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후 313년, 이른바 ‘Edictum Mediolanense(에딕툼 메디오라넨세, 밀라노 칙령)’는 박해 받던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해방의 선포였다. 그리스도교가 하나의 종교로, 로마의 국교가 아니라, 인정 받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칙령은 로마 제국의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1(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누스 1세, 272-337년)의 그리스도교를 포함 모든 종교에 대한 관용령이었으며 ‘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244-312년)’ 이래 박해 시기에 몰수한 교회의 재산 등을 다시 돌려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칙령 이후 그리스도교는 박해 받던 종교에서 제국의 종교로 변모해 갔다는 점은 역사의 증언이다. 이는 곧 그 당시까지 민중과 민간에서 전해지던 모든 종교를 압살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후 중세 1000년 동안의 서구 유럽은 그리스도교의 시대이자 유럽에서의 종교는 그리스도교 외에는 남지 않은 시대이기도 했다.

또한 르네상스와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지는 서구의 역사에서도 종교는 그리스도교였다. 서구 유럽 제국주의가 명·청 시대로 압축할 수 있는 중국과 인도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할 때까지 이 역사는 이어졌다. 서구와 서구 그리스도교가 동양을 재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은 ‘동양 종교와의 만남’이라는 문구로 정리할 수 있다.

서구 제국주의와 동양과 동양 종교와의 만남은 서구 자신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종교는 그리스도교라는 등식이 깨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외에 더 오래 되고 더 깊은 종교 전통과의 만남은 표면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서구 그리스도교에 균열을 일으키는 진동의 근원지가 되었다.

한편 동양의 입장에서 그리스도교는 자신들의 유구한 종교 전통과는 또 다른 신선함을 선사 받는 계기 그 자쳐였다. 좀더 좁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공간은 그간 대륙으로부터 유입된 도교, 유교, 불교의 전례와 이를 토착화한 민간의 종교가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었다. 국가 종교로서의 유·불·선은 지배 계급의 종교로 정착되었지만 민간 종교는 여전히 민중의 종교로 살아 있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한반도에 그리스도교의 전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선함 그 자체였다. 전례된 그리스도교가 민중과 민간 속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는 점은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한반도에 전례된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대로 민중 종교는 민중 중교대로 그 길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경우에서와 같이 그리스도교가 제국의 종교로 탈바꿈 하며 유럽 세계의 민중 종교들을 압살했던 것과 같이 남쪽 한반도에서의 그리스도교가 7-80년대를 기점으로 압도적이고 푹발적으로 성장하며 민간 혹은 민중 종교를 터부시 하고 말살하려는 로마 제국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다행히도 남쪽 한반도에서 전통 종교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대화의 상대로 삼기도 했다.

필자 자신이 그리스도교 내에 속해져 있기에 한국 전통 종교가 그리스도교를 바라보는 입장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교 내의 소수에 속하는 신학자들이 한국 전통 종교와의 만남을 추구했던 이야기들 외에는 지식이 일천하다는 점이 솔직한 고백이다. 다시 한번 서술하지만 한국 전통 종교인들의 시각은 모른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필자에게 한국 전통 종교학자와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필자가 나서서 만남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고 종교학자가 먼저 연락을 주었다. ‘자하원 이호재 원장’이었다. 이 원장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중국종교로 박사학위을 취득했고 성균관대학교에 새로운 ‘중국대학원’을 만들고 교수로 재직했었다. 더 자유로운 그리고 자신의 필생의 연구 과제를 위해 속된 말로 그 좋은 자리를 박차고 나온 기인이기도 하다.

이호재 원장과의 만남은 벌써 4년 전인 2019년 7월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어투로 필자에게 전화를 주었던 이 원장은 “‘한밝 변찬린’ 선생의 《성경의 원리 1·2·3》(한국신학연구소, 2019)과 《요한계시록》(한국신학연구소, 2019)에 대한 서평을 내고 싶다”는 바람과 “에큐메니안에 ‘한밝’ 선생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싶은데 에큐메니안의 성격과 맞을지 걱정이다”는 점을 이야기 했었다. 에큐메니안의 지향점과 다른 점이 없었기에 편집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2020년 1월 이 원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시작으로 ‘한밝’ 선생에 관한 칼럼이 시작되었다.

1월 21일 이렇게 시작된 ‘한밝’ 선생에 관한 ‘학술’ 칼럼은, 학술에 작은 따옴표를 붙인 것은 대중적 성격의 글을 쓰고자 했던 이 원장의 바람과는 달리 대중적 글쓰기를 넘어 학술의 성격이 강했기에, 2021년 5월 25일까지 계속되었다. 그 결과물이 또 오롯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바로 《선맥과 풍류해석학으로 본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 새 축 시대 문명의 새벽을 여는 풍류·선맥 르네상스를 전망한다》(동연, 2022)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에큐메니안의 연재 글을 단순히 손질하는 수준의 것은 아니다. 에큐메니안 연재 뿐만 아니라 그간에 여러 학술 잡지들과 신문 지면(온·오프) 등을 통해 발표했던 논문들의 모음집이기도 하다. 이 원장이 필생의 연구 과제로 삼았던 ‘한밝’ 선생에 관한 또 하나의 연구 성과물이다. 그리스도교 외에 전통 종교에 문외한인 필자가 보기에도 ‘한밝’ 선생이 가지고 있던 한국 전통 종교와 그리스도교와의 만남 뿐만 아니라 전통 종교 자체 대한 연구 성과가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우스갯소리로 책도 엄청 두껍다.

하여간 에큐메니안 연재를 위해 이 원장이 보내온 글들을 먼저 읽을 수 있는 영광을 1년 하고도 반년을 더 누릴 수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필자가 가졌던 고민과 의문은 한 가지로 압축할 수 있는데, ‘한밝’ 선생의 관심이기도 하거니와, “선맥과 풍류”에 관한 부분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속된 말로 ‘또 이 이야기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접해왔지만 여전히 그 접점이 깨달아지지 않는 부분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게 어떻게 그리스도교와 만날 수 있다는 말이지?’ 하는 의문 부호가 계속해서 깜박거렸다는 말이다. 여전히 의문 부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 저자 이호재 원장 ⓒ에큐메니안

어쩌면 이 의문부호는 필자의 아둔함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을 어느 독자들에게는 명확하게 보일 부분이기도 하겠다. 반대로 이 원장은 ‘한밝’ 선생의 논지를 따르고 더 발전시켜 우리 혈관 속에 녹아 흐르는 선맥과 풍류에 대해 깊이 있게 풀어내고 있다. 폭발적인 성장세로 한국에서 ‘그리스도교 국가(Christendom)’을 꿈꾸었던 극우 보수 그리스도교가 내치려고 했던 전통 종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그 깊이에서 추구하고 있다.

이 원장은 책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는 크게 4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동양 종교로서, 한국 전통 종교에 면면히 흐르는 “풍류(선맥)”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모든 책이 그러하거니와 책의 제일 첫 머리에 등장하는 모든 글이 그렇듯, 필자가 보기에 이 부분을 정독해야 한다. 이 책 전반에 흐르는 논의를 따라가기 위한 도약대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는 풍류와 선맥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책 전체를 따라가기에 버겁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발생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풍류와 선맥과의 상이점이다. 이것은 철저히 필자의 경우이기에 일반화시킬 수 없는 부분이지만, 필자도 그 이전에 알고 있었던 풍류 개념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때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선맥이라는 용어는 처음 접했던 터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일신론적 신앙 안에서 생활해 온 필자와 같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저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또한 이 언급이 어떻게 그리스도교와 만날 수 있을지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것도 우리 혈맥 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고 우리 생활과 문화 전반에 지금까지 살아 있고 비록 그리스도교인이라고 할지라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점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깊이 숙고해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제2부는 “한국 종교와 교회 문화의 실상”이라는 제하에 한국 그리스도교와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읽어도 좋을 부분이다. 마치 독일의 ‘Ludwig Andreas von Feuerbach(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폰 포이에르바하)’로부터 시작해 ‘Karl Marx(칼 마르크스)’와 ‘Friedrich Engels(프리드리히 엥겔스)’에서 종결된 “종교 비판”의 한국판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이 부분은 그저 이 원장 자신의 말로만 꾸며져 있지는 않다.

한국 전통 종교학자, 성서신학자, 조직신학자, 목회자 등 다양한 인물들과의 대담을 통해 한국 그리스도교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한 축으로서의 ‘한밝’ 선생의 이론을 펼쳐 보인다. 이러한 이 원장의 노력은 ‘한밝’ 선생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한밝’ 선생의 남겨진 원고들에서 교회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의 유연한 판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프다.

제3부는, 비록 필자의 엉성한 평가가 되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의 백미라 부르고 싶다. 한국 전통 종교의 종교적 개념과 한국 교회의 신학적 혹은 교리적 개념과의 만남을 추구하고 있기에 그렇게 읽힌다. ‘영생 우주관’, ‘신관’, ‘구원관’, ‘영생관’ 그리고 ‘공동체’를 주제로 전통 종교와 그리스도교와의 대화를 촉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필자는 또 다른 난관을 만났다. 열거한 저 개념들 자체가 서구 종교학 혹은 서구 그리스도교 신학의 개념에서 차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학과 종교학이라는 이름으로 동양 보다 먼저 학문을 축적한 것이 서구이기에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겠거니와 이를 표현할 개념 자체가 우리에게는 없으니 저렇게 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우리 스스로가 저러한 개념을 표현할 수 있는 개념어를 만들어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 4부는 마치 수미상관하듯 제1부에서 언급된 개념들을 다시 한 번 풀어내고 있다. 단순한 동어반복은 아니다. 전통 종교와 그리스도교와 만남에 이른 새로운 주체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니체의 바람이 여기에 흐르고 있다.

참고문헌과 색인을 제외하고 480여쪽에 달하는 이 거대한 학술 서적을 수박겉핥기 식으로 소개했다. 구멍이 숭숭한 글이다. 이럴 줄 알면서 굳이 소개의 글을 쓴 것은 그간 저자와 편집장으로 만난 인연에 대한 예의에서 비롯된 것이 첫 번째 이유이지만, 연재와 이 책에서 배운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예의를 그나마 다한 것 같아 마음과 손이 가볍다.

이제 아쉬운 점 하나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이 아쉬운 점은 이 책이 가지는 어떤 부족한 부분을 언급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아쉬운 점은 ‘한밝 변찬린’ 선생도 그러하거니와 이호재 원장도 그리스도교인이거나 그리스도교와 지근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교에 익숙하다. 냉정하게 한국 전통 종교의 입장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또 다른 한국 전통 종교학자의 이야기 속에서 보충되지만, 조금 더 가까운 먼 날에 한국 전통 종교학자의 이러한 글과 책이 나오기를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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