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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회의 죄책과 신앙고백으로서의 사회참여1970년대 진보교회 사회참여 ⑷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 승인 2022.04.19 16:24
▲ 1973년 5월 도쿄의 아시아행동자료센터(DAGA) 이름으로 오재식·지명관·김용복 교수가 함께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한 우려를 밝힌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문’을 작성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전달했다. 사진은 70~80년대 국외 한국 민주화운동의 한 기지였던 ‘동경그룹’ 회원들로, 왼쪽부터 이인하·박형규 목사, 지 교수, 패리스 하비·최경식 목사 등이다.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1973년)과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1974년)

1970년대 한국 개신교 진보진영 사회참여의 신학적 전거를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은 1973년 5월 20일에 발표된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과 1974년의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이다. 억압적 상황에서 비밀리에 세계교회에 전해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은 당시의 상황을 극명하게 밝히고 있다. 권력집중과 독재의 절대화로서의 유신체제, 힘과 위협에 의한 지배, 양심과 신앙의 자유의 파괴, 대중조작과 기만, 정보통제, 수탈과 부정부패, 집권유지와 강화의 구실로 악용되는 분단상황 등으로 시대를 규정한 ‘선언’은 ‘하나님을 향한 죄책 고백’이며, ‘오늘의 상황 속에서 진리를 말하며 그것에 따라서 행동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대한 복종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언’에 참여한 이들은 ‘하나님이 눌린 자들, 약한 자들, 가난한 자들을 반드시 의로 보호해 주시는 분이며, 역사에 있어서 악한 세력을 심판하시는 분임을’, ‘메시아이신 예수가 불의한 권력은 무너지고 메시아의 나라가 올 것을 선포하신 것과 이 메시아의 나라가 가난한 자들, 눌린 자들, 멸시받는 자들의 안식처가 될 것임을’, ‘성령이 개인 생명의 부활과 성화를 위하여 활동하실 뿐만 아니라, 역사와 우주의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활동하심을’ 믿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고난 받고 눌린 자들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예수 그리스도처럼 눌린 자들, 가난한 자들, 멸시받는 자들과 운명을 같이 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세상에서 사회적 정치적 개조를 위하여 싸우라는 성령의 명령’ 앞에 서있다고 고백한다.(1)

삼위일체론적으로 짜여진 ‘선언’은 70년대 진보진영의 사회참여가 죄책 고백과 하느님의 명령에 대한 복종에서 비롯된 신앙고백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익명으로 발표한 ‘선언’과는 달리 66명의 그리스도인이 서명하여 1974년에 발표한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성명’은 ‘하느님의 선교’ 신학을 기초로 하여 당시 쟁점이 되었던 구체적인 문제들에 접근한다. ‘국가와 종교’, ‘인권’, ‘교회의 선교’, 세 부분으로 구성된 ‘성명’은 먼저 권력의 절대화를 우상으로 규정하면서, 정교분리를 주장한 당시의 집권층에 대하여 ‘정치와 종교 또는 국가와 교회의 분리는 본래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위의 야합에서 오는 권력의 절대화와 그것에 따르는 횡포와 부패를 막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특정한 종교에 대한 정치권력의 차별대우를 막기 위한 것이지 종교와 정치의 대상과 영역을 분리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성명’은 ‘인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오직 그에게 속했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신앙’임을 천명하면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막 27,28)는 예수의 말씀이야말로 ‘억압적인 제도나 법에 대한 첫 인권선언’이라고 말한다. ‘성명’은 더 나아가 복음의 핵심인 하느님의 나라는 ‘역사적, 사회 정치적 영역을 포함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며, 영적이라고 표현하는 어떤 부분에 국한한 개인적 타계적인 어떤 특유의 종교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선교는 현대 사회에서 정치적 사회적 활동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고’, 구체적으로 ‘인간의 자유화, 인류의 사회화, 제도의 인간화, 사회정의, 세계평화, 인간과 자연과의 화해에 종사하게 된다’고 한다.

‘성명’에 서명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일한 진보 그리스도인들이 정작 만든 것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인간의 나라였을 뿐이라는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비판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선교를 ‘정치적 사회적 행동으로 수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선물로 오는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때문이거나,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행동이 단번에 결정적인 이상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구약의 예언자들, 신약의 사도들, 그리스도교 역사상의 증인들과 순교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활동에서 그 삶과 행동의 표본을 보기 때문이다’고 주장한다.(2)

‘성명’은 ‘신학적 성명’이 언제나 구체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신앙고백에 근거한 것임을, 진보진영의 하느님 나라 운동이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지향하면서도 역사 자체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확신하지만 그것이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한다.

남겨진 과제

1970년대 한국 개신교 진보진영 사회참여의 신학적 전거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더 검토해야 할 자료들이 많이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은 도시산업선교활동(3), 기독학생운동, 재야 민주화 세력과의 연대활동에 대한 신학적 근거들이다. 이 시기에 있었던 수많은 형태의 협의회와 대책회의 등의 자료에 대한 분석도 진전되어야 한다.

또한 진보적 기독교 운동을 용공으로 매도하기 위하여 제시되었던 책자들, 예를 들면 ‘기독교 선교에 관한 서울 선언’(1975년),(4) ‘한국기독교와 공산주의’(1976년초 한국종교문제연구회라는 단체명의로 발간),(5) 서울 시경 제2부국장이며 예장 영도교회 장로라고 밝힌 김재국의 ‘한국기독교의 이해’(1976년 발행),(6) 홍지영의 ‘정치신학의 논리와 행태’(1977년 발행),(7) ‘공산주의 서방교회 침투와 한국교회내의 활동상’(1979년)(8) 등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응도 검토해야 한다. 적대자들의 비판과 그에 대한 대응에서도 정체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면의 한계와 필자의 능력부족으로 진전된 연구는 남겨둘 수밖에 없다. 유신체제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이 시기에 고난 받은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의 개인적 증언, 한국 그리스도인들과 연대했던 해외 그리스도인들의 증언도 더 발굴되고 수집되어야 한다.

그러나 잠정적으로나마 우리는 1970년대를 민주주의가 유보되고 인권이 탄압받던 개발독재의 시기로 규정하고, 개신교 진보진영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인권운동이 죄책고백과 신앙고백 위에서 전개된 시기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신학적 전거를 나는 한국에서 60년대 말에 알려진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에서, 그리고 ‘하느님의 선교’와 한국의 민중운동 전통이 합류한 ‘민중신학’에서 찾았다. 민중신학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적 하느님의 선교 신학이며, 에큐메니칼 신학의 지평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은 최초의 한국 신학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70년대 암울했던 ‘겨울 공화국’에서 고난받고 투쟁하면서 한국의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근거도 민중신학에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주

(미주 1) 이덕주·조이제 엮음,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 (서울: 한들 출판사, 2000), 270-276.

(미주 2) 위의 책, 278-286.

(미주 3) 예를 들면 1978년 KNCC 주최로 열린 ‘산업선교신학정립협의회’에서 채택된 ‘산업선교신학선언’ 등이 그것이다. 참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87), 1248-1256.

(미주 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II』 (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87), 852-858 참고.

(미주 5) 위의 책, 859-869 참고.

(미주 6) 위의 책, 869-877 참고.

(미주 7) 위의 책, 880-891 참고.

(미주 8) 위의 책, 859-869 참고.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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