 새로 짓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7년 국민 공론화 과정을 통하여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는 ‘계획 중’인 원전이기에 ‘국민의 뜻’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실효성, 발전단가 문제, 위험성, 폐기물 처리비용 등을 객관적으로 한 번 더 판단하고 객관적 자료에 의한 국민의 합리적인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12월 24일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안철수 씨는 신재생에너지의 낮은 효율성을 문제로 꼽고 나서 “원전은 필수적”이라고 못을 박았다. 원전의 안전성 문제는 ‘소형모듈원자로’(SMR)로 극복할 수 있고, 사용 후 핵연료 문제는 ‘머지않은 미래에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씨가 기술주의적 관점에서 핵발전을 옹호하는 태도는 기후재앙을 피하는 해법들 가운데 하나로 소형원자로를 꼽은 빌 게이츠의 의견에 가깝다.

아마 핵발전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유일한 대통령 후보는 정의당 심상정 씨일 것이다. 그는 12월 14일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 중단, 노후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 등을 통해 ‘2040년 탈핵 국가’로 나아가겠다고 여러 차례 선언했다고 말한 다음, “기후위기 시대 핵발전은 대안이 될 수 없고 석탄화력발전소와 함께 단계적으로 폐쇄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그는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지, 50만 다발이나 쌓여 있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먼저 토론하자”고 제안하는 등 가장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핵발전소 사고와 ‘슈퍼 위험사회’

핵발전소의 사고는 사상을 초월할 정도로 피해 규모가 크고 방사능 유출은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 1979년 미국 드리마일 핵발전소 노심용융 사고,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노심용융 및 폭발 사건 등은 핵사고가 얼마나 치명적이고 파괴적인가를 알려주는 실례들이다.

우리에게 가장 생생하게 기억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핵발전소의 건설과 운영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모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꼽아본다. 첫째,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입지는 그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과 생태학적 특징을 고려해서 선정되지 않았다. 둘째, 핵 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핵을 다루는 지식과 기술을 완벽하게 갖추었다는 오만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두 가지 요인이 서로 얽혀서 엄청난 핵사고가 터졌다. 후쿠시만 핵발전소는 엄청난 위력의 지진이 빈발했고 세계적 기록을 경신할 수 있는 지진의 발생 가능성이 예측되는 지역에 설치되고 운영되었다. 핵발전소의 핵심을 이루는 연료봉과 폐연료봉 냉각장치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핵심시설과 보조시설을 자연재해에 극도로 취약하게 설치해 놓고도 핵발전소 운영자는 핵발전소가 완벽하게 가동된다고 자신했다. 후쿠시마 핵 시설에서 노심용융이 일어나 체르노빌 핵사고보다 더 엄청난 재앙을 일으킨 것은 핵 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표방하는 지식과 기술의 전문가주의가 얼마나 치명적인 이데올로기인가를 웅변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해는 엄청났다. 핵발전소 노심용융과 폭발에서 발생한 방사성물질은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반경 30km에 달하는 지역의 생태계와 도시들과 농경지들을 황폐화했다. 그 지역은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무인 지대가 되었다. 일본 동북부 지역의 경제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방사성물질 유출로 인해 대양이 극도로 오염되었고, 세계 곳곳에 죽음의 방사능 낙진이 확산하였다. 폐허가 된 핵발전소에서 끝없이 발생하는 방사성 누출수는 더는 용기에 보관할 수 없어서 대양에 방류하기에 이르렀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대재앙 이후에 많은 사람은 오늘의 세계가 ‘슈퍼 위험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체르노빌 핵사고가 일어난 뒤에 ‘위험사회’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체르노빌 핵사고를 겪고도 똑같은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여 생존을 보장하는 방안을 모색하지 못하는 사회는 ‘슈퍼 위험사회’로 불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핵사고의 교훈은 쉽게 망각되곤 한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지켜본 나라들 가운데 독일처럼 즉각 탈핵 노선을 결정한 나라도 있다. 독일은 올해 말까지 모든 핵발전소의 가동을 멈추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탈핵 노선을 모색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문재인 씨는 탈핵 노선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국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중단을 결정했다.

그러나 핵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슈퍼 위험사회’를 애써 무시한 채 핵 지식과 기술을 갖고서 위험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기나 한 것처럼 주장한다. 사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에 많은 사람은 각국 정부가 핵 산업 정책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핵 산업 메이저들이 숨을 죽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을 위시해서 유력한 국가들은 핵 산업 정책을 계속 고수하겠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후쿠시마 핵사고를 애써 외면한 채 ‘녹색성장’을 내세우면서 핵 산업을 녹색성장의 동력으로 선전했다. 그 선전의 핵심은 핵 산업이 ‘깨끗하고 저렴한 녹색 에너지’를 무제한 공급하여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요즈음 윤석열 씨가 대통령 후보로서 주장하는 내용과 똑같다. 심지어 문재인 정권이 탈핵 노선을 추구하자 원전 건설과 가동을 내심 옹호하는 감사원장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과정을 들여다보고, 감사 결과를 검찰에 통보하여 검찰이 원전 가동 중단 결정 과정상의 비위를 수사하도록 조치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핵 산업을 옹호하고 이를 육성하는 세력은 단순히 에너지 생산을 맡은 공기업이나 이익단체에 그치지 않는다. 그 세력은 과학과 기술, 자본과 권력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형성한 과학기술체제의 화신이다. 과학기술체제로서의 핵 산업은 군산복합체만큼이나 다양한 구성원들로 견고하게 조직되어 있다. 그것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 이윤추구를 절대화하는 자본가들,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정치인들, 과학기술지상주의를 선전하는 지식인들과 언론 매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거대한 네트워크 권력체제이다. 과학과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가임을 자처하지만, 그들의 전문성은 자본의 구심력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이 가져올 치명적인 결과들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여론을 환기하는 일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제공한 정보로 인해 여론이 저항한다면, 그들은 이윤추구에 방해를 느낀 자본에 의해 제거될 운명에 처할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국가 기구들이나 언론 매체들은 핵 산업과 더불어 이익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에 핵 산업을 위축시키는 시민 저항을 용인하지 않는다. 핵 산업을 추진하는 세력은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기술에 대해 아무런 전문적 지식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로 간주하고, 자본과 기술의 유토피아를 공연히 반대하는 모자란 사람들로 낙인찍곤 한다. 그렇게 해서 난공불락의 아성을 구축하는 핵 산업은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약속하고, 사람들을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 공급 체제에 통합한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발생한 지 1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핵 산업이 다시 깃발을 쳐들기 시작한 까닭은 핵발전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유력한 수단이라는 선전이 사람들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2050년까지 대기권 온도를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1.5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을 급진적으로 줄여야 하는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 핵발전이라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핵발전을 옹호하는 가장 강력한 국가로 나섰다. 프랑스는 독일과는 달리 신재생에너지 개발에서 거의 실패하다시피 했고,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출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최근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프랑스가 주도해서 핵 산업 지원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기까지 했다. 과거 동유럽권에 속했던 많은 나라는 프랑스의 주도권에 동조하면서 핵 산업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핵사고가 생태계와 인류 문명에 가져오는 끔찍한 재앙과 피해는 너무나도 쉽게 망각된다. 핵 산업 세력은 핵사고가 일어날 때 끓어오르는 저항의 열기가 식으면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 핵 산업에 있다고 선전해서 수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으며 다시 핵 산업의 전성기를 열어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체르노빌 핵 재앙 직후에는 누구나 핵 산업이 소멸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아 핵 산업을 옹호하는 선전이 모래땅에 물이 스며들 듯이 잘 먹혀들지 않았던가! 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난 지 10년 정도 흐르니 사람들은 더는 그 끔찍한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생명을 위한 정의의 윤리

인류 문명과 생태계와 생명을 절멸로 이끌어갈 수 있는 핵 산업 체제는 해체되어야 한다. 핵 산업 체제가 파국적인 핵사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는 것은 그 체제를 움직이는 힘이 강고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체제로서 핵 산업을 이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동인은 이윤추구이다. 핵 산업이 창출하는 이윤은 여러 고리를 통해서 분배된다. 그 이익의 분배에 참여하는 세력은 핵 산업 체제라고 불리는 네트워크 권력체제의 구성원들이다.

울리히 벡은 연령, 성별, 인종, 계급 등등의 차이와 무관하게 모든 시민이 위험에 노출되기에 ‘위험사회’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 시민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핵 산업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당사자들조차도 하늘과 땅과 하천과 바다와 땅속에 미만해 있는 방사성물질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견해는 많은 점에서 모자라다.

핵 산업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핵 산업 체제가 가져오는 전 시민적 위험을 강조하면서도 핵 산업 체제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과 손해를 보는 사람들을 구별해서 균형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의의 감각이 필요하다. 그러한 감각을 갖춘 사람들만이 핵 산업 체제를 해체하는 일에 착수할 수 있다. 그들은 핵 산업 체제로 인하여 이익을 보는 사람들과 손해를 보는 사람들을 갈라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계몽된 시민들이고, 핵 산업 체제로 인하여 손해를 보고 있다고 자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핵 산업 체제가 생태계와 사람의 살림에 미치는 잠재적인 위험과 현실적인 위험을 지적하고,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그 위험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존하고 현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에너지 정책

유감스럽게도, 3월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선 정치인들은 대부분 문재인 정부가 조심스럽게 첫발을 뗀 탈핵 노선을 저버리고, 핵발전을 에너지 공급의 기본 정책으로 삼고 있다. 윤석열 씨가 핵 산업 카르텔의 논리와 주장을 수용해서 핵발전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자, 안철수 씨와 이재명 씨도 핵발전을 당연시하거나 수용하는 견해를 밝혔다. 아마도 그들은 윤석열 씨와 거의 비슷한 노선을 취하지 않으면 표를 잃을 것으로 생각했을는지 모르겠다. 이른바 중도표를 얻기 위한 동조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유력 정당들이 핵발전과 에너지 정책을 놓고 의미 있는 경쟁을 하면서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대안적 에너지 정책을 제시할 기회를 살릴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핵발전소가 4개 있고, 모두 24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다. 핵발전이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한다. 핵발전소는 부산과 경주 같은 인구 밀집 지역에 있기까지 하다. 울진과 영광의 핵발전소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에 있지만, 어느 곳에 있든지 핵발전소에서 큰 사고가 난다면, 남한 땅의 상당 부분은 인구가 거주하거나 산업 활동을 펼칠 수 없는 지역이 될 것이고, 생태계 오염과 파괴가 엄청난 규모로 벌어질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한 나라의 미래를 열기 위해 대권을 갖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이 핵발전을 계속하겠다고 나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 공급에 우선순위를 놓다 보니 핵 산업 체제의 잠재적인 위험과 현실적인 위험을 가볍게 무시한다. 이보다 더 무책임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기후위기에 대처하려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공급해야 한다. 시한을 정해 석탄발전을 중단하는 로드맵을 밟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핵발전이 석탄발전의 대체수단이 되어서도 안 되고, 에너지 공급을 늘리기 위해 핵발전을 확대해서도 안 된다. 핵발전은 안전하지 않다. 핵발전에서 발생하는 방사능 폐기물은 반감기가 길게는 수만 년에 달하는 것들도 있다. 그러한 핵폐기물의 안전한 보관과 관리를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는가?

석탄발전과 핵발전에서 벗어나서도 에너지 수급을 원활하게 하려면,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석탄발전과 핵발전을 대신하는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생산과 공급 체제, 산업 체제, 경제체제, 교통 및 물류 체제 등 경제생활의 모든 영역과 부문을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에너지 정책은 한 나라 전체의 역량을 쏟아부어 대처할 과제이다. 핵발전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에너지 정책 수립에서 핵심을 이루는 일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정치인들은 대부분 핵 산업 체제의 유지와 육성을 지지하겠다고 나섰다.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레비아탄과 하나님

필자는 핵 산업 체제를 생각할 때마다 욥기 41장 1-34절에 등장하는 ‘레비아탄’을 연상하곤 한다. 욥기 41장은 레비아탄의 모습을 갖가지로 묘사하면서 “레비아탄을 보는 사람은 쳐다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고 땅에 고꾸라진다.”고 말하고,(9절) “그것에게 덤벼들고 그 어느 누가 무사하겠느냐? 이 세상에는 그럴 사람이 없다.”고 개탄한다.(11절) 또한, “땅 위에는 그것과 겨룰 만한 것이 없으며, 그것은 처음부터 겁이 없는 것으로 지음을 받았다. 모든 교만한 것들을 우습게보고, 그 거만한 모든 것 앞에서 왕 노릇을 한다.”(33-34절)고도 했다.

설사 땅 위에서 레비아탄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해도,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이 만물을 그분의 주권 아래 두고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레비아탄과 같은 괴물도 하나님의 주권을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핵 산업 체제는 하나님의 존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고 전능한 과학과 기술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괴물의 형상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핵 산업 체제가 무신(無神)의 구호를 내세운다고 해도, 만물에 대한 창조주의 주권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신앙고백 때문에 만물을 지배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체제의 명령에 굴복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과학기술체제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 노릇을 하려고 드는 것에 제동을 걸고자 할 것이다.

그러니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에 대한 주권을 갖는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은 대통령 후보들에게 무엇보다도 핵 산업 체제에 관해 책임 있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힐 것을 촉구하고, 기후위기의 도전 앞에서 에너지 정책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라고 요구하여야 한다. 핵 산업 체제의 잠재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 편에서 그들이 이제까지 표명해 온 의견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단호하게 요구하여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대선 후보들은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핵발전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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