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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권리, 생태파괴의 주범을 법정에 세우다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39)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 승인 2022.01.16 23:31

기후위기, 생태계 교란, 팬데믹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팬데믹 상황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변종에 변종을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 2주 안에 우리나라에서도 변종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지배종이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감염력이 큰 오미크론이 확산하면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의 제약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더 고달파질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의 발생과 확산은 인간의 경제 활동과 개발로 인해 동물의 서식지가 광범위하게 파괴되고,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인간과 동물이 접촉하는 기회가 늘어나면, 동물을 숙주로 삼았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질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후 온난화가 바이러스의 발생과 변종을 촉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북극 지역의 동토를 녹여 동면했던 바이러스를 깨어나게 하면,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1)

이쯤 되면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도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생태계 교란을 멈추려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필자는 기후위기와 생태계 교란을 가져온 기술과 자본주의의 결합 방식에 대해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 왔지만, 이 글에서는 자연의 권리를 창설하여 인류세의 위기를 넘어설 것을 제안하고 싶다.

자연의 권리

자연의 권리는 자연이 국가를 상대로 해서 그 자신의 온전성(integrity)을 보호할 것을 요구할 권리이다. 자연의 권리가 확인되거나 인정되면, 자연이 권리의 주체가 되고, 국가가 수범자가 된다. 그렇게 되면 국가는 자연이 국가에 요구하는 행위를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진다.

이러한 자연의 권리는 에콰도르 헌법에 세계 최초로 명시되었지만, 다른 나라들에서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개인을 권리의 주체로 설정하는 근대적인 권리 개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연의 권리를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헌법에서 환경권이 개인의 주관적 권리로 설정된 것도 그 때문이다. 환경권을 개인의 기본권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면, 개인이 환경을 향유할 권리가 중시되고, 자연 그 자체는 대상화될 뿐이다. 환경권 자체가 인간중심주의를 전제하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환경권이 주관적 권리로 설정되어 있기에 개인이 환경피해를 입증하지 않으면 법과 제도를 통해 환경보호의 이익을 얻을 수도 없다. 이러한 환경권의 문제를 인식한 독일 같은 나라들은 환경보호를 국가목표로 설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환경보호가 국가목표들 가운데 하위 목표로 설정되면, 국가의 환경보호 활동은 뒷전에 밀리기 쉽다.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창설하자는 주장은 환경권을 주관적 공권으로 규정하거나 환경보호를 국가목표로 설정해도 생태계 보전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데서 비롯되었다.

미국에서 자연의 권리가 논의되었던 배경

‘자연의 권리’는 본시 미국에서 환경 문제에 관한 재판 실무에서 성립한 개념이다. 환경피해에 대한 재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원고적격(혹은 당사자적격)을 인정받는 일이다. 환경파괴나 환경오염으로 인해 피해를 본 개인이 그런 행위의 중지, 원상회복,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는 재판을 요구할 경우, 그는 자신과 환경피해의 직접적 관련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그의 원고적격이 인정되지 않고, 재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환경파괴나 환경오염의 피해를 받은 자연이 아예 당사자로서 재판을 청구하면 원고적격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발상이 싹텄다.

1971년 미연방대법원은 시에라 클럽 대 머튼 사건(Sierra Club vs Morton)을 심리하고 있었다. 월트디즈니사가 미국산림청으로부터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미네랄 킹 계곡에 리조트 개발 허가를 받자 환경운동 단체인 시에라 클럽은 그 허가의 위법을 확인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 소송은 결국 상고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시에라 클럽은 여러 심급 재판에서 일관성 있게 자연의 이익을 내세워 개발 허가의 위법을 인정하라는 주장을 폈다. 연방대법원의 심리가 진행되던 중에 크리스토퍼 스톤(Christopher D. Stone)은 “나무도 당사자적격을 가져야 하는가? 자연물의 법적 권리를 위하여”라는 논문을 썼다. 그는 이 논문에서 회사가 법인격을 갖듯이 자연물도 법인격을 부여받아 법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며, 그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에는 권리행사방해의 배제, 원상회복, 손해배상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2) 그 주장은 연방대법관 더글러스(William O. Douglas)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비록 연방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자연물의 당사자적격을 인정하지 않고 소를 각하하였지만, 더글러스는 다음과 같이 소수의견을 냈다.

“만일 우리가 도로와 불도저 등으로 인해 파괴되거나 훼손되거나 침해를 당할 자연물의 이름으로 (…) 연방 기관이나 연방법원에 환경 문제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는 것을 허용하는 연방 법률을 만든다면, ‘당사자적격’이라는 핵심 문제는 단순화되고 그 초점이 명확해질 것이다. 자연의 생태적 균형을 보호하고자 하는 현시대의 대중적 관심은 환경을 구성하는 물체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그것에 당사자적격을 부여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따라서 이 소송의 원고와 피고는 미네랄 킹 대 머튼(Mineral King v. Morton)으로 조정되어야 마땅하다.”(3)

1972년 연방대법원의 시에라 클럽 대 머튼 사건에 대한 각하 결정 이후에도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자는 운동은 계속되었다. 그 운동이 거둔 의미 있는 성과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연방 법률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당사자적격을 확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공신탁이론을 환경 문제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을 활용하여 환경운동 단체들은 자연의 권리를 확립하기 위해 애썼고, 이를 용인하는 연방법원들의 판결을 끌어냈다. 특히 공동신탁이론은 주 정부가 생태계 보전에 관한 공공의 위임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 정부의 위임을 받은 환경단체가 자연의 권리를 대행하는 자로서 자연과 함께 재판을 청구하는 당사자자격을 인정받는 길을 열어주는 유력한 이론이 되었다.

자연의 권리가 인정되고, 공동신탁이론에 바탕을 두고 자연의 권리를 대리하는 단체가 창설되면, 1) 자연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에 대항해서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2) 자연의 권리가 침해되는 데 따른 손해배상에 관련하여 자연이 입은 손해를 산정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이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3) 자연이 온전한 상태로 보전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지출해야 할 비용을 청구할 수도 있다.(4)

헌법 규범으로서의 자연의 권리

크리스토퍼 스톤이 구상한 ‘자연의 권리’는 독일의 자연철학자요 법학자인 마이어-아비히(Klaus Michael Meyer-Abich)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자연의 권리를 성문법 전통에 서 있는 독일의 법체계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이어-아비히는 인간이 생태계 바깥에서 생태계를 대상화하는 위치에 있지 않고 생태계의 한 구성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인간과 자연물은 공기, 흙, 물, 불 등과 같은 ‘원소들’로부터 오랜 자연사적 발전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기에 친족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마이어-아비히는 인간을 중심에 놓고 자연을 그 주위에 배치하는 환경(Umwelt)이라는 관념을 넘어서서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현존하는 세계(Mitwelt)의 개념을 제안한다. 이 더불어 현존하는 세계에서 인간과 자연은 평등하다. 인간과 자연의 평등 원칙을 말한다고 해서 인간과 자연이 똑같다고 전제할 필요는 없다. 인간과 자연은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같은 점이 있다면 인간과 자연을 동일하게 대하면 되고,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르게 대하면 된다.

먼저 인간과 자연이 똑같다는 측면부터 고찰한다. 인간과 자연은 똑같이 자극에 반응하는 감수능력(5)이 있고, 둘 다 자신이 현존하는 자리에 존속하며 이익을 취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은 법 앞에서 평등하여야 한다. 인간의 권리가 법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면, 자연의 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과 자연의 평등 원칙은 주관적 권리 개념에 근거한 부르주아적 법치국가를 넘어서서 ‘자연적 법치공동체’를 창설하는 바탕이 된다.(6) 인간과 자연의 권리가 중시되는 자연적 법치공동체에 관련해서 마이어-아비히가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이다. 1) 자연은 말을 할 수 없으므로, 자연의 권리는 대리인에 의해 주장된다. 그것은 법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권리를 대리하는 단체는 공법상의 단체들이나 민법상의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법인의 위상을 가질 수 있고, 그 법인이 대표하는 자연의 권리는 기본권 제한의 유보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 한 법으로 제한될 수 없다. 2) 인간과 더불어 현존하는 자연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은 국가에 위임될 수 없다. 국가는 보편적 이익의 대표자이지, 자연의 특수한 이익을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의 대리인들이 자연의 권리를 옹호할 기회와 절차를 보장하는 것이다. 3) 자연의 권리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되었던 모든 자연물에 대하여 인정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하늘과 땅과 바다, 땅 위와 땅 속, 강과 호수와 시내, 산과 계곡과 바위, 숲과 나무와 동물들이 포함된다.(7)

그다음에, 인간과 자연물의 차이를 놓고 생각해 본다. 인간은 고도의 정신 능력을 갖고서 생태계가 관계들의 총체를 이루고 있음을 인식하고 생태계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찰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자연물과 다르다. 이러한 능력이 있는 인간은 생태계 보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생태계 보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면, 많은 사람은 그 책임에 대한 반대급부를 자연에 요구하여야 상호성의 원칙에 맞다고 주장하고, 자연은 그럴 능력이 없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마이어-아비히는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 생활의 자연적 근거가 붕괴된다는 것을 인간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응수한다.(8)

마이어-아비히가 치밀하게 논증한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명문화하면, 국가는 자연국가 혹은 생태학적 법치국가로 전환하게 된다. 인간의 주관적 권리를 ‘확인’하고 보호하는 자유주의적 법치국가가 사회 문제에 직면하면서 사회적 기본권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사회국가로 전환하였듯이, 사회국가는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함으로써 자연국가 혹은 생태학적 법치국가로 진화한다.

그런데 자연국가 혹은 생태학적 법치국가의 창설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난 독일에서는 자연의 권리를 기본법(독일 헌법)에 명기하는 기본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연적 생활기반과 동물’의 보호를 국가목표로 설정하는 데 그쳤다. 정작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명기한 나라는 에콰도르이다. 에콰도르의 환경헌법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예이다.

에콰도르 환경헌법

에콰도르 환경헌법은 2008년 헌법 개정을 통하여 수립되었다. 에콰도르 헌법은 전문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공동체 관계를 중시하는 에콰도르 원주민의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자연의 다양성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양식의 공존질서’를 수립할 것을 천명하고, 자연의 권리를 규정하는 제7장을 별도로 설치하여 다음과 같이 4개 조항을 담았다.(9)

제71조: 생명이 재창조되고 발생하는 자연 또는 어머니 대지(Pachamama)는 생명이 존재하게 하고, 생명의 순환과 구조와 기능과 진화 과정을 유지하고 재생하게 하므로 총체적으로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개인과 공동체, 인민과 민족은 당국에 청원을 통해 자연의 권리를 집행할 수 있다.
제72조: 자연환경이 침해되는 경우 그 침해된 자연에 의지해 살아가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보상의무와는 별도로 자연 자체도 원상회복할 권리를 갖는다.
제73조: 국가는 종의 절멸이나 생태계 훼손 또는 자연 순환의 영구적 변경을 초래할 수 있는 활동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제한조치를 취해야 한다.
제74조: 개인과 공동체, 인민과 민족은 환경으로부터 혜택을 받고 좋은 삶의 방식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자연의 부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에콰도르 환경헌법은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자연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을 규정하고,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만인이 자연의 공유부를 누릴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포괄적인 환경헌법이 제정된 뒤로 자연을 원고로 하는 재판에서는 승소 판결이 잇달아 나왔다. 그러나 국가가 지원하는 경제개발 사업에서는 경제개발의 이익과 생태계 보전의 이익을 양형을 하는 데서는 아직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개발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힘과 개발 기득권 동맹의 권력이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이다. 둘째, 재판에 임하는 판사와 변호사 등 법률가 집단이 생태학적 지식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10)

에콰도르 환경헌법 실험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생태계 훼손을 방지하고, 생태계의 복원력을 회복하고, 생태계 보전을 이루려면, 자연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는 데서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환경헌법이 성공을 거두려면, 법을 운용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시민들도 생태학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어서 생태계 보전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과 정치적 압력이 강력해야 한다. 에콰도르의 환경헌법은 그러한 사회적 압력과 정치적 압력을 강화하는 유력한 장치가 될 것이다.

우리도 자연의 권리를 창설하자

우리나라 헌법에서 환경권 규정은 권리장전에서 가장 취약하다. 환경권은 주관적 공권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것은 개인이 환경권을 향유하고 그 보장을 요구하는 주체로 설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환경 문제의 복잡성, 공간적 광범위성, 시간적 누적 효과 등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러한 환경권을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하다. 환경권을 사회권으로 확대해서 해석한다고 해도, 환경권의 본질이 주관적 권리라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설사 국가가 환경권 보호를 위한 적극적 주체로 나설 것을 요구받는다고 해도, 국가가 설정하는 목표가 환경보호보다 경제성장과 개발에 더 중점을 둔다고 하면, 국가는 환경권 보호를 하는 시늉에 그칠 것이다.

기후안정과 생태계 보전을 실현하여 인류의 생존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주관적 공권인 환경권을 넘어서서 자연의 권리를 창설하고, 생태학적 법치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바로 그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분이 세상 만물에 대한 주권을 갖는다는 것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먼저 만물이 깃들 공간을 창조하고, 그다음에 그 공간에서 살아갈 생명체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각각의 생명체가 자신의 거주 공간을 갖게 하셨고, 모든 생명체가 상생·공생하며 평화를 누리게 하셨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이 제 자리에서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을 보고 “참 좋다!”고 경탄하시고, 만물이 제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즐기며 안식을 취하신다.(창세 1:31; 2:3) 하나님의 안식은 각각의 생명체가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리를 차지하고 그 자리에서 생명을 이어나갈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웅변한다. 바로 이 권리가 자연의 권리로 선언되지 않는다면, 신학적으로 자연의 권리를 달리 규정할 방도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그분의 대리자로 삼아 세상 만물 사이에서 정의와 평화를 수립하라는 임무를 맡기셨으니,(창세 1:26-27) 그것은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 권리를 보장하면서 인간의 살림살이를 펼쳐나가라는 분부가 아닐 수 없다.(창세 1:28)(11)

기독교인들은 자연의 권리를 창설하는 행동을 통해 그들의 신앙이 견결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미주

(미주 1) 인간의 거주 공간 가까운 곳에 밀집한 공장식 축산 시설이 바이러스의 발생과 변종의 온상이 된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한다. 그것은 기후위기와 생태계 교란이 팬데믹 발생과 확산에 미치는 효과와는 다른 맥락에서 깊이 살펴야 할 주제이다.
(미주 2) Christopher D. Stone, “Should Trees Have Standing? Toward Legal Rights for Natural Objects,” Southern California Law Review 45(1972), 457f.
(미주 3) Sierra Club v. Morton, 405 U.S. 727, 745-747 (S. Ct. 1972). 더글러스는 이 소수의견을 내면서 자연물에 법인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과 공공신탁에 관해 쌓인 판례들을 참고할 것을 주장했다.
(미주 4) 크리스토퍼 스톤은 자연의 후견인 단체가 수행하는 이 세 가지 과제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에 대해서는 크리스토퍼 D. 스톤, 『법정에 선 나무들』, 허범 옮김(서울: 아르케, 2003), 56-76을 보라.
(미주 5) 자연의 감수능력은 하늘과 공기, 강과 바다, 산맥과 골짜기와 들판, 바위와 흙과 모래톱, 숲과 나무, 동물들 등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자극에 대해 반응한다는 넓은 뜻으로 새겨진다. 특히 동물들과 사람은 자극을 받으면 고통을 호소하고, 종에 따라 상대의 고통에 대해 반응할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미주 6) K. M. Michael-Abich, Wege zum Frieden mit der Natur: praktische Naturphilosophie für die Umweltpolitik(München/Wien: Hanser, 1984), 162.
(미주 7) K. M. Michael-Abich, 앞의 책, 164ff.
(미주 8) K. M. Michael-Abich, 앞의 책, 175.
(미주 9) 에콰도르 환경헌법에 대해서는 박태현, “에콰도르 헌법상 자연의 권리, 그 이상과 현실,” 『환경법연구』 41/2(2019), 113-115를 보라.
(미주 10) 박태현, 앞의 논문, 126f.
(미주 11) 자연의 권리에 대한 신학적 논증에 대해서는 졸저 『인간과 노동: 노동윤리의 신학적 근거』(성남: 민들레책방, 2005)를 보라.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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