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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세상을남산부활절연합예배사건 50주년 기념예배
이해학 이사장(사단법인 겨레살림공동체) | 승인 2023.04.20 23:11
▲ 1973년 4월22일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은 박정희 정권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사진은 75년 4월 ‘수도권 선교자금 횡령 사건’으로 구속된 박형규·김관석·조승혁·권호경 목사가 재판을 받는 모습이다.(사진 왼쪽부터)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히브리서 10장 32-35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모든 물이 바다를 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은 실개천과 강과 운하를 지나야 합니다. 어떤 물줄기는 쉽고 빠르게 바다에 이르지만 어떤 물줄기는 힘들게 멀리 돌아 늦게늦게 바다에 이르게 됩니다. 백두산에 떨어진 빗방울은 두만강을 거처 동해로 갈 수도 있고 압록강을 거처 서해로 갈 수 있는 가름 타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물방울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가 해방정국에서 하나의 나라로 갈 것인가 분단하여 두 개의 나라로 갈 것인가 갈림길에 놓였습니다. 여기에 맞물린 제국들의 이익이 나뉘기에 좌우합작을 추진한 몽양 여운형을 13번째 테러 끝에 암살하고 이승만을 세워 분단을 통한 두 개의 나라가 세워진 것은 남과 북의 백성들에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운명의 갈림길이었습니다.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박정희의 권력 연장 수단인 몸에 맞는 옷이라는 거짓 논리로 시작한 유신독재의 범죄는 무엇으로도 미화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거짓 예언자들의 지지와 옹호로 백성을 현혹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서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갈릴리에서 나타나 예루살렘을 향한 촌놈들같이, 박형규를 앞세우고 민중을 통해서 새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꿈을 꾸는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그간에 부활절 예배는 보수·진보가 따로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시국이 하수상하니까 보수·진보가 하나되어 처음으로 연합예배를 드렸습니다. 절대로 같이할 수 없었던 두 종교 지도자들이 오죽했으면 손을 잡았겠습니까? 그것이 4월 22일 남산야외음악당 <부활절 연합예배>입니다.

그 때는 야외음악당이 근사하게 있었습니다. 서울 시내가 계엄령 산하 같아서 고대 앞에 줄 서 있는 탱크 사이를 불안한 걸음으로 참석한 부활절 예배에 형사들이 사이사이에 끼어서 눈을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준비한 청년들은 오금이 저려서 어렵게 품고온 현수막을 펄쳐보지도 못하고 오죽하면 밤새 등사기로 밀어온 전단을 꺼내서 나누어 주기는커녕 위에로 휙- 한번 뿌려보지도 못한 채 비실비실 몇 장 발밑으로 흘리고 말았겠습니까? 오죽하면.

사람들은 부활 찬양을 부르고 예수가 사셨다고 할렐루야를 외쳐대는데, 우리에게는 왼통 어둠이고 불안과 공포가 덮쳐서 모두가 덜덜 떨기만 하였습니다. 아직 예수님은 부활하시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준비하였으나 실패하고 만 청년들은 비겁하게 주저 앉은 것 같은 자괴감에 빠져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아쉽지만 끌려가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할 무렵,  6월 29일 보안사 체포팀이 몰려왔습니다. 관련자들이 조사받고 7월 6일 신문에 대서특필하고 언론이 요란을 떨기 시작하였으니 이들은 <내란예비음모>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7월 6일 서울지검 공안부 정명래 부장검사는 <서울제일교회 목사 박형규(50)·동교회 전도사 권호경·전 신민당 조직국 제2부 차장 남삼우(35)·이종란(27) 등 4명을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구속하고, 다른 관련자 11명을 검거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결국 검찰은 일내고 말았습니다.  <박형규 등이 금년 4월부터 기독교학생연맹 내의 불평분자와 전과자들을 모아 쿠데타 행동대원 군중선동대를 조직하고, 4월 22일 부활절 예배를 거사일로 잡아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기도회 때 2,000여 장의 반정부 선동 삐라를 살포한 뒤 행동대원들로 하여금 4개 방향으로 시위를 유도케 하여 중앙 방송국과 중앙청을 비롯한 관공서를 점거케 할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박형규·권호경·김동완·남상우·전진산·나상기·황인성·이광일·정명기·서창석·김경남·나병식·이상윤등 함께 하였던 이들 중 몇은 벌써 은하수를 건넌 이들도 꽤 됩니다.

이 일은 어느 누구도 기획하지 못하였고, 누구도 기대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오직 바람이 한 것입니다. 산불은 바람이 키웁니다. ‘퓨뉴마(성령)’가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뱀이 아담을 유혹하듯 먼저 보안사에 “이놈들을 혼을 내야 다시는 떠들지 못 할거야!”라고 두려운 바람으로 속삭였습니다. 과학에서는 1+1=2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숫자는1+1=1자승 10으로 상승 비약하는 것입니다.

저는 고성에서 산불이 바람을 타고 큰길은 건너가 낙산사를 태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은 휘이익 날아갑니다. 담임목사와 전도사가 구속이 된 서울제일교회 신도들은 목사님 석방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독재권력에 시달리는 우리 나라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저기서 기도회가 불붙었습니다. 역시 한국은 미국 눈치를 보는 나라라 종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NCC 총무 에드윈 에스퍼가 성명서를 박 대통령 앞으로 보냈으며, CWME 로빈스 스트롱이 기도와 모금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WCC 사무총장 필립 포터까지 박 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보내니 세계적 사건이 되고 한국은 정치적 자유가 없는 나라, 언론이 자유롭지 못한 나라로 세계적 망신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쯤되면 서로 뒤질세라 앞다투려 합니다. 어쩔 수 없어 교단들이 눈치 보며 관심 표명에 이어 성명서를 내고 급기야는 교단장들이 손을 맞잡고 국무총리 면담을 하여 압력세력으로 변합니다.

비로소 1973년 9월 25일 선고 공판이 비공개로 열리고 3분 만에 박형규 목사와 권호경 전도사에게 각각 징역 2년이 선고되었고, 선고 이틀 후 보석으로 풀려나왔습니다. 거대한 유신권력구조가 기독교계의 강한 저항에 굴복한 것입니다. 조직적 저항운동의 첫 번째 물방울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걷잡을 수 없는 반독재운동이 일파만파 번지고 상상 못할 사건으로 불붙어 갑니다. 2천년전 갈릴리 촌놈들의 예루살렘 헤프닝이 인류 구원사의 출발이었듯이, 50년전인 19773년 남산야외음악당 부활절 연합예배는 주최측과는 아무 상관 없이 끼어든 청년들의 꿈이 씨앗되어 한국정치사의 획을 긋는 칼이 되었습니다.

1973년은 제가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에 팀멤버가 된 첫해입니다. 신입사원입니다. 무얼할 지 어리벙벙할 때입니다. 청계천 빈민촌 아지트에서 문동환 선생께 <왜 작은 것이 아름다운가> 학습 받고, 오재식 선생께 <알렌스키는 흑인 조직을 어떻게 하였는가>, <조국 근대화에 밀리는 빈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며 밤이 늦으면 정일우 신부와 살고 있는 제정구와 껴안고 잠 몇 번 잤는데. 4월 22일 부활절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 이후 모든 활동은 구속자 석방운동에 집중하였습니다.

박형규 목사님 재판 전에 모여 기도회를 하고 재판장에 갔습니다. 이것이 후에 목요기도회로 발전하였습니다. 국가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노동자 가족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고 자식들이 왜 투쟁을 하는지 이유를 알게 되어 부모들이 한풀이를 넘어 스스로 민주 전사가 되는 뜨거운 다락방 체험을 하였습니다.

윤희 엄마인 김한림 여사를 중심으로 <양심수 가족모임>으로 출발해 처음에는 기장여신도회 나중에는 전국여신도회가 동원되어 시청료 거부운동을 비롯한 민주생명평화운동을 주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마터면 놓쳐버릴 보석 같은 여성지도자들을 만났으니  나선정 총무, 원금순·박금순 회장을 비롯한 박용길·공덕귀·원주 할매(지하 엄마)의 헌신적 활동이 모든 어머니들의 어머니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일은 또 민가협으로 발전하여 박용길·조정하·이종옥 사모님을 비롯한 여걸들의 전성시대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넘치는 활동의 조직적관리를 하도록 NCCK에 인권위원회를 가동하여 윤수경을 키웠습니다. 초대교회에 뜨거운 동아리에서 하나로 공감대를 이루고 네것 내것이 없이 하나로 위로받아 민주화의 대열에 선 것을 감사하는 성령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후에 해직기자들의 은신처가 되고 해직교수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목요기도회 설교와 성명서 행진들이 뉴스에 오르게 되고 설교자들이 끌려가고 저도 몇 차례 경찰서에서 구류를 살게 되었습니다. 기독교회관은 피해자 가족들과 정보원들과 기자들과 정보원들과 이런저런 사건을 안고 줄 서는 사람들이 뒤죽박죽 한 덩어리였습니다. 그때 해직기자 성유보 님 책상이 기독교회관에 있었고, NCC에서는 해직교수 강연배치를 하여 그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일에 바빴습니다. 최완택 목사가 최열 실무자와 추진하는 <기독교환경운동연구소>도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그때 종로5가 기독교회관은 바야흐로 민주화운동의 메카로서 중심이었습니다.

내게도 잊을 수 없는 비밀스런 사건이 있습니다. 73년 9월 어느날 이규상 목사가 건내 준 미국서 발행한 교포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국내 신문이 한 줄도 쓰지 못한 박형규 목사 구속 상태를 자세하게 신문 전면기사로 썼습니다.  바로 을지로에 가서 민주인쇄공 강은기 님과 함께 제본집에 맡기고 며칠 뒤 찾으러 갔다가 정보원들에 체포되어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습니다.

가자마자 다짜고짜 옷부터 벗겼습니다. 팬티까지 홀랑 벗기고 네 사람이 군화발로 차고 침대 각목으로 두둘겨 패서 온몸이 피멍이 들게 한 후에 겁을 주었습니다. <너 하나 죽어도 세상은 몰라>. 그 신문은 문동환 박사 부인이 외국인이기에 검사받지 않고 들어온 파우치에서 나왔지만 말할 수 없어서 구타만 당하고 일주일 만에 풀려났습니다.

그것은 국가안전기획부가 그해 8월 8일에 김대중 야당 총제를 일본에서 납치하여 수장시키려다 실패하여 세계적 비판을 받고 있을 무렵 나와 수도권을 빨갱이로 만들어 김대중을 빨갱이와 연관지어 납치사건을 합리화 하려는 공작이었습니다. (조사관 한 사람이 전해준 귀뜸) 왜냐하면 그 신문이 김대중의 정치활동을 지원하는 후원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풀려나고 며칠 뒤에 부활절 사건 구속자들이 석방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남산터널을 지나칠 무렵 몸이 경련하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이런 아픈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담력도 커졌습니다.

그래서 그해 73년 12월 25일 <외채의 통로>, <굴욕외교의 통로>, <일본인들의 성놀이 여행 통로>인 김포공항이 <그리스도를 모실 구유>라고 수도권에 속한 교회들이 성탄연합예배를 드렸습니다. 영등포 경찰서에 모두 끌려가 하루 종일 교우들과 구타당하며 보냈습니다. 그해 73년 3월 1일 창립한 주민교회로서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경찰서에서 매를 맞으며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74년 1월 8일 바로 숨 돌릴 새도 없이 긴급조치 시절로 들어갑니다. 들불은 산불이 되고 산불은 날아가 유신이라는 독재정권의 허수아비를 향해 불붙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건은 청년학생운동입니다. 서울제일교회 대학생회는 1971년 위수령 이후 학내에서 집회공간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서울대학교 학생운동 서클인 <후진국사회연구회>의 회원들에게 서울제일교회를 집회장소로 허락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들이 서울제일교회 대학생회를 창립하였습니다.

강영원·김경남·나병식 등 서울제일교회 대학생들은 남산부활절 사건 구속자 석방운동을 전개하면서,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과 승리의 경험을 하였고, 이 경험으로부터 유신체제에 파열구를 낸 유신체제 이후 최초의 학생시위인 1973년 10월 2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10.2데모를 주동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10.2데모는 74년 대통령 긴급조치를 태풍 같이 덮쳐 웃음거리로 만드는 한편의 대작, ‘대하드라마’였습니다.

이 대작의 제작자는 박형규입니다. 그분은 이때부터 재미를 보고 다섯 번이나 징역을 살아버립니다. 투자자를 모으고 예산을 관리하는 ‘재무’는 세계교회협의회와 넷트워킹한 NCCK 김관석 총무였습니다. 이분도 결국 징역 맛을 보았지만 평생 멘토역을 담당했던 김상근은 징역축복을 못받았습니다. 영화 스태프와 연기자들을 모으는 역할을 한 인사담당과 각본은 김동완·이규상·허병섭·이철용·모갑경·조승혁 등이 맡았습니다. 이미경·황인숙은 이 대작의 분장과 미술 담당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연은 학생·빈민·노동자, 감독이자 연출은 권호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작에는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은 총감독, 총연출자이자 거대한 배급사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분은 생령의 바람으로 역사하신 ‘성령’이었습니다. 그가 아니고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실패를 통해서도 승리의 역사를 진행하는 성령의 나타남을 본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바빌론, 이집트, 로마 제국에서부터 미국과 중국의 권력까지 흥망성쇠는 거듭되어도 감옥에 갇힌 자를 기억하고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 내 재산을 포기하거나 때로는 고문당하고 구속되어 죽임을 당하는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살만 합니다. 그들이 더 큰 꿈을 갖고 더 가치있는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니 지금 현실이 힘들다고 실망하지 말고 굳은 용기로 마지막까지 도전하라고 히브리소 기자는 격려하고 있습니다.

모두를 살리는 성령의 바람은 앞으로도 불어올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만이 그들과 우리 그리고 오는 세대를 잇는 끈입니다.

이해학 이사장(사단법인 겨레살림공동체)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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