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사역으로서의 선교는 선교지의 문화를 파괴하지 않는다. ⓒGetty Image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는 라틴 아메리카가 세 번에 걸쳐 침공을 당했다고 말한다. 그 첫 번째 침공은 16세기 스페인 사람들과 포르투갈 사람들의 식민지 정책으로 감행된 것이었다. 두 번째 침공은 19세기에 감행되었다. 비록 스페인과 포르투갈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했지만, 곧바로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권을 쥔 자본주의 체제에 경제적으로 깊숙이 통합되고 말았다. 흑인과 원주민은 이런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주변부로 밀려났으며, 백인우월주의에 의해 경멸당했다.

세 번째 침공은 30년대부터 출발하여 감행되었는데 군사독재정권이 수립되기 시작한 60년대부터 굳어졌다.(1) 구조적인 인권탄압과 다국적기업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이 그 결과였다. 라틴 아메리카 민중은 제도화된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농민을 주변화하고, 노동자를 억압하여 착취하고, 자본가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제도적 폭력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으로서의 선교는 보프가 지적하는 것처럼, ‘라틴 아메리카에서 자본의 제국주의적 형태가 제압되어 사라지고, 절대 다수의 민중이 능동적으로 동참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데서’ 성취된다.(2)

라틴 아메리카는 정치적 억압, 경제적 착취와 사회적 소외만이 아니라 침략자의 문화에 의한 전통문화의 파괴와도 대결해야 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전통문화의 파괴에 그리스도교 선교가 비극적인 몫을 담당했다. 그리스도교 교리교육이 식민지 정책과 계획에 따라서 진행되었고, 유럽식 교회체제가 이식되었다. 선교사들은 예외 없이 ‘그리스도교 세계’를 하나님이 우주를 위해 바라신 질서와 동일시했다. 교회가 직접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되었다.(3)

또한 식민지화는 ‘타인을 형제자매인 타인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육체를 지배하고, 영혼을 정복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타인은 폭압적으로 유럽화 되었고, 교육과 교리교육은 사람들을 지배자의 문화에 맞추어 길들이는 과정을 의미했다’.(4)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으로서의 선교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타인이 자기와 똑같은 형제자매임을 인정하고, 타인이 가지고 있는 제반 가치를 인정하고, 타인이 자기와 동등한 인격적 존엄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타인의 문화가 자기들의 문화와 동등한 존엄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성취된다.(5)

라틴 아메리카 민중은 토착종교와 문화를 악마시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문화를 강요당했다. 모든 선교사들, 특히 진보적이고 원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한 선교사였던 프라이 페드로 데 코르도바(‘원주민에게 역사적 방법으로 가르치고 지식을 전하기 위한 그리스도교 교리’, 산토 도밍고 1510-1521, 멕시코 1544)(6)와 바르톨로메 라스 카자스(‘만백성을 참된 종교에로 끌어들이는 유일한 방법’, 1537)같은 예언자적 선교사들마저, 그리스도교만이 유일한 참 종교이고 원주님의 종교는 거짓된 악마적인 업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선교는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방법이냐, 섬세하고 부드러운 방법을 취한 것이냐는 선택이 논란거리였을 뿐, 그 두 가지 방법 모두 동일한 효과, 즉 원주민의 회개를 겨냥하고 있었다. 원주민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신 유일한 질서는 그리스도교 세계의 질서라고 보았다. 그래서 종교적인 동시에 문화적인 그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모든 사람에게 강요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7)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으로서의 선교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이 자기네 운명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고유한 문화적 뿌리를 표현하는 사회관계와 가치를 창조’하는 데서, 또한 ‘원주민과 흑인과 혼혈인을 포함한 가난한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데서 성취된다.(8) ‘모든 사람이 자기 문화적 수단과 상징과 전통을 가지고 역사의 하나님을 알고 찬양하고 섬길 수 있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회복하는 것’(9)이야말로 성령의 사역으로서의 선교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1985년, 페루를 방문했을 때, 안데스 원주민 몇 사람, 곧 콜라수요(아이마라스)의 원주민 운동가 막시모 플로레스, 원주민 정당원(아이마라) 엠모 발레리아노, 투팍 카타리(케스와) 원주민 운동가 라미로 레이나가가 교황청에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서가 억압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다(딤후 2,9). 성서는 해방의 원천이기도 하다. 보프도 ‘식민지화하는 복음화 안에 이미 자유롭게 하는 씨앗이 보존되어 있고 어느 날엔가 자기가 묻혀 있던 땅에서 움터 나오고 역사 속에서 자기 길을 찾게 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11)

또한 선교사는 항상 하나님 자신보다 뒤에 도착한다는 것이 보프의 인식이다. 선교사들보다 먼저 항상 민중의 의식과 역사와 사회와 사건과 운명 속에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고 있는 삼위일체인 하나님이 도착하여 계신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자신이 선교사이시다. 그리고 진정한 선교사는 자신의 선교활동에 앞서, 인간적인 사악함이 남기는 오점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이미 해방과 구원의 사역을 앞서 행하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현존을 신앙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선교사이다.(12)

그러므로 진정한 선교전략이라는 것도, 선교사가 원주민, 혹은 흑인에게 회개하고 나면, 그 다음에 원주민과 흑인이 주님에게 회개하는 방식과 순서로 전개되는 것이며,(13) 그런 방식과 순서는 선교사가 오직 성육신 하신 하나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유와 진리의 영이신 성령에게만 복종할 때 가능할 것이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