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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종으로 살고 계십니까“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로마서 6:15-23)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6.26 00:56
▲ 우리의 선택은 종이 된 후에 시작된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외부의 상황만을 바라보며 산다면 우리는 절대 평안할 수 없습니다. 외부의 상황을 내 뜻대로 맞추려는 삶을 갈망한다면, 절대 평안할 수 없습니다. 외부의 상황에 늘 시선을 두고, 집착하면 평생 평안함이 아니라 두려움, 결핍, 절망만 경험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성도는 나의 밖 상황이나 내가 가진 조건이 아니라 내면에 주어진 평안함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성령님께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대하며 인내하는 성도는 두려움과 결핍, 절망을 넘어 희망을 봅니다. 평안을 누립니다.

원망의 대상이었고, 분노의 대상이었던 사람과 상황이 감사할 대상으로 감사할 상황으로 변하여지는 경험을 하신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이상중 목사는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들이 제법 있습니다. ‘나에게 창피를 주려고, 나에게 모욕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한 그분들의 역할이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나의 민낯과 부끄러운 모습 등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준 그분들과 상황들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계기들을 통해 나의 약점을 알게 되고, 내가 무엇에 쉽게 흔들리는지를 알게 된다면 성도는 이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읍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곧 괴롭혀 왔읍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고통이 내게서 떠나게 해 주시기를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번번이 말씀하셨읍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4:7-10, 공동번역)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고백처럼 자신의 상처와 고난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잊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전체 성도의 성경 필사를 시작하며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을 읽고, 기록하기를 원하고 열심을 내는 지금이 은혜받을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기이기에 더욱 어려움이 닥쳐올 수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나에게 주어진 상황, 삶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연합하며,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삶의 문제는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통해 삶의 문제를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다가올 삶의 상황과 문제들을 지금까지 와는 다른 태도로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성도는 성도답게,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17절의 말씀입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남에게 내맡겨서 복종하면 곧 자기가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죄의 종이 되어 죽는 사람도 있고 하느님께 순종하는 종이 되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17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진실한 가르침을 전해 받고 그것에 성심껏 복종하게 되었으니 하느님께 감사할 일입니다.”(공동번역)

죄의 종이 될 것이냐,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이 될 것인지에 관해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삶을 말합니다. 삶의 방향성이 어긋난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이 죄는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나는 벌금을 물을 만한 또는 감옥에 갈 만 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는데요.” 이런 저한테 무슨 죄가 있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을지라도 삶의 방향이 어긋났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죄라는 단어 그리고 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 이런 죄의 종이 됩니까? 나라는 존재에 집착할 때 더욱 죄의 종이 됩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게 죄의 종으로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2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0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는 여러분은 정의에 예속되지 않고 제멋대로 놀아났었읍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21 그 때에 여러분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들밖에는 없지 않았읍니까? 그런 생활은 결국 죽음을 안겨 줍니다.”

사실은 살려고 어떤 순간에 선택과 행동을 해왔습니다. 나라는 존재에 집착하고, 나의 욕망과 이익, 목적에 집착했던 것은 다 살려고 했던 선택과 행동이었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좇으며 살았던 것은 사실 살아보려고 했던 선택과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과 행동을 통해 우리는 죄의 종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생활은 결국 죽음을 안겨 줍니다.”라고 표현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지실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내 마음대로 내 욕망대로 살아오면서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경험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100%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18 그리고 여러분은 죄의 권세를 벗어나서 이제는 정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19 여러분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할까 하여 이렇게 인간사에 비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 몸을 더러운 일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기어 불법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온 몸을 정의의 종으로 바쳐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제 정의의 종이다! 온 몸을 정의의 종으로 바쳐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런 나도 말씀에 의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나와 거리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는데 정말 정의의 종으로 살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은 정의의 종이라고 정의합니다.

정의의 종이 될 때 우리는 무엇을 얻습니까? 22-23절의 본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종이 되었읍니다. 그 결과로 여러분은 거룩한 사람이 되었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죄의 댓가는 죽음이지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공동번역)

거룩한 사람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와! 하나도 신나지 않아! 왜 그렇습니까? 여전히 나와 우리의 바람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실제로 먹을 수 있는 빵과 돈을 위해 찾아온 수많은 이들에게 ‘내가 당신들에게 빵을 준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빵을 준다!’라고 기대감을 높여놓은 뒤에 ‘그 빵이 바로 나다!’라고 했을 때 느꼈을 사람들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들 동화인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산에 나무를 하러 간 나무꾼이 연못에 자신의 하나뿐인 유일한 쇠도끼를 빠트리고 맙니다. 크고 무거운 도끼가 연못 위로 둥둥 떠오를 리도 없었습니다. 변변한 먹을거리 하나 없는 집에는 늙고 아픈 홀어머니가 자신을 기다리고 계시니 나무꾼은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도끼 한 자루도 제대로 손에 쥐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도 났습니다. 다 큰 어른이지만 괴롭고 힘든 마음에 부끄럽다고 생각할 새도 없이 눈물을 펑펑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던 산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리 슬피 우느냐?”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나무꾼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봤습니다. 산신령이었습니다.

산신령이 나타나서 나무꾼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질문 합니다. 나무꾼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자 산신령이 연못에 들어가서 금도끼를 꺼내 나무꾼에게 묻습니다. “이 도끼가 네 도끼냐?” 나무꾼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다음에 산신령은 은도끼를 꺼내 들고 나무꾼에게 묻습니다. “이 도끼가 네 도끼냐?” 나무꾼은 역시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낡은 쇠도끼를 들고서 산신령이 묻습니다. “이 낡은 쇠도끼가 네 도끼냐?” 나무꾼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산신령은 “허허허! 참으로 정직한 나무꾼이로구나! 이 금도끼와 은도끼는 선물로 줄 테니 가져가거라.”라고 말합니다. 나무꾼은 금도끼와 은도끼를 팔아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여기가 아닙니다. 다른 등장인물도 나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성도님들에게 말씀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도가 금도끼와 은도끼를 마다하고 “낡은 쇠도끼가 제 도끼입니다!”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금도끼와 은도끼를 성도에게 선물로 주시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많은 성도가 자신의 쇠도끼를 투자하고 금도끼와 은도끼를 바라며 신앙생활을 하는 형편이기도 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불의고 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고, 신실하고, 선한 성도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네가 선하구나! 네가 정직하구나! 네가 거룩한 사람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게 되는 축복을 누릴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낡은 쇠도끼마저, 늙은 어머니와 나무꾼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지독하시죠? 하지만 믿음을 통해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성도, 다른 태도로 경험하길 원하는 성도는 알게 될 것입니다. “21 그 때에 여러분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들밖에는 없지 않았읍니까? 그런 생활은 결국 죽음을 안겨 줍니다.”

나의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알게 됩니다. 나의 지난 삶을 부끄럽게 여길 수 있는 성도는 의의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불의를 끊고 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까? 불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17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진실한 가르침을 전해 받고 그것에 성심껏 복종하게 되었으니 하느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더욱 진실한 가르침을 전해 받고, 성심껏 복종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로 살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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