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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적 증언을 계승하는 보편적 교회떨쳐 일어나 방향을 전환하고 고백하는 교회 (3)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2.11.12 15:07
▲ 보편적이고 사도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 사도들의 증언을 계승하는 교회라는 의미이다. ⓒGetty Image

교회의 보편성

우리는 보편적인 교회(ecclesia catholica)를 믿는다. 보편적이란 무엇보다도 특수한 것, 부분적인 것, 개별적인 것에 비교해서 일반적인 것, 보편적인 것, 모든 것과 연결된 것을 의미한다. 이 용어가 이그나티우스에 의해서 처음 교회에 적용되었을 때, 그것은 지역교회들에 대하여 대교구에 있는 주교의 교회를 의미했다.

그가 강조했듯이 주교가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그래서 교회의 통일성을 대표한다면, 교회의 보편성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모든 것을 융합시키는 그리스도의 현존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래서 보편적인 교회는 기독교 안에 존재하는 전체적이고 완전한 하나의 교회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보편성은 명백히 교회의 통일성과 상관적인 개념이다. 교회의 통일성이 교회의 수렴적인 보편성을 의미한다면 교회의 보편성은 교회의 확장적인 통일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정의로부터 나오는 결론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가 공동체 안에 계시기 때문에, 교회는 보편적이다.(1)

따라서 본래적인 의미에서 가톨릭 교회는 그것의 근거를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두고 있는 일반적, 포괄적인 전체 교회이다. 그러나 전체 교회는 지역교회들 안에서 드러나고, 표현되고 실현되는 교회이기 때문에, 각 지역교회가 이 전체 교회를 현실화하고 있는 한, 이 역시 ‘가톨릭 교회’라고 불릴 수 있다.(2)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의 갈등들 속에서 ‘가톨릭 교회’라는 말이 하나의 특수한 교회를 가리키는 당파적인 용어로 사용되면서, 종교개혁자들은 신앙고백문에서 가톨릭 교회라는 표현을 ‘일반적 교회’ 혹은 ‘기독교 교회’라는 말로 대치했다. 따라서 함부로 주창된 보이는 교회의 보편성은 그것의 거만함과 완고함 때문에 그 자체로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3)

어떠한 보이는 교회도, 로마 가톨릭 교회일지라도, 보편성을 독점할 수 없다. 그것은 교회의 보편성의 기초가 통일성과 거룩성의 기초와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밖에(그리스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 기초가 갈라져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로 만드신(엡 2:14) 모든 인간의 희망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우리는 모든 이기적인 분리주의와 맞서 싸워야 하고, 교회의 참된 보편성과 전세계성을 추구하고, 그것을 드러내야 한다.(4)

교회의 사도성

그런데 어떻게 지금 여기에 있는 교회가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와 동일한가? 교회의 사도성은 교회의 표지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아니라 앞의 세 가지 표지들을 시험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만일 교회가 모든 일에 있어서 사도적 교회라면, 교회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도적인 교회란 어떠한 교회인가? 이것은 이른바 “사도적 계승”을 말하는 것인가?

사도적 계승이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러 저러한 교회에서 안수를 하여 사도적 권위와 교회의 권력과 사명을 역사적으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넘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역사 안에서 언제나 다시 작용할 수 있는 “초자연적 실체”이다.(5)

고린도전서 12장과 로마서 12장에 언급된 은사는 “이런 식으로 전수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 안에서 그의 교회를 통하여 그의 교회에 대하여 “자유로운 주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도성은 일종의 계승과 뒤따름을 뜻하고 그것도 사도들의 모범적인 면에 관계된 것, 즉 사도들의 증언의 직책과 봉사를 뜻한다(CD Ⅳ/1, 718).

이러한 뒤따름은 구체적이다. 그것은 교회가 승인하는 성서로부터 방향을 정립한 가운데서 나타난다.

“사도적인 교회는 구약성서의 증언을 함축하고 있는 신약성서의 사도적 증언을 듣고, 그 증언이 교회의 존재의 근원과 규범임을 인정하며 그것이 실제적으로 교회에 대하여 이런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교회이다”(CD Ⅳ/1, 722).

그러므로 사도적 교회라는 것은 사도적 증언에 기초되고, 이 증언을 계승하고 이 증언을 들음으로 자신을 재형성하며 또 새롭게 형성하여 가는 교회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 진정한 사도성의 기준이 된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성서를 진정한 사도로서, 다시 말해서 끊임없는 사도적 선포와 널리 퍼져나가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도적 증언으로서 이해했던 것이다. 교회가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끊임없이 그리고 순수하게 선포하는 교회의 사도성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확실하게 된다.(6)

종교개혁자들은 전통적인 교회의 네 표지들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교회의 표지를 순수한, 즉 성서에 적합한 “복음의 선포”와 “성례전의 올바른 집행”에서 보았다. 실제로 교회를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은 이러한 교회의 특징들이다. 아우구스타나 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은 7조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교회는 그 안에서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성도들의 모임이다.”(7)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선포와 성례전의 올바른 집행이라는 루터적인 두 표지에 칼빈을 따르는 개혁교회는 세 번째 강조점을 추가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훈련이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악덕을 억제하고 미덕을 육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규정에 따라 교회의 권징(勸懲)을 올바로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로호만에 의하면 종교개혁자들의 이러한 예배의 인식은 참된 교회의 표지를 확장시킨 것이다. 이와 같이 참된 교회의 표지를 확대함으로써 중요한 점이 강조되었다. 그것은 “참된 교회란 자신의 교설의 올바른 가르침(Orthodoxie)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뒤따름의 올바른 실천(Orthopraxie)에서 일어난다”(8)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회의 신앙의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로호만은 루터교회의 약점을 지적한 듯하다. 이제 이러한 고대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을 근거로 교회 갱신의 실제적인 문제를 살펴보자.

미주

(1) J. Moltmann, Kirche in der Kraft des Geistes(1975), 박봉랑 외 4인 역,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0), 370 이하.

(2) H. Küng, The Church, Westminster: Burns & Oates, 1968, 300 (이하 Church로 표기).

(3) CD Ⅳ/1, 710-712를 보라. 이런 점에서 한스 큉은 “가톨릭성”은 “개신교적 항의”를 거듭 필요로 하며, 도대체 후자 없이 전자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근시안적이고, 배타적인 ‘프로테스탄트 사상’과 혼란스럽고 산만한 ‘가톨릭 사상’ 대신에, 복음에 중심과 기초를 두는 ‘복음주의적 가톨릭성’으로 대치하자”고 주장한다. Church, 312 이하.

(4) J. M. Lochmann, 오영석 옮김, 『사도신경 해설』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4), 186.

(5) CD Ⅳ/1, 717. 로마 가톨릭 교회, 정교회, 성공회는 교회의 사도성을 ‘사도계승’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로마의 주교로부터 시작하여 그 다음에 오는 모든 주교들의 임직식에서 머리에 손을 얹음으로써 사도적 전통이 계승되며, 이리하여 교회는 사도적 근거와 연속성과 법적 정통성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사도성이 하나의 물건처럼 기계적으로 승계되는 것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6) J. Moltmann,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381.

(7) H. J. Kraus, 『조직신학』, 박재순 역(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7), 446에서 재인용. 칼빈도 이에 동의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또 듣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를 지킬 때에 거기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Inst. Ⅳ, 1, 9.

(8) J. M. Lochmann, “Dogmatisches Gespräch über die Kirche”, in : Theol. Zeitschr. Jg.28, H. 1, 1972, S. 64f;  H. G. Pöhlmann, 『교의학』, 이신건 옮김(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0), 38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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