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그리스도인의 자격마음으로 지키는 율법(디모데전서 1:9-11)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2.01.23 04:40
▲ Peter Paul Rubens, 「Transfiguration of Jesus」 (1605) ⓒWikimediaCommons
9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10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주현절 셋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일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의 말씀은 신명기 10장 12-22절, 시편 65편 5-12절, 마태복음 5장 17-20절, 디모데전서 1장 1-11절입니다. 본문의 말씀들을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전반적으로 율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신명기 10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며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는 명령이 나타납니다. 시편 65편은 약간 다른 맥락이긴 합니다만,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섭리하시며 은혜를 내리시는 분임을 이야기합니다. 마태복음 5장 본문은 율법의 1점 1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율법에 관한 말씀은 이미 여러 차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약속을 주셨으니 구약성경의 율법은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사도 바울이 구약 율법의 폐기를 주장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율법을 폐기하라고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마태복음 5장 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5-7장에 나타난 산상수훈은 구약성경의 율법을 더욱 강화하고 보완하는 말씀들입니다. 어쩌면 그냥 율법을 지키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은 선한 삶을 위한 기본 지침이었습니다. 너무나 기본이기 때문에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 율법이었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율법적인 삶을 살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율법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또 율법을 강조하던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과의 대립도 있었기 때문에 구약의 율법을 안 좋게 이야기하는 느낌을 줄 뿐입니다.

구약성경의 율법을 우리가 다시 자세히 살펴보고 지금 시대에 맞게 해석해서 지켜나가야 한다는 말씀은 많이 전해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이에 대해서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그보다는 예수님과 사도 바울 사이에서 보이는 율법에 관한 차이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7-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지극히 작게 여겨지는 계명까지도 지키라고 말씀하시며,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드러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준수에 진심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율법 준수에 있어서 이들보다 뛰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산상수훈에 나타난 말씀들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저 율법을 준수하는 삶 이상을 이야기하십니다. 형제에게 분노하는 사람은 살인한 것과 마찬가지이고, 이성에게 음욕을 품은 사람은 간음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 준수 이상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마가복음의 말씀과도 연결될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다스리라는, 어쩌면 수신(修身)의 자세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이유, 마음의 죄까지도 벗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전파하신 말씀의 핵심이 ‘회개하라’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회개하여 마음을 돌이키고 구원의 길로 들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의 강조점은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며, 죄를 범하지 않는 삶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예수님과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연설을 통해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어떠한 말씀을 전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연설이 많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아테네 설교(행 17장), 예루살렘 재판정에서의 변론(행 22, 24장),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변론(행 26장) 정도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부분의 자료는 그의 서신입니다. 그런데 서신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모인 이들입니다. 즉,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하는 대상은 이미 회개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향한 회개의 선포보다는 그 이후의 삶에 중심이 놓여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신이 전한 것과는 다른 교훈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교회를 흔들리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었을 것입니다. 4절에서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얼핏 보면 창세기에 나타난 이야기를 지칭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창세기를 이런 식으로 표현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생겨난 족보 중심적인 생각들과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 또 세상에 전해지는 신화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신화나 족보에 또 다른 해석을 덧붙여서 전했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입니다.

저도 예전에 어떤 강연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창세기에 나타난 아담의 족보를 영어로 쭉 나열해놓고 이름을 어떤 식으로 줄 세워보면 ‘I LOVE JESUS’라는 문장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 해석인데, 영지주의자들이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해석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본질을 벗어난 새로운 의미를 덧붙였기에 사도 바울과 적대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이러한 교훈들의 본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교훈이 가진 1차 목적은 마음을 다스리고 선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데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품게 만드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1차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다음 단계인 사랑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바라본 율법은 1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교훈들도 1차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수단들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미 이런 수준에 도달해있는 사람들이라고 여겼습니다. 

어쩌면 고린도전서 5장에 나타난 바와 같이 율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추방해왔기 때문에 초기 교회 공동체 안에는 이런 잘못을 범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은 아버지의 아내, 아마도 아버지의 첩과 결혼한 사람을 왜 아직까지 쫓아내지 않았냐고 훈계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의 이런 생각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9절을 보면,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해 세워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속에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옳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리스도인에 속할 수 없는 사람들을 열거합니다.

불법한 자, 복종하지 않는 자, 경건하지 않은 자, 죄인, 거룩하지 않은 자, 망령된 자,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 살인자, 음행하는 자, 남색 하는 자, 인신매매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 이렇게 긴 목록을 나열하는데, 단순하게 보자면 십계명을 어기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시대에 교회를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가진 생각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지금 시대의 교회를 본다면, 자신이 가진 생각을 바꾸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의 생각대로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이들을 교회에서 내쫓는다면 교회는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교회가 이렇게 된 이유는 말씀을 우리 편한대로 받아 들여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인의 자격을 편하게만 생각해왔습니다. 교회 열심히 출석하고 헌금 열심히 하니까 경건하고 거룩하며 순종적인 사람이라고 말해왔고, 직접 살인한 적은 없으니까, 음행이나 남색한 적 없으니까, 때로 거짓을 말하긴 했어도 내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이니까 라는 식으로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30년의 간극이 있는 세대를 왜 MZ세대라는 하나의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는지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 M세대들의 특징은 극도로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세대는 Z세대 밖에 없다고 합니다. 즉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한 세대를 MZ세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MZ세대만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N86세대나, X세대, Y세대 모두, 더 나아가 그 이전 세대들도 대부분 자기중심적입니다. 다만 ‘자기’의 범위가 점점 좁아졌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말 그대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조금 윗세대들에게 ‘자기’는 부모 형제를 포함한 가족일 것이고, 조금 더 위로 가면 친척들까지 포함하게 되고, 계속 위로 가면 국가 단위까지 커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세대도 온 인류, 온 생명 전체를 ‘자기’의 범주에 넣었던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중심적이라고 말하는 Z세대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지구촌이니, 글로벌화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전 인류적인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의 범주를 만들고 다른 집단을 구분해왔습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생각들이 말씀을 적당히 해석하도록 만들었고, 말씀을 우리에게 편한대로 해석하도록 만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은 나에게만 좋으면 좋은 말씀으로 변질되어 전해져왔습니다.

저는 지금 시대에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보다 앞선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 더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받아들이고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참된 회개의 길로 나아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행태로의 범죄가 아닌 마음의 죄를 줄여나가야만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켜나간다면, 우리의 삶은 그것을 넘어서 사랑을 전하는 삶이 되어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본래 원했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구원 받은 사람의 길이라고 말씀하셨던 그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도우시며, 당신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위해 더욱 많은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펼쳐가는 귀한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