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를 둘러싼 모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자연신학의 논쟁점이다. ⓒGetty Image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피조물의 진리들과 말들, 빛들에 대한 바르트의 이러한 견해는 “비록 바르트가 세상의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과는 분명히 구분하고 있으나 이들을 통해서 화해의 진리가 말해진다면 이것은 결국 자연신학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1)고 단언할 수 있는가. 정말 바르트는 자연신학을 은밀하게 인정하고 그것과 타협한 것인가?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2) 자연신학을 반대하는 바르트의 입장은 여기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3)

『교회교의학』 “화해론”에 나타난 자연신학에 대한 논의

바르트가 ‘화해론’ 제3권을 시작하면서 맨 처음에 전체의 주제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CD Ⅳ/3-1, 3)이라는 ‘바르멘 신학선언’을 진술한 것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화해에 대해 말하는 ‘화해론’ 제3권에서 모든 자연신학을 배제한다는 선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분명하게 바르트의 그리스도론적 집중을 대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많은 빛들과 진리 가운데 어느 하나나 최고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생명의 빛”이다.

바르트는 그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표현한다:

이와 같이 바르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빛의 근원”(CD Ⅳ/3-1, 46)이고, 하나님의 유일하신 말씀이라고 선언하면서, 그의 모든 배타적이고 유일한 주장의 기초가 되는 두 가지 특유한 진술을 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무이한 하나님이다. 주님으로서 그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지니고 행동하며 사람들에게 그의 주장을 한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결정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그는 그의 진리를 확인하고 보증하기 위해 다른 어느 것을 가리킬 필요가 없다. 그는 그 자신에 대한 보증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의해 선포된 것은 단지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만 검증될 수 있기”(CD Ⅳ/3-1, 105)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성”에 참여하는 “유일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하나님 자신에 의해 말해졌고, 하나님이 선하신 것처럼 선하며,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하나님 자신처럼 듣고 귀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CD Ⅳ/3-1, 96, 98)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이 참 하나님이기 때문에, 배타적인 진술의 두 번째 부분이 가능하다. 우리는 그의 안에서 완전한 구원과 갱신을 얻는다. 그는 우리가 신뢰해야 하고 살든지 죽든지 순종해야 하는 유일한 구주이다(CD Ⅳ/3-1, 87).

그러므로 바르트에 의하면 신학의 임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하나님에게 이르는 사람의 길을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취한 길, 곧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을 고백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 길은 바로 화해의 길이고 계시의 길이다. 바르트는 이것의 의미를 몇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 …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의 빛이고, 하나님의 계시이다”(CD Ⅳ/3-1, 97). 둘째, 더구나 “그는 하나님이 그분 자신과 그분이 향해 서는 사람들에 관해 말하는 것에 대한 전적이고 완전한 표현이다”(CD Ⅳ/3-1, 99). 셋째, 그리스도는 “자신을 우리가 유일하게 신뢰해야 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예언자”로 나타낸다(CD Ⅳ/3-1, 103). 만일 이것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의 계시에 대한 참된 성서적 진술들이라면, 그때 사람에게 말해지는 하나님의 온전하고, 유일하고, 구원하고, 스스로를 입증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따라서 다른 어떤 말씀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하나님에 관해 주장하는 다른 어떤 가정된 말을 따르는 것은 거짓 신을 따르는 것이다. 유일한 참된 하나님은 자신에 관해 말했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4)

자연신학과 세상의 빛들과 진리들과의 차이

그러면 세상의 빛들과 진리들에 대한 논의는 자연신학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바르트는 두 가지 사실을 말한다. 세속의 영역에서 말해지는 참된 말들과 소위 자연신학 사이에 있는 첫 번째 차이점은 전자가 예언자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증거와 그것의 봉사에 쓰여진다는데 있다. 그러나 “성서와 교회를 제쳐놓는 자연신학을 통해서는 단지 최고 존재, 만물의 창조주와 지배자이신 하나님의 실존에 관한 추상적인 정보들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CD Ⅳ/3-1, 117). 그와 같은 최고 존재는 결코 유일한 하나님, 살아 계신 참된 하나님과 동일시될 수 없다. 그러나 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전승된 성서의 증언과 완전히 일치하고, 따라서 이 증언에 의해 검증되고 비교된 성서와 교회의 울타리밖에 있는 참된 말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들 안에서 아버지로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자기를 알리는 증거들이다”(Ibid.).

둘째로, 그러한 참된 말들이 있을 수 있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참된 하나님 때문이고, 성서 안에서든, 교회나 혹은 교회 밖의 세상에서든 언제나 기적적인 것이다. 자연신학은 인간의 자연적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참다운 신학은 인간과 세상에 있어서 그들을 위한 활동 가운데 있는, 언제나 인간의 능력을 초월해 있고, 그래서 기적인 말씀에 관해 말한다.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은 언제나 은총의 이 기적에 근거하고 있고 그러한 것으로서 ‘자연적’ 지식을 거짓된 신의 그것으로서 배제하고 폭로한다(CD Ⅳ/3-1, 118). 이 점에 있어서 바르트는 칼빈의 견해를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서 바르트에 의하면 그 둘 사이에는 커다란 심연이 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으로 이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상들의 예배로 이끄는 것이다. 전자는 진리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하여 적절한 맥락에 놓는 것이고, 후자는 그로부터 그것들을 떼어내어 허위적이고, 거짓되게 만드는 위험한 탈선이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세계의 ‘빛들’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참된 빛에 비추어서, 그리고 그의 능력에 의해서만 빛을 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고유한 피조적 진리에 대한 증거의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들을 “비인간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CD Ⅳ/3-1, 148). 바르트는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과 비교하여 그 빛들의 상대적인 특징을 다양한 방식으로 말했다. 그 빛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구속력 있는 권위가 없는 “형식들”, “조건들”과 “전제들”일 뿐이다(CD Ⅳ/3-1, 155). 바꿔 말하면, 그 빛들은 피조물의 진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도 검증하지 못한다. 그 자체로 그것들은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주지 못한다. 그것들은 단지 “가설들”, “잠정적인 가정들”(CD Ⅳ/3-1, 163)에 불과할 뿐이고, 결코 궁극적인 현실을 지닌 결정적인 진리에 대한 증언이 될 수 없다.

왜 바르트에게서 자연신학의 출발점을 찾고자 하는가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바르트는 하나님의 화해하시는 사랑을 논한 ‘화해론’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는 바르멘의 정신을 재확인하며 그의 단호하고 배타적인 그리스도론적 집중을 관철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현존하는 하나님이시다.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그가 진정으로 “이 세상의 유일한 참 생명의 빛”이심을 나타낸다. 따라서 참된 이 빛 앞에서 다른 모든 빛들은 그 빛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러한 배타적인 그리스도론적 진술을 통해서 창조세계의 언어들, 빛들과 진리들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와 반대로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바르트에게 있어서 기독론은 인간, 자연, 그리고 창조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서만 있는 그대로의 그 모든 것들이 이해되고 알려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바르트의 신학에 자연신학이 들어설 여지가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위에서 바르트가 그의 신학의 전체 발전과정 속에서 일관되게 자연신학을 거부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바르트가 자연신학을 반대했던 이유는 결코 타락한 사람에 대한 실망이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인간의 문화에 대한 왜곡된 편견 때문이 아니라(7), 자연신학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은총을 향한 인간의 개방성”을 말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당시에 히틀러와 나치 체제를 신성시했던 “독일 기독교인들”의 기초를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1956년 “하나님의 인간성” 이후 ‘화해론’(Ⅳ/3-1)에서 바르트가 피조물의 진리들, 말들, 빛들에 대해서 말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자연신학의 가능성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화해사역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바르트가 화해론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마치 그뤼네발트(M. Grünewald)가 이센하임 제단 뒤편에 그린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림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세례 요한처럼, 그러한 화해사역을 성취하신 “생명의 빛”, “하나님의 유일하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주권을 전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는 바르트가 “하나님의 인간성”을 전후하여 하나님의 신성에서 하나님의 인간성으로 갑작스럽게 강조점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1931년 이후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인간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기 바르트와 후기 바르트 사이에 갑작스러운 전환이란 없다.(8)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혼동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았던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신성을 강조할 때에도 결코 하나님의 인간성을 놓치지 않았고,(9) 하나님의 인간성을 강조할 때도 결코 하나님의 초월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인간성”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을 인상깊게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인간성에 관하여 무엇이 더 말해져야 하는 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10)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화해(구원)의 사역은 단지 “위로부터 아래로 향한” 운동에 의해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화해된 사람의 “아래로부터 위를 향하는” 운동을 포함한다.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르트는 이점에서 모든 일방적인 “위로부터의” 기독론과 모든 일방적인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거부했다(CD Ⅳ/3-1, 3-20). 단네만은 바르트의 기독론을 “주-종의 변증법”으로 설명하고, 이 기독론은 모든 일방적인 “위로부터의 기독론”과 모든 일방적인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처음부터 배제한다고 평가한다.(11)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두 가지 운동의 통일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위에서부터”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갈 수 있겠는가?(엡4:9-10). 그래서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주-종의 변증법적 운동과 역사”를 동시에 붙잡지 못하면, 바르트의 기독론에 대한 이해는 심각하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르트의 신학에서 자연신학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20세기 교회의 교부로 일컬어지는 바르트를 통해서 타종교와 대화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세속주의, 무신론과 대결하기 위해서인가? 물론 이런 대화, 만남은 바르트의 ‘화해론’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바르트는 타종교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과의 관계없이 인간을 해석하고, 그것도 인간의 실존을 가장 적절히 해석한다고 주장하는 세속적 휴머니즘과 만나고 대화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기독교 신학적인 방법을 ‘화해론’에서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12)

그러나 바르트에게 교회와 세상 사이의 대화의 기초는 ‘자연신학적 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사역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그리고 사실상 그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있다(CD Ⅳ/2, 155; CD Ⅳ/3-1, 117). 그리고 대화는 이렇게 그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 참된 지식에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대화의 기준은 계시이지, 불신앙이 아니다. 왜냐하면 불신앙은 화해 속에서 계시된 인간의 현실적인 본성에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지 성서만이 사람에게 계시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고 그에게 화해의 사실을 확신시킬 수 있다. 자연신학은 결코 인간을 도울 수도 없고 신앙에 이르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자연신학과 그것의 전제들을 진지하게 다루는 것은 대화에 있어서 인간에게 해악이 될 뿐이다. 만일 자연신학이 일반적인 출발점이 되고 그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길이 가려진다면, 불신앙은 현실적인 신앙이 아닌 어떤 거짓된 가능성들로 이끌어 갈 것이고, 결국 그 자신이 승리를 얻었다고 생각할 것이다.(13) 따라서 만일 어느 누가 바르트의 신학을 토대로 타종교나 세속주의 등과 대화하고자 한다면, 그에게 가장 우선적인 일은 바르트의 신학에서 자연신학의 가능성을 찾는 일이 아니라, 바르트가 제시한 이 대화의 원칙과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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