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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자리에서부터희망의 문이 열리는 곳(사무엘하 24,17-25; 누가복음 19,45-48)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06.14 23:50
▲ 다윗은 인구조사를 행한 자신의 죄를 백성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Getty Image

다윗은 교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를 어떤 인물로 기억하고 있는지요? 성서의 기록을 통해, 예수와의 연관을 통해 그는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다수의 사람들이 그를 현재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것은 그를 기억한다기 보다 그에게서 나타난 하나님의 자취를 기억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일하시는지, 그 결과는 무엇인지, 이것이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을 그에게서 살펴보게 됩니다. 그에 바탕하여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그때와는 다른 방식이어도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다윗의 인구조사 사건의 결말에 해당됩니다. 이스라엘 때문에 화가 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빌미로’ 다윗을 부추기시며 인구조사를 명령하셨고, 이에 따라 그는 인구조사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화를 내신 이유는 보도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추정은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윗이 압살롬의 난 이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다윗을 둘러싸고 남북으로 나뉘어 다투었고, 이때 세바라는 사람의 선동으로 남북은 무력충돌을 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세바의 난은 비록 진압되었지만, 이로써 남북 갈등이 표면화되었고 분열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이스라엘을 세우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자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 되기 참 어려웠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하나님이 화를 내신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의 실상을 기록한 사무엘서 기자는 뒤이어 다윗 왕국의 관료체제와 군대 정비를 자세하게 보도합니다. 이런 저런 난들을 겪고난 후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더 안정되고 왕권은 더 강화된 것 같습니다.

여하튼 하나님이 이때 이렇게 개입하셔서 다윗을 징벌의 도구로 사용하시다니 뜻밖입니다. 혹시 왕권의 안정과 강화가 그를 오만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요? 그가 요압의 만류에도 인구조사를 강행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일까요?

인구조사는 본래 국가의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파악하고 세금 징수와 군대 징집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권력 강화와 유지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압은 그 시도가 부당하다고 진언했지만 다윗을 막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몰라서 요압의 충언을 물리쳤을까요?

인구조사가 끝난 다음에 비로소 다윗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지만 하나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부당한 일인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핑계로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 그리 했던 것일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여기서 예컨대 다음 같읃 물음들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셔서 했는데, 그것이 부당한 일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나중에라도 잘못임을 깨닫고 용서를 구했지만 용서를 받을 수 없었다면, 하나님이 너무 하신 것 아닌가요? 하나님이 덫을 놓으신 것으로 보이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그리 하실 수 있는가요?

그렇지만 이러한 물음들은 아마도 우리들의 일방적인 하나님 이해를 교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아합 시대에 예언자 미가야가 본 환상에서도 하나님은 여기서와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왕상 22장). 잘못된 하나님 이해가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낳습니다. 우리의 오만과 편견이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고, 하나님 오해가 그 오만과 편견을 강화시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화는 다윗과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언자 갓이 인구조사와 관련하여 전한 세 가지 벌들 가운데 다윗은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겨냥하고 하나는 다윗을 겨냥한 재앙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의 손에 빠지지 않기 원한다는 말로 자신이 사람들에게 쫓겨다니는 일을 피했습니다. 그는 일찌기 이스라엘에게 정의와 공의를 펼친 왕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 그는 재앙이 백성에게 향하게 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 선택은 그러한 평가에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3일 동안의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전역에서 칠만여명이 목숨을 잃자 그는 악을 행한 것은 이 백성이 아니라 자신이니 자신과 자기 아버지의 집을 벌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나라 전체가 울음 소리로 가득찼을 것입니다. 이러한 참사는 하나님의 마음도 상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재앙 내리기로 결정했던 것을 후회하시고 재앙을 중단시키셨습니다. 재앙 집행자인 하나님의 사자가 예루살렘을 향해 칼을 쳐들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서있을 때였습니다.

예언자 갓의 지시에 따라 그곳에 제단을 쌓기 위해 다윗은 그 땅과 제사에 쓸 것들을 아라우나에게서 사고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립니다. 이로써 재앙은 끝이 납니다. 그러나 재앙이 멈춘 그곳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됩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재앙을 기억하는 평화의 집이 될 것입니다.

징벌의 상흔이 용서와 치유로 감싸지는 곳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곳이 성전입니다.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일으키는 곳입니다. 위기를 은총으로 바꾸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성전을 품은 예루살렘을 향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며 안타깝게 부르십니다(눅 13,34). 예루살렘은 거부와 배반과 박해와 죽임의 자리가 되었고, 성전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성전이 되도록 성전을 정화하고 거기서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다윗 사건에서 볼 수 있었던 저 희망, 저 용서가 다시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예수에게서 성전은 자기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자기를 세우고 기도하는 곳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 되었습니다. 평화를 상징하고 생명을 품고 생명을 낳는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거기서 말씀을 베푸셨습니다. 말씀에 목마르고 희망을 찾아 다니던 사람들이 말씀으로 배부르고 평화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이 생명의 기회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평화의 길을 외면했습니다. 암탉이 새끼를 품듯 이스라엘을 품으시려는 하나님의 시도를 이제까지 거부해왔던 것처럼 지금도 거부합니다. 성전에서 말씀을 걷어내고 기도와 생명의 문을 걸어잠그려고 합니다. 예수를 향해 칼을 갈고 겨눕니다.

이 땅을 재앙과 징벌과 죽음과 절망의 곳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들입니다. 이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사람들이 지배하는 지금의 세상입니다. 여기에 생명과 희망을 씨뿌리고 평화를 가꾸는 곳이 성전을 대신한 교회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그러한 세상에서 죽음의 세력들을 몰아내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예수께서 날마다 말씀을 가르치시던 그 행동으로 생명의 물을 동서남북으로 흘려내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교회가 우리 교회이기를 빕니다. 이곳에서 우리 안에 희망으로 기쁨이 솟구치고 치유로 생명이 충만해지고 용서로 용기를 얻고 말씀으로 삶이 두터워지고 사랑으로 믿어짐이 일어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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