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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과 함께 춤추기예상치 못했던 질병 일기 (2)
정리연 | 승인 2022.10.29 16:05
ⓒCP Media Pte Ltd / Alamy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개인 질병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은 나처럼 신중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

새로운 루틴이 생기다

‘팅’, ‘윽’, ‘삐빅’. 아침마다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바늘로 손가락 찌르기. 바로 공복 혈당 체크다. 한 달 넘게 하고 있지만, 내가 내 손가락을 찔러서 피를 내는 게 날마다 무서워서 눈이 질끈 감긴다. 팅! 소리를 내며 바늘이 피부를 뚫으면 윽! 소리가 절로 난다. 테스트지에 혈액을 묻히면 5초 후에 화면에 혈당 수치가 뜬다. 그 숫자에 따라 하루의 컨디션이 달라진다고나 할까? 비당뇨인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치이지만 하루 전보다 1이라도 낮으면 ‘아, 어제도 관리 잘했다!’ 하는 뿌듯함이, 그 반대이면 ‘에고, 어제 그걸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혹은 ‘어제 걷기 운동을 빼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자책감이 들곤 한다.

수치를 기록한 후에는 따뜻한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신다. 당뇨와 위에 좋은 식단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가 내가 먹을 아침과 아이들이 먹을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 시간은 늘 빠듯하니까 가능하면 빨리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을 하곤 했었는데 요즘에는 가능하면 시간과 마음을 들여서 한다. 서두르지 않고. 왠지, 정성을 들인 음식이 몸과 마음을 더 다독여주는 느낌이다. 점심과 저녁 식후에는 공원에 나가 걷기 운동을 한다. 걸음 자체가 힘들어서 느릿느릿하지만, 다리 근력을 키우기 위해 이게 최선이다. 너무 피곤해서 정말 하기 싫은 날은 집에서 스트레칭으로 대신한다.

동정과 희망 사이에서

처음에는 몸의 증상과 건강검진 결과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어렵고, 앉았다가 일어나기도 힘들고, 팔다리가 너무 무거워서 일상생활도 벅차다고. 당뇨와 고혈압에 위까지 망가지고 있다고.

“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저런, 아직 젊은데 어쩌니…”

안타까워하면서도 내 생활 습관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혹은 “지금부터 잘 관리하면 회복할 수 있을 거야. 힘내!” 하는, 열심히 노력하면 건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

솔직히 비참하고 창피했다. 아직 스스로도 완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내 몸 같지 않은 몸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버거웠다. 갑자기 삶으로 찾아온 질병은 몸이 불편해지는 현상을 떠나서 익숙하고 아무렇지 않았던 일상을 낯설게 했다. 왜 이런 질병이 왔을까?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얼마만큼 회복할 수 있을까?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곳, 인터넷 세상

“내가 가진 질병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원인과 증상, 치료법에 관한 정보를 알면 병을 이해하는 것일까? 나는 ‘난소낭종’을 자주 검색하지만 원인과 증상, 치료법에 관한 정보를 얻어도 불안은 여전하다. 오히려 몸에 좋은 것들을 챙겨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더 강해진다.” (다른몸들 기획, 《질병과 함께 춤을》, 36)

도서관과 인터넷, 유튜브에서 당뇨를 검색해봤다. 당뇨란 무엇인가, 끊어야 할 음식, 먹어야 할 음식, 이렇게 하면 이겨낼 수 있다, 약을 끊는 방법, 약 먹지 않고 낫는 법, 합병증, 당뇨 예방법 등 수많은 정보가 있었다. 생활이나 식습관을 살펴봐도 나랑은 거리가 먼 질병인데, 대체 왜? 빵을 좋아해서, 탄수화물 때문에? 에이, 그건 아닐 거다. 한 번에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안 먹는 날도 있는데. 의사 말대로 유전일 확률이 높은 걸까?

그러다가 하나의 문장이 확! 띄었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당뇨와 고혈압이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들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순간, 피부 알러지로 인해 피부과에서 처방받았던 약과 주사가 떠올랐다. 두세 달 전이니까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음 진료 때 의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는데 반응이 별로였다. 그건 아닐 거라는 말씀. 만약에 스테로이드 부작용이라면 당뇨와 고혈압이 일시적일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당뇨와 고혈압 때문이라고 하기엔 이해가 안 되는 증상들이 있었다. 또다시 검색을 막!!! 했다. 구체적인 증상을 입력해가면서.

가장 가까운 질병이 쿠싱 증후군이었다. 100% 딱 들어맞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인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쿠싱 증후군이 올 수 있고 쿠싱 증후군 때문에 당뇨와 고혈압, 체력 저하, 근력 소실로 인한 걷기가 힘들고 앉았다가 일어나기 힘들고… 등등은 나랑 완전 같았다. 그런데 증후군은 신장의 종양 때문일 수도 있다는데 그런 경우에는 수술해야 한다고 나와 있어서 무서웠다. 혹시 나도? 그래도 일단 진료는 받아봐야지! 누구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집 근처 종합병원 내분비과에 예약했다. 종합병원은 절차도 복잡하고 왠지 큰 병이 걸렸을 때 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그동안 동네 의원으로 다녔는데 막상 가보니 그렇지도 않더라.

5g, 작지만 무거운 존재인 부신

“진단은 제가 내릴 테니 증상을 전부 얘기해 보실래요?”
“네. 이러쿵저러쿵 이러고 저러고 해요.”
“음… 스테로이드 약을 그 정도 처방받았다면 그로 인한 쿠싱 증후군일 확률이 커 보이네요. 지금은 약을 안 드시고 있지만, 그 약을 끊어도 되는지 알아봐야 해요. 끊었는데 어떤가요?”
“피부는 재발 없고 괜찮아요.”
“그래요. 그래도 검사는 해봐야겠어요. 금식하고 오셨죠? 오늘 채혈을 총 세 번 할 건데, 나가시면 간호사가 설명해줄 거예요.”

그로부터 일주일 후, 쿠싱 증후군 진단과 함께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콩팥 위에 부신이라는 게 있는데 우리 몸의 중요한 호르몬을 분비해요. 그게 스테로이드인데, 환자분의 경우에 부신이 분비를 안 하고 있어요. 그러면 사람은 죽어요.”
“네??”
“부신 호르몬이 없으면 죽는다고요. 그러니까 지난 몇 개월간 환자분은 부신 호르몬 없이 지내온 거죠.”

쉽게 말하면, 스테로이드를 약이나 주사로 몸 밖에서 지속해서 유입하다 보니, 원래 호르몬을 분비하던 부신이 점점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어? 내가 일하지 않아도 몸속에 호르몬이 유지되네? 그럼 쉬어야겠다”라고. 그래서 부신의 기능이 멈.췄.다!는, 좀 과장하면 내가 언제 갑자기 죽었을 수도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심장이 막 두근두근.
“부신이 제 기능을 할 때까지 약으로 먹어줘야 해요. 소량의 스테로이드를 처방해 드릴게요. 회복하기까지 보통 3~5년 걸려요. 그때까지는 몸이 좀 힘들 거예요. 고혈압과 당뇨도 조금씩 지켜보지요. 두 달 후에 다시 검사해 봅시다.”

주체적인 환자와 그 권리의 중요성

모든 검사를 마치고 당뇨와 고혈압, 스테로이드 약까지 약을 한 보따리 안고 집으로 바로 가는 대신 공원을 빙빙 돌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피부과 약이 아니었으면 이런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내 발로 피부과를 찾아가서 진료받고 처방받은 거잖아. 피부과 약이 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스테로이드가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누가 이렇게까지 유추할 수 있다는 말인가. 피부과에서도 부작용을 설명해주긴 했지만, 가장 염려하게 한 항목은 생리불순 정도였다. 쿠싱 증후군은커녕 당뇨나 고혈압은 꺼내지도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이 100%라고 할 수 있을까? 동네 내과에서는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 나는 환자들이 ‘의사가 전문가인데 가장 잘 알겠지’라며 무조건 의존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의사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의사마다 그 최선의 ‘선택’에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수술 이후에 후유증이나 합병증을 안고 살아갈 이는 환자 본인이며, 몸이 여러 개가 아니니 후회하거나 원망한들 돌이킬 수 있는 방법도 없다.”(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234)

“… 중증 질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처음엔 대부분 믿지 못한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두려움과 슬픔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런 상태에서 다양한 치료법을 알아보고, 다양한 가능성과 자신의 이후 삶을 고려해 이성적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결국 의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지시에 일방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236)

중증 질병은 아니지만, 그동안 돌이켜 보니 내 모습이 이랬다. 전문가인 의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대로 따랐다. 의료 가치관이라는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겪어 보니, 삶뿐만 아니라, 질병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가치관과 결정권이라는 게 꼭 필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좀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내 질병과 치료에 대해 의사와 논의했다면 이렇게 멀리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자괴감과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피할 수 없으니 잘 아플 수 있도록 해야겠지. 아직 초보 환자(?)인 나는 내 질병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에 있다. 그래도 아직은 완치에 대해 불안하고 과거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거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적어도 매일, 매 순간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보내지는 않으려 한다.

그래도 가을은 아름답기만 하다

질병을 물리쳐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자기만의 고유한 일상에 관한, 사소할지라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찾아봤지만, 눈에 띄는 게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프다는 감정과 느낌을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 역시 의사나 가족에게 입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불편하고 이상한 경험을 구체적인 단어, 언어로 나타내는 것, 질병 경험을 쓴 글을 읽고, 쓰고, 말하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도 읽기도 하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질병을 받아들이고 내 몸을 더 잘 알게 되고 돌보게 된다. 몸을 돌본다는 건 마음을 돌보는 것과 같다.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라고, 카뮈가 말했다고 한다. 수많은 잎이 나무에서 각각의 색을 드러내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했나 보다. 이런 가을에 몸과 마음을 수 돌볼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감사하다.

깨달은 게 또 있다. ‘신은 있나 봐.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었어’ 하고 말이다. 언제고 드러날 질병과 증상이었는데, 2주만 더 빨리 나타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때 나는 유럽의 어느 낯선 나라에 있었는데. 그리고 좀 늦었지만, 종합병원을 내 발로 가긴 했으나 그 마음을 주신 건 하나님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싶다(하핫).

그나저나, 부신아~ 내 부신아!!! 그만 자고 일어나~~응?!!!

“아픈 몸으로 일을 하고, 일상을 사는 이야기들 글로 풀어내면서 변한 것은 나 자신이다. 건강하지 못한 몸을 비난하지 않으려 애쓴다. 나의 노동과 건강에 얽힌 사회적 맥락을 읽으려고 한다. 건강해야 한다는 압박이 무엇이고, 이런 압박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성찰한다. … 내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그럼에도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내가 아픈 몸으로 어떻게 지내는지 보여주면, 당신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내가 아픈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고 있듯이,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다른몸들 기획, 《질병과 함께 춤을》, 8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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