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시대 전망과 목회자 운동: 미래 세대와의 대화 ⑷
최병학 목사(기장, 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2.07.09 15:05

시대 전망

1997년은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일어나고 주변에 머물러 있던 진보적 정책 패러다임이 주류 무대 위로 올라온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 25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놀라운 진보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남북관계도 복지도 교육도 경제에서도 혁신이 이어졌습니다. 보수진영마저 진보 패러다임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진보 패러다임은 낡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 그럴까요? 25년 전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경직된 도그마들을 너무 고집해서 생긴 일 아닐까요? LAB2050 이원재 대표는 다섯 가지 도그마를 제시합니다.

 

▲ <대형 원전과 혁신형 SMR 비교>

“첫째, 탈원전이라는 도그마다. 반핵운동은 1980년대 이후 반미운동과, 이후 환경운동과 결합하면서 탈원전을 진보의 주류 원칙으로 부상시켰다. 하지만 원전이 화석연료보다 탄소배출이 적고 재생에너지보다 안정성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이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손을 잡고 탄소중립 동맹을 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1)

“둘째, 햇볕정책이라는 도그마다. 북한은 25년 전과 달리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햇볕으로 나그네의 외투는 벗길 수 있지만, 그의 주머니 속 수류탄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당분간 ‘긴장 속의 긴 평화’가 현실적인 목표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대북 정책 기조를 다시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셋째, 평등교육이라는 도그마다. 경쟁교육을 반대하는 정책 기조 탓에, ‘수월성(효과성 극대화)’은 진보 교육에서 금기어가 됐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문제지만, 경쟁을 완화하려다 경쟁력이 낮아진다면 더 큰 문제다. 2000년 64만 명이던 출생아는 지난해 26만 명이 됐다. 적은 수의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수 있도록 능력을 갖춰줘야 한다. 창의적이고 협력적이면서도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이 필요해진 것은 아닐까?”

“넷째, 지방분권이라는 도그마다. 진보는 지방분권에 앞장섰지만, 결과적으로 권력은 지역주민 대신 제왕적 시장·군수와 공무원들에게로 분산됐다. 중앙에서 대통령은 삼성에 투자를 구걸해야 하지만, 지역에서는 상인들이 군수에게 지원을 구걸하며 살아간다. 예전에 무시하던 시장·군수·구청장 선거에 전직 국회의원들이 출마하는 모습은 이런 지형을 반영한다. 이제 지방자치단체 권한 늘리기는 잠시 멈추고, 진정한 주민자치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구조를 설계할 때가 된 것 아닐까?”

“다섯째, 공공부문 확대라는 도그마다. 진보는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를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셀 수 없을 만큼의 공공기관과 중간지원조직이 민간을 관리·감독하며 운영하는 나라가 됐다. 현장의 일손은 늘 부족한데, 행정과 감사 대응 업무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이제 공공부문 개혁을 진보의 의제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닐까?”

또한 진보는 몇 가지 콤플렉스 탓에 근원적 가치를 실천하는 데 소극적이기도 했습니다. 이원재 대표는 ‘빨갱이 콤플렉스’, ‘경알못 콤플렉스’를 소개합니다. ‘빨갱이 콤플렉스’의 경우 기본소득제 등 파격적 사회보장 확대 논의가 나올 때마다, 상당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은 ‘재정 낭비’라는 공격을 걱정합니다. 실패한 부동산 정책으로 비판받자, 실패 원인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세금부터 깎아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반응은 재정 확대나 증세 주장은 사회주의자라며 공격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탓에 나옵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면 ‘빨갱이’로 몰리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식인 것입니다.

‘경알못 콤플렉스’의 문제도 컸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탄소중립 안에 대해서조차 ‘기업이 반대해서’ ‘현실성이 없어서’ 안 된다는 ‘이른바 진보주의자’들도 많았습니다. ‘진보는 경제를 모르고 성장에 반대한다’는 비판에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찢어진 양말을 다시 기워 신으며

대선, 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의 과제에 관하여 정치평론가들이 하는 말입니다(두루 엮어서 한 문장으로 만들어 봅니다).

“제 눈에 안경을 벗고 정확한 현실 인식을 해야 한다. 특정한 방향성을 잡고 혁신을 한다기보다, 당내에서 무엇을 어떻게 파괴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파괴할 과제는 자신들이 압도적 입법 권력을 가지고 우리가 다 할 수 있다는 기득권 의식일 수도 있고, 다양한 의제가 들어올 여지를 점점 사라지게 하는, 소수의 고관여층이 선거에 반복적으로 동원되는 구조일 수도 있다. 아울러 미래지향적인 의제를 만드는 자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이만 젊은 정치인들에 대한 성찰이 더해져야 한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 교단 총회(목정평은 물론, 개신교 선교 단체 포함)와 개별 교회에도 적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 눈에 안경을 벗고 정확한 현실 인식을 해야 한다. 특정한 방향성을 잡고 개혁을 한다기보다, 교단 총회(교회) 내에서 무엇을 어떻게 파괴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파괴할 과제는 자신들이 압도적 기득권을 가지고 우리가 다 할 수 있다는 특권 의식일 수도 있고, 다양한 의제가 들어올 여지를 점점 사라지게 하는, 소수의 고관여층이 여론을 주도하는 반복적 구조일 수도 있다. 아울러 미래지향적인 의제를 만드는 자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앙의 연수만 많은 중직자들에 대한 성찰이 더해져야 한다.”

한국개신교 교단과 교회, 그리고 세상이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더불어민주당이 새로워지는 것보다 한국 교회가 새로워지는 것이 더 어려워 보입니다. 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재 대표의 말에서 새로운 희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 진보의 존재 이유는 ‘불평등’과 ‘기후 위기’에 맞서 싸우는 데 있다. 운전자가 경로를 유연하게 바꾸는 데까지는 승객들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목적지를 바꾸면 승객은 하차할 수밖에 없다. 콤플렉스에 휩싸여 목적지를 잊은 결과는 참혹하다. 진보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기후 위기와 불평등 문제 해결은 오히려 멀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목적지를 잊지 말되, 유연하게 경로를 설계하며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짜야 한다. 과감한 전환이 없다면, 진보의 시대는 이대로 종말을 맞을지도 모른다. 다음 25년을 맞을, 새로운 진보의 탄생을 기대한다.”

▲ <찢어진 양말을 기워 신으며>

위대한 철학자 헤겔이 한때 양말을 기워 신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찢어진 양말은 기워 신으면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정신은 찢어진 상태를 극복하면 찬란해진다.” 젊은 날 가정교사를 전전했던 헤겔의 ‘물질적 부족’과 ‘정신의 충만’을 엿볼 수 있는 말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이 훗날 철학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책 가운데 하나인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모토가 되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정신은 자기의식을 갖추게 되면 체세포가 분열하듯 스스로 갈라집니다. 헤겔은 이것을 ‘소외’라고 부릅니다. 아무튼 자기 내부에서 찢겨 피투성이가 된 정신은 탕자와 같은 여행을 통해 불화와 상쟁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상처를 극복하고 돌아와 온전한 하나를 이루게 됩니다. 고향을 찾는 오딧세우스의 여행이 끝나는 것입니다. 성서적으로 말하면, ‘돌아온 탕자’라고나 할까요?

중요한 것은 헤겔의 정신은 한 개인의 정신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개별 정신들의 집합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공동체(사회, 국가, 물론 교회)도 개별 정신의 의식처럼 분열과 갈등을 통해 이를 잘 극복하면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2022년 3월 10일 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결정되었고, 6・1 전국 동시 지방선거도 끝이 났습니다. 검찰 공화국이 언론과 재벌, 그리고 우리 사회 기득권의 카르텔을 더욱 견고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양말을 기워 신습니다. 새로운 세상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기 하지 않습니다. 언제가 ‘바츠’(로 은유되는 이 대한민국)가 해방될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게임 속 결론과 다를 것입니다. 하박국의 노래가 위로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미주

(1) 핵발전에 관해 원전 마피아나 무조건 핵발전을 옹호하는 이들과 달리,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이들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네요. 최근 소형모듈원전(SMR) 같은 경우, 선진국은 수십조원을 투자하고 있는데, 우리는 2028년까지 혁신형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SMR은 대형 원전 10~20분의 1 이하 크기인 전기출력 100~300MWe(메가와트)급 이하의 원전을 말합니다. SMR은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높고 초기 투자비가 적으며 건설기간이 짧아 차세대 원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탄소 감축을 위해 SMR 비중을 높이려는 추세입니다. SMR은 대형 원전에 비해 사고 때 방출되는 방사성 물질의 양이 적어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원전이 작아지면서 안전 설비 또한 축소되고 검사와 관리에 들어가는 기술 비용이 더 증가하므로 경제성 확보 과정에서 오히려 안전이 약화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공기로 원자로를 식히기 때문에 지진이나 쓰나미로 전력 공급이 끊겨도 폭발할 위험이 없습니다. 바닷가가 아니라, 도시 중앙에도 세울 수 있습니다. 초기 투자비가 대형 원전보다 적게 들고, 건설하는 기간도 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최병학 목사(기장, 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병학 목사(기장, 남부산용호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