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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재정 독재를 해체할 때다!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41)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 승인 2022.02.07 15:18
▲재정건정성 교리만을 주장하고 있는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우리나라 국민이 직면한 큰 도전들 가운데 하나는 재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재정 건전성 교리를 방패로 내세워 재정 독재를 자행해 왔고, 그러한 재정 독재의 폐해는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데서도 드러나고 있다.

경제부총리 겸 재정기획부 장관 홍남기의 해임을 요구하는 거센 목소리는 재정 당국이 재정 건전성 교리를 앞세워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데 따르는 저항의 목소리다. 이제는 그러한 저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재정이 공공정책을 뒷받침하는 수단이 되도록 재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길을 열어야 한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대선 후보들의 재정정책을 들여다보는 까닭이 여기 있다.

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홍남기 장관의 해임 요구가 갖는 의미부터 살피기로 한다.

다시 불붙는 홍남기 장관 해임 요구

홍남기 장관을 해임하라는 요구가 또다시 빗발치고 있다. 재정 당국이 재정 건전성을 앞세우면서 정부의 방역 조치로 인해 손실을 본 소상공인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벼랑 끝에 선 소상공인들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추가경정예산을 세우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작년 12월 초에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마자 추경 논의가 나왔다는 것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이 직면한 위기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여당과 야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35조에서 50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추경을 제안하고 나섰다.

그런데 1월 21일에 열린 국무회의는 기획재정부가 편성한 고작 14조 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을 의결했을 뿐이다. 그것은 자영업자 한 사람에게 3백만 원 정도의 손실보상금을 지급하는 수준의 예산 규모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비아냥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난 2월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추경안 심의에서 의원들이 추경 예산안 증액을 요구하자 홍남기 장관은 “증액에 대해선 여야 합의에 구속되기보다 행정부 나름대로 (내린) 판단이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주장하면서 홍 장관이 내건 이유는 예산 증액이 ‘물가나 국채이자’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답변은 재정 당국이 국채 발행을 반대할 때 상투적으로 내거는 구실에 불과하다.

재정 당국이 내세운 논거는 두 가지 점에서 틀렸다. 첫째, 요즈음 물가가 오르는 것은 실물경제에 화폐가 과다하게 공급되었기에 나타난 현상이 결코 아니다. 도리어 시중은행이 자산시장에 터무니없이 많은 화폐를 공급함으로써 자산 거품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 그 증거이다. 기후 위기와 지정학적 불안으로 인해 식량,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올라가서 나타나는 물가 불안은 따로 관리되어야 한다. 정부가 물가 불안을 들먹이면서 정부의 방역 조치로 인한 소상공인의 손실을 적정수준으로 보상하지 않으려 드는 것은 실로 비열하고 무책임하다. 둘째, 국채 발행이 국채 이자를 높인다는 주장은 국채 발행을 둘러싸고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이 수행하는 역할을 가리는 거짓말이다. 중앙은행이 상업은행이 매입한 국채를 되사서 상업은행의 지급준비금을 채워주기에 현대 국가에서 국채 발행이 국채 이자를 높이는 일은 없다. 국채이자와 은행간거래 이자율은 단지 정책변수일 뿐이다.

홍남기 장관은 한 마디로 국채를 발행해서 재정 건전성 교리를 훼손하고 싶지 않을 뿐이고, 정부의 방역조치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본 소상공인들에게 정부의 보상 의무를 외면하겠다고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재정 당국의 수장을 파면하지 않고서 정부가 제 구실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홍남기 장관은 벌써 해임되었어야 했다

필자는 이미 두 번이나 홍남기 장관을 해임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한 번은 2020년 4월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여당과 야당이 의견을 하나로 모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는 데도 홍남기 장관이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을 때였다. 그가 그렇게 고집하면서 내세운 명분 역시 재정 건전성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소득 하위 70%를 기준으로 내세우는 이유가 합당한가, 그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나눌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소득 자료가 있는가, 그 기준으로 사람들을 갈라놓고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소득 역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가를 둘러싸고도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행정부의 부서장이 국민대표 기관의 정치적 의지를 거스른다는 데 있었다. 필자는 대통령이 그러한 참람한 짓을 일삼는 자를 해임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통합과 국민 복지에 이바지하도록 재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 한번은 2020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질 좋은 평생주택’의 이름으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공언하자 홍남기 장관이 재정 조달의 어려움을 이유로 들어가며 대통령의 의지에 정면으로 맞섰을 때였다. 목이 좋은 곳에 품질이 높은 공공임대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여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서민의 주거 복지를 향상하는 것은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정책이었다. 책임 있는 재정 당국이라면, 국정 최고 책임자가 내건 정책 의지를 뒷받침하는 재정정책 수단을 마련해야 옳았을 것이다. 정부 예산 편성, 정부채 발행, 부동산 지대 환수, 부동산 공영개발 이익 투입, 특수 목적 공공은행 설립 등등 정부가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실로 수많은 정책 수단을 다양하게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홍남기 장관은 재정 건전성을 방패로 내세워 대통령의 이름으로 내세운 정책을 무력화하였고, 부동산 시장에 화폐를 공급하여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금융 세력 편에 섰다. 대통령이 그러한 장관을 해임하지 않는다면, 어떤 장관을 해임해야 하는가?

재정 건전성 교리의 내력

홍남기 장관의 해임 요구가 거듭되는 데도 대통령이 그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은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벌어진 사회적 양극화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재정 건전성 같은 시대착오적인 재정 운용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면서 재정 독재를 일삼는 정부가 제대로 된 정부일 수 없다.

재정 건전성 신조의 내력을 살피면, 그러한 재정 독재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짓인가를 알 수 있다. 재정 건전성 교리는 1980년대 초에 전두환 군사정권이 미국 레이건 행정부로부터 배워온 것이다. 레이건 행정부는 1970년대 중후반에 미국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신자유주의를 깃발로 내건 정부였고, 그 바탕은 통화주의였다. 통화주의는 루즈벨트의 뉴딜 이래로 강력하게 유지되었던 정부의 금융 규제를 해체했고, 정부의 긴축 노선을 정당화했다. 통화주의자들은 정부가 통화량을 조절하고, 세수에 따라 예산을 운영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케인즈주의자들은 세수가 부족하면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여 화폐를 만들어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통화주의자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정부 부채의 화폐화’는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악화시키기 때문에 정부 지출은 세수에 속박되어야 하고, 기왕에 발행한 채권은 회수되어 파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화주의자들에게 이러한 생각은 교리적 위상을 갖는 확신이었다. 그 교리에 근거해서 통화주의자들은 두 가지를 주장했다. 하나는 중앙은행의 독립이고, 다른 하나는 재정 건전성 준칙의 제정이다.

먼저, 중앙은행의 독립은 정부가 통화정책에서 손을 떼라는 요구를 담은 주장이다. 화폐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그것은 정부가 갖는 화폐 발행자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이었다. 통화주의자들은 정부를 화폐 발행자의 지위에서 화폐 사용자의 지위로 격하하고자 했고, 그들의 주장은 신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선 미국과 영국에서 관철되었다. 중앙은행은 재무당국으로부터 독립해서 통화정책을 수립하는 지위를 얻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통화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별개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다음에, 정부의 지출을 세수에 얽어맨다는 것은 정부가 긴축재정 노선을 취하도록 강제한다는 뜻이다. 통화주의는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삼았고, 그 교리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취한 정부들에서 재정 운영의 준칙으로 자리를 잡았다. 1990년 미국에서는 정부 사업 예산을 짤 때 그 사업비용을 충당하는 세수 확보 계획을 제출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이 확립되었고,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이 정부의 목표가 되다시피 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페이고 원칙에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재정적자를 극적으로 줄인 것으로 유명하다. 클린턴 행정부의 초긴축재정은 미국의 가계부채를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그것은 2008년에 지구적 금융위기를 폭발시킨 요인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레이건주의를 신봉한 한국의 신군부는 인플레이션 억제에 방점을 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기조를 이어갔다. 신자유주의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1997년 말부터 약 3년간 IMF 경제신탁을 받은 이후로 한국경제 체제의 강고한 프레임이 되었다. 그것은 한국경제가 유감스럽게도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강령과 지침을 집대성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희생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정부는 긴축재정으로 일관했다. 발전주의 국가체제의 빈약한 복지는 기초생활수급권 제도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연계복지’로 전환되었으나, 사회복지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낮았고, 오늘날에도 그 비율은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고용안정, 교육, 의료, 주거 복지 등에서 정부 지출이 좀처럼 늘어나지 않으니, 가계부채가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2021년 2분기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GDP의 104.2%이고, 그것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계부채의 증가는 화폐자본에는 수익의 기회이다. 화폐자본은 가계에 돈을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이자를 받아 수익을 올린다. 대부분의 가계에서 저축의 규모는 보잘것없으므로, 가계는 주택 구입비, 의료비, 학자금, 자동차 같은 고가의 내구 소비재 구매비 등을 마련하려고 빚을 진다. 그 빚은 대체로 할부 금융의 형식을 취한다. 할부 금융은 부채를 통해서 상품 소비를 유지하게 하는 자본의 유력한 전략이며, 국민경제에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불균형한 소득분배에서 비롯되는 불황과 경제위기를 지연시키는 강력한 수단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재정 건전성은 금융자본의 요구에 충실한 교리다. 그 교리에 따라 재정긴축을 시행하는 나라에서는 복지가 후퇴하고,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정부의 공적 역할이 약화되고 축소된다. 우리나라 정부가 이러한 재정 건전성 교리를 방패로 내세우며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나락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으니, 얼마나 얼토당토않은가? 그러한 정부가 바로 재정 독재로 일관하는 정부이다.

재정의 민주적 통제

재정 건전성 교리를 앞세운 재정 독재는 해체되어야 한다. 재정은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하고, 공공정책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여야 한다. 재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려면, 정부가 그 자신에게서 화폐 발행자의 지위를 빼앗은 금융자본의 신기루 같은 궤변에서 벗어나 화폐발행자의 지위를 회복하고, 그 지위에 맞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정부를 화폐 사용자의 지위로 격하하는 통화주의자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극성을 부렸던 시절에도, 정부가 화폐 발행자의 지위에 있다는 사실에는 아무 변함이 없었다. 재정 당국과 중앙은행이 제도적으로 분립한다고 하더라도, 정부 부채의 화폐화가 제도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이상, 정부의 화폐 발행 능력이 사라질 리 만무했다. 정부가 그 권능을 의식하고 그 권능을 제대로 행사한다면, 정부가 할 일은 참으로 많다. 그런 정부의 권능을 팽개치고 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 문을 활짝 연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와 영국의 대처 정부가 우리 정부의 모델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다.(1) 그런 정부의 모델은 미국과 영국에서도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다. 정부가 화폐발행자의 권능을 의식하고 그 권능을 행사하는 한, 정부의 예산은 세수에 제약되지 않고,(2) 정부가 정한 재정준칙에 제약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부의 예산을 제약하는 것은 국회의 결의뿐이다.

물론 정부가 화폐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피해야 한다. 고용이 완전고용에 가까워지고 설비가 완전 가동 상태에 있는데도 정부가 화폐를 늘린다면,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고용률이 낮고 설비가동률이 낮은 상황에서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정부는 고용을 늘리고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공공정책을 추진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재정정책을 펼쳐서 화폐 공급을 늘려야 한다. 정부의 화폐 공급이 정부 부채의 화폐화라면, 정부는 그것도 무릅써야 한다. 거기서는 재정 건전성 교리가 설 곳이 없다.

정부가 화폐 발행자로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 조건 아래서 공공정책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능력이 있다면, 어떤 공공정책을 수립하여야 하는가, 그 공공정책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할당하여야 하는가는 재정 당국의 관심사에 그치지 않고, 시민사회와 사회세력들의 큰 관심 사항이 된다. 재정 당국이 사회경제적 요구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정 할당의 전권을 행사하는 독재적 태도는 용인될 수 없다. 개발 독재 연대에 정부가 자본 축적과 배분을 총괄하는 총자본가의 역할을 맡고 재정 당국이 재정 할당의 전권을 행사했지만, 그런 정부는 더는 있을 필요가 없다. 경제개발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 기업의 잉여가치가 엄청난 규모로 축적되는 단계에서는 정부가 자본 축적을 주도하거나 자본 축적의 매개자가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는 서로 갈등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공동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한 방안은 공공정책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공공정책의 우선순위와 자원 할당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을 때 제대로 마련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여야 할 공공정책과 이를 위한 자원의 할당은 반드시 사회세력들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통하여 사회적 합의를 거친 뒤에 국민대표들에 의한 정치적 합의를 통해 확정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화주의적 정부가 공공정책을 수립하고 재정을 집행하는 민주적인 절차일 것이다.

우리 시대는 재정의 민주적 통제에 충실한 대통령을 원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느 대선 후보가 재정의 민주적 통제를 실현할까를 가늠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래의 대통령은 재정 독재를 해체하여야 한다. 그는 정부의 화폐 발행자 지위를 회복하고 재정의 민주적 통제를 구현하여 정부의 공공성을 최대한 구현하여야 할 책무가 있다.

국민의힘 당 윤석열 후보는 재정 건전성 신화에 포획되어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정부 부채를 크게 늘려서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긴다고 비난하고, 자신이 집권하면 1년 이내에 재정준칙을 세워서 국가 부채를 관리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2025년 시행을 목표로 준비하는 ‘한국형 재정준칙’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정확한 경제전망, 재정 운용의 책임성, 재정 통계의 투명성으로 책임 있는 재정준칙을 뒷받침하겠다”고 호언했다. 국가 부채가 줄어드는 그만큼, 민간부채가 증가한다는 거시회계학적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는 신자유주의적인 재정 교리를 옹호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역시 정부의 지출이 세수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지, 그렇지 않은 재정 운용은 퍼주기식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한다.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정부 예산을 세수에 묶어야 한다는 것은 정부를 화폐발행자의 지위에서 화폐사용자의 지위로 격하하는 케케묵은 통화주의적 주장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화폐주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기에 그는 국가 부채를 늘려서라도 소상공인을 지원하여야 한다는 이재명 후보의 주장이 ‘무지의 소산’이라고 비난할 수 있었을 것이고, 기축통화 국가가 아닌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이 40%가 적당하다는 주장을 펼치기까지 했을 것이다.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주장하면서 재정 당국의 재정 건전성 고수를 비판했지만, 대선 후보로서는 아직 재정 건전성에 대해 딱 부러진 언급을 한 적이 없다. 그는 사회적 통합과 연대를 위해 ‘사회연대세’ 신설과 재정 확대를 주장했다. 그것은 재정 확대를 위해 증세하여야 한다는 고전적인 견해에 바탕을 둔 주장이다. 그가 사회연대세 같은 부유세를 도입하겠다고 나선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더 커지는 소득 격차와 자산 격차의 현실을 고려할 때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지만 심상정 후보가, 필요한 경우, 정부가 부채를 짊어지더라도 공공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재정 건전성 이데올로기를 가장 확실하게 깨뜨리고자 하는 대선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다. 지난해 12월 23일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국가부채비율이 45%가 적절하다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이를 85%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코로나19 재난 상황에 놓인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원하자고 목소리를 높였고, 정부의 방역 조치로 인해 손실을 보는 소상공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정부 예산을 편성하는 기획예산처를 재정기획부에서 떼어내어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선출 권력인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에 따라 정부의 공공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려면 재정 건전성 이데올로기의 화신인 기획재정부에서 정부 예산 기획 업무를 해방해야 한다는 생각을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는 정부가 재정 건전성의 제약을 깨뜨리면서까지 추진해야 할 공공정책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더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누가 정부의 화폐발행자적 지위를 회복할 수 있는가? 누가 정부의 재정정책을 바로 세울 수 있는가? 누가 재정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고 공공정책을 통하여 사회적 통합과 복지를 최대한 구현할 능력이 있는가? 공화국 시민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면서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이 땅에서 맛보려는 기독교인들은 재정의 민주적 통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분명한 입장과 태도를 정하고 나서 투표장을 찾아야 할 것이다.

미주

(미주 1) 한국은행법 제75조는 중앙은행이 정부 채권을 직접 매입하는 장치까지 두고 있다. 정부가 마음을 먹으면 상업은행을 거치지 않고서도 채권을 발행하여 화폐를 창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주 2) 조세는 정부가 세금으로 받기로 한 것은 무엇이든 화폐로 승인하고 통용하게 하는 힘이다. 세수는 정부 활동의 결과이지, 그 전제가 아니다. 정부는 세금을 걷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이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한 것이 현대화폐이론이다.

강원돈(길마루글방지기/민중신학과 사회윤리)  kwdth5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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