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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무엇과 싸우고 있나요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2.02.13 15:11
▲ 우리 안에 쌓여 있는 욕망과 싸우는 일은 믿음을 필요로 한다. ⓒGetty Image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름 받았고 너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다.(디모데전서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은 누구를 대상으로 싸우는 것인지요? 앞뒤 문맥에 비춰보면 그것은 특히 자족할 줄 알고 부에 대한 욕망을 제어하고 부를 사랑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이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 경향을 놓고 볼 때 이는 상당히 어려운 주문입니다.

그러나 부를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경고는 부와 믿음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을 일러줍니다.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양자에 대해 말한다면 사랑의 속성 때문에 부와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를 사랑하는 것이 믿음에서 떠나는 결과를 낳았다고 디모데전서 기자는 말합니다(10절).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예수께서도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마 19,23-24). 이는 부 자체보다도 하나님 앞에서조차 부를 내려놓을 수 없는 태도 때문입니다. 부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그가 우리에게 넉넉히 주시고 누리게 하십니다. 선한 일을 하는 넉넉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18절).

그런데 그가 아니라 부에 희망을 두면 주변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를 축적하기 위한 싸움에서 수단이 되거나 이겨야 하는 ‘적대적’ 경쟁자가 됩니다. 밟고 올라가야 하는 사다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 사랑은 다른 사람을 보게 하고 함께 선을 이루는 동료로 대하게 합니다. 게다가 하나님 사랑은 오직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타자 사랑이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대상은 무엇보다도 내 속에 있는 부에 대한 욕망이 될 것입니다. 이를 제어하고 자족할 수 있을 때 거기서 믿음의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이 생겨날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이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비로써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혐오를 조장하고 차별을 당연시하는 사회는 배제와 폭력을 낳고 불평등과 불공정을 정당화합니다. 이것이 불의의 실체입니다. 믿음의 선한 눈은 이러한 현실을 보고 설 자리가 어디인지 파악하고 행동하게 할 것입니다. 거기가 믿음의 선한 싸움이 전개되는 바로 그곳이며, 바로 거기에 주님이 계심을 깨달을 것입니다.

지금 싸움이 가장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곳은 불행하게도 선거판입니다. 혐오와 차별과 보복과 전쟁이 이익과 권력을 위해 이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눈먼 교회들은 오히려 그러한 세력 편에 서서 그리스도와 싸우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한 눈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오늘이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넉넉함을 너른 마음으로 선한 일에 쓰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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