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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끝내 무너지지 않았다”최병호, ‘장애’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게 사유하는 특별한 친구
정리연 | 승인 2023.07.10 14:46
▲ 부모님과 나들이 한때 ⓒ최병호 제공

나는 질병을 얻은 환자이자 불편을 가진 장애인이다. 결이 다른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혼란을 겪으면서, 다채로운 자아로 살아가는, 아니 버티고 살아내는 사람이다. 환자로서 손상과 통증에 절망하고, 장애인이기에 거부와 혐오에 좌절한다. 원치 않는 결핍과 한계 사이에서 아프고 괴로운, 슬픔과 분노 가운데 놓인 애통하고 방황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나는 외롭거나 초라하지 않다. 나의 불행이나 불운으로 탓하지 않고, 인간의 생로병사에 따른 필연적인 고통과 괴로움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나의 고유한 상태를 그저 담담하게 인정한다.

환자이자 장애인으로 살아내는 나는, 많이 아파서 서럽고, 가능한 일들이 적어 슬프다. 하지만 내 곁을 굳건히 지켜주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행복하고, 공감과 우정을 다정하게 전하는 소중한 친구들과 귀한 지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주어진 삶의 조건들과 절망을 이야기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통해 길어 올린 성찰을 나누고 삶의 작은 기쁨을 누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마주하며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초여름의 싱그러운 초록과 봉숭아 꽃잎을 가만가만 으깬 후 손톱에 올려서 물들인 빛깔이 떠오른다. 소박하고 무료한 일상에서도 자신을 가다듬고 장애와 그로 인해 겪는 과정과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을 걱정하기보다는 오늘을 찬란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다. 이런 결을 지니기까지 무수한 마음의 아픔과 절망을 겪었을 테니.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비슷한 취향, 같은 시기에 태어나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었다. 글자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없었고 성별의 차이도 나이의 질서도 없었다. 오히려 다양하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인터뷰 얘기를 했을 때 그는 “어떤 경력도 없고 평범하고 장애인 활동가도 아닌데, 괜찮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봄 햇살이 따사로워도 꽃들이 한꺼번에 피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속도는 다르지만, 각자 간직한 ‘존재’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그럼요. 괜찮고 말고요. 병호 씨 자체로 충분해요.”

이 인터뷰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이루어졌고 인용된 글은 병호 씨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다. 힘든 여건에서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준 최병호 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삶과 글의 조화를 꿈꾸는 사람, 최병호입니다. 부모님께 따뜻한 돌봄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SNS에 투병과 장애에 대한 진솔한 글을 쓰면서 세상과 소통해요. 제가 가진 고통과 어려움이 문장을 짓는 일에 생명력과 치유력을 불어넣는다고 믿습니다.

▲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을 삶의 불행이 아니라, 생명과 치유의 길로 향할 수 있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병호씨의 마음과 생각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워지지 않았나 해요. 그런 내면이 글에서 드러나니까 많은 사람이 위로와 감동을 받는 거겠죠. 병호 씨는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나요?

희귀난치질환으로 분류된 듀센형 근이양증(근육병)을 6살에 진단받았고, 45살이 된 현재는 병세가 진행되어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숨쉬기도 원활하지 않기에 호흡기를 사용해요. 그래서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지체장애 1급)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남들의 평범한 삶을 동경했다. 의존하지 않아도 자립하고 증명하지 않아도 공존하며, 허락받지 않아도 존중받는 사람. 건강한 평균적인 또래를 바라보면 마냥 부럽고 괜히 주눅이 들었다. 왜 걷고 뛰지 못하는 몸이 되었을까? 무릎을 짚어 가까스로 일어서고 휘청이며 쓰러지는 나날도 서러웠는데, 그 힘과 움직임마저 모조리 잃고, 휠체어에 의지해 일상을 살게 되었다. 고통받는 아픈 몸이 수치스러웠다. 고장 나버린 쓸모없는 불량품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차별과 배제의 견고한 장벽을 때로 돌파하고, 때로 우회하면서 연약한 마음은 온통 상처투성이 얼룩졌지만, 끝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내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살펴보면, 크고 작은 흔적들이 파편처럼 박혀 있다. 아픈 몸이 겪은 숱한 통증과 혼돈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무늬를 새겨놓았다. 이제는 고통의 상흔들이 부끄럽지 않다. 내 삶의 의지와 용기가 오롯이 기록된 그 흑백의 필름이 아름다운 수묵화처럼 귀하게 느껴진다. 돌아보면 지난 시련의 나날들이, 인생에 깊이와 감동을 덧입히는 섬세한 터치였음을 감사하게 깨닫는다.” - ‘최병호 님의 페이스북’에서

▲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으로 살아왔네요. 그로 인한 차별과 불공평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요?

아직 많은 곳에서 이동이나 접근이 힘들어서 외부활동이 어려워요. 휠체어와 호흡기를 사용하는 낯선 제 모습을 마주할 때 평등한 시민으로 존중해주기보다는, 여전히 누군가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거나 불쾌한 말을 보태기도 합니다.

“새 학급에 배정되어 개학을 맞을 때마다 내게 쏟아지던 불편한 시선들. 같은 교실, 같은 학생인데, 낯선 동물 구경하듯 위아래로 훑어보며 저희끼리 수군대던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장애인으로 일상에서 흔하게 겪는 일인데도 매번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지만, 속으로 얼마나 불쾌했는지 모른다. 자기 증명을 강요당하고, 사적 영역이 침범당하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장애인에게 불쾌한 시선과 수군거림은 일상이다. 오래도록 그런 순간마다 상처받고 흔들렸다. 무례하고 잔인한 세상과 사람들을 증오하기도 했다. 하지만 살면서 경험한 좋은 날과 나쁜 날 모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인생의 중요한 부분임을 깨닫는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자아로 성숙했고, 내면을 스스로 다독이고 치유하는 마음의 회복력도 익혔다. 앞으로도 아프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분노에 휩싸여 자기를 잃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그들의 빈약한 인권 의식과 공감력의 부재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 최병호 님의 페이스북에서

▲ 나이가 들어 점점 더 장애가 심해져 병원 신세를 질 때가 많다. ⓒ최병호 제공

▲ 평소에 글을 통해 세상과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죠. 우리도 그렇게 친구가 되었고요. 병호 님에게 ‘글’은 단순하게 ‘글자’의 나열만은 아닐 것 같아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편안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게 해주는 즐겁고 편리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저만의 고유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사유하고 성찰하는 일상이 삶의 축복이자 행복이 되어줍니다.

▲ 자신의 장애와 일상, 생각을 덤덤하면서도 간결하게 글로 전하는데 비결은 뭐예요? 읽는 사람은 평온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투병과 장애를 오래 겪으면 우울감이나 불안에 사로잡히기 쉬워져요. 신체는 아프고 불편하지만, 정신의 건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어요. 평소에 마음을 다스리며 내면을 정돈하던 습관이 삶을 담백한 문체로 표현하는 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는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대단한 명예나 성취가 없어도 실망하지 않고, 교양이나 사교가 부족해도 주눅 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나를 담백하게 들어내고, 상대를 잔잔한 미소로 환대하는 걸 좋아한다. 질병에 아파하고, 장애로 괴로워도 불행에 빠지지 않는다. 신체의 제약에 좌초되지 않고, 정신의 자유로움으로 시련과 고난의 파도를 헤치며, 인생의 눈부신 항해를 이어간다. 나의 유약하고, 예민하고, 우유부단한 결점을, 긍정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온화하고, 섬세하고, 신중한 강점으로 변모한다. 진정한 성장은 자기를 쉽게 단정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특성을 바르고 유용하게 쓰는 법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내가 갖지 못한 무엇을 더하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내게 주어진 것들을 따뜻하게 존중하고 어여삐 사랑하여, 슬픔에서 희망을, 고통에서 의지를, 결핍에서 겸손을 발견하는, 아름다운 사람이길 희망한다. 나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다. 하지만 내면에 담대하고 의연한 영혼으로 버티고 살아낸다. 위태로운 건강은 내게 제한된 삶만을 허락하지만, 그럼에도 존엄하고 자유로운 인격으로 존재함을 감사한다. 또한 내 삶을 성숙하게 할 존중과 사랑의 힘을 믿는다.” - 최병호 님의 페이스북에서

▲ 몸을 움직이기 힘든 걸로 아는데, 글은 어떤 방식으로 쓰나요?

윈도우즈의 화상키보드를 이용해요. 터치패드로 커서를 이동하여 원하는 자음과 모음을 하나하나 가리켜서 클릭하며 완성해가는 원리입니다. 손을 전혀 못 쓰는 중증 환자인 분들은 안구 마우스라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포착해서 조작하는 보조기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기독교인으로 알고 있어요. 부모님의 종교인가요? 아니면 다른 계기가 있었나요?

할머니께서 독실한 기독교인이셨어요.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기도와 찬송을 자연스럽게 듣고 자랐고요. 어머니는 권사가 되셔서 항상 예배와 봉사를 열심히 하고 계시고요. 청년 시절에 친구의 권유로 한 교회에 정착해서 세례받고 신실하게 섬기고 있습니다.

▲ 병호 씨에게 기독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투병과 장애로 인한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도 내면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어요. 삶의 고난과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충만한 힘과 용기를 얻어요. 세상의 세속적인 가치는 사라지지만, 복음이 주는 구원과 축복은 영원하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질병과 장애라는 가시를 주셨다. 체력을 서둘러 가져가시고, 절망을 서럽게 안기셨다. 연약한 몸을 견디는 삶은 고통에 넘어지고, 한계에 주저앉는 실패와 좌절을 거듭한다. 무력을 마주하는 두려움과 상실을 받아들이는 체념 앞에서, 내 안의 자유와 평안은 산산이 부서졌다. 하나님은 내게 감사와 긍정의 마음을 주셨다. 잃었거나 이룰 수 없는 일에 미련을 두지 말고, 지금 여기에 주어진 소중한 것을 아끼고 사랑하라고 당부하셨다. 바라보는 아름다운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 애착하는 사물이 슬프고 허전한 나의 마음을 다정하게 위로하고 눈부시게 격려해주었다. 하나님은 내가 통증과 불편을 감내하며, 희망과 사랑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셨다. 가시를 거두시면 좋겠지만, 겸손하게 순종하며 결핍과 한계를 선용하는 지혜 주시기를 기도한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는 말씀처럼,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더 크고 값지게 응답해주신다고 확신한다. 아카시아꽃 향기 짙은 신록의 5월에 태어나서, 신실하신 부모님 밑에서 동생과 화목하게 자랐다. 가장 귀하고 뜻깊은 날에 나를 지으시고,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 또한 모든 순간, 모든 계절에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다.” - 최병호 님의 페이스북에서

▲ 병호 씨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혹시 시설의 유혹을 받거나 느낀 적은 없었나요?

시설에 보내면 서로에게 좋다는 친척이나 이웃의 권유는 받은 적 있지만, 조부모님과 부모님 모두 힘드셔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아픈 저를 사랑과 헌신으로 키워주셨어요. 집안 사정으로 잠시 시설에 간 장애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고 안전하게 권리를 누리는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위태로운 지난날을 회상하면 세상과 사람에게 차별과 혐오라는 예리한 칼날에 베여서 상처받고 절망하던 아픈 순간들이 놓여있다. 병신이라고 놀리고 밀어 넘어트려 저희끼리 킥킥거리는 나쁜 녀석들, 자기 엄마가 비정상인 아이와 놀지 말랬다고 뻔뻔하게 말한 친구. 시설로 일찍 보내야 아이에게 좋고, 가족도 아주 편하다는 이웃 어른, 집에서 편하게 지내지 왜 엄마를 고생시키며 학교 다니냐는 선생님, 엄마에게 안부를 물으며 아들은 아직 안 죽고 살아있냐고 묻는 친척. 그들은 자신들의 무례한 말이 상대를 잔인하고 치명적으로 찌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철철 피가 흐르는 듯한 깊은 내상 입은 마음을 짐작이나 할까?” - 최병호 님의 페이스북에서

▲ 윈도우즈의 화상키보드를 이용해 글을 쓴다. ⓒ최병호 제공

▲ 요즘 가장 큰 관심이나 고민은 뭐예요?

연로한 부모님이 저를 보살피며 갈수록 지쳐가실 일이 걱정이에요. 저 같은 중증 장애인은 활동지원사를 구하기도 어렵고, 지원되는 시간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장애인의 개인별 상태와 환경에 맞는 복지제도가 더욱 세심하고 유연하게 설계되고 시행되길 바랍니다.

“여섯 살 아들이 근육병으로 단명한다는 진단에 아무 말씀 없이 너른 품에 잠잠히 안아주시던 아버지의 먹먹함이 가녀린 몸에 사무치게 전해졌다. 스무 살 아들의 시한부 선고에 울음을 삼키며 떨리는 음성으로 괜찮다고 안심시켜주시던 어머니의 애달픔이 서러운 마음을 세차게 헤집었다. 친구가 군복 입은 친오빠와 다정히 걸어가는 모습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오열하던 동생의 처량함을 떠올릴 때마다 여린 가슴이 시리게 아렸다. 오랫동안 나만 괴롭다고 느꼈다. 깊어가는 병세와 심각해진 장애로 무섭게 덮쳐오는 슬픔과 절망의 쓰나미를 온전히 홀로 감당한다고 낙담했다. 뒤늦게 깨달았다. 감히 나 혼자 버틴 고통과 불행의 무게가 아니었음을. 가장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연약한 나를 대신해서 위태롭게 짊어져 왔음을. 나의 자유와 평안은 부모님과 동생의 땀과 눈물에서 비롯됐다. 세상의 사나움을 막아준 든든한 울타리이며, 절망의 물살에 휩쓸리지 않도록 튼튼한 방주로 지켜주었다.” - 최병호 님의 페이스북에서

▲ 기독교 혹은 교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어울림을 위해서 조력해야 할 게 있다면?

예수님은 고통받고 차별받는 이들을 크신 사랑으로 위로하고 치유하셨어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장애인의 예배 참석이 적은 걸 보면 접근성과 개방성이 부족한 거 같아요 한국교회가 외형적 성장에 몰두하지 않고,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실천하는 영적인 성숙으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 요즘 장애인 시위가 빅이슈가 되었어요.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에 관해서요. 그동안 계속 요구해왔지만 개선된 게 거의 없다고 하죠.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전철을 이용하고, 버스에 탑승하는 일상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날을 상상해볼까요? 그저 이동하는 자유가 제약받는 불편일 뿐일까요? 아니에요. 등교하고, 직장에 출근하는 교육과 노동의 기회가 박탈되는 보편적 권리의 침해이죠. 장애인도 시민이지만, 그동안 차별과 배제의 삶을 살아왔어요.

물론 급진적인 시위방식을 지적하고, 시민을 볼모로 삼는 행태를 문제 삼을 수 있어요. 하지만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인 장애인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고, 다른 사회적 의제들에 매번 밀려났어요. 무시와 냉대로 일관하는 사회에 그들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로 어디에도 닿지 못했고요. 장애인 관련 법안들을 바탕으로 올바른 복지정책이 시행되려면 예산은 필수이죠.

기획재정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예산집행을 미루면서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그들의 투쟁을 비난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부당한 처사인 것 같아요.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는 권리를 주장하는 장애인의 요구가 부당한 걸까요? 소통 창구가 없는 그들의 생존이 걸린 처절한 투쟁이요?

오히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분리되고 고립되는 불평등한 현실이 무너지길 바랍니다. 장애인인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고, 당당히 내 꿈을 보여주고, 오래도록 움츠린 날개를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등을 장애인 모두가 온전히 누리는 날을 맞이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프고 불편한 사람은 질병이나 장애와 함께 살아간다. 완치는 어려워도, 증상이나 후유증을 다스리기 위해 병원 진료와 약물 투약, 물리치료를 병행하며 지낸다. 장애는 불편을 야기하지만, 돌봄과 활동지원을 받으며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교육과 노동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므로 안타깝고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 아니고, 무력하고 무지하고 비정상적인 존재는 더욱 아니다.

“주여,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이 마음에 와닿는다. 완치할 수 없는 질병과 회복될 수 없는 장애를 나의 정체성의 단면이자 상태로 긍정하고 받아들인다. 묵상하고 기도하며, 독서하고 성찰하는 삶의 여정에서 내게 허락된 생명과 존엄을 지키고, 주님께 선물 받은 달란트와 은사를 세상에 나누고 싶다. 존중과 사랑을 담아.

그는 희귀난치질환 근육병(듀센형 근이양증)으로 투병 중인 중증 환자이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이다. 전신의 근력이 약화되어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착용한다. 하지만 감각이나 지적 능력에는 별다른 장애가 없어, 가족의 전적인 지원으로 일반학교에서 교육받았고, 사이버대학에 진학해 문예창작과 상담심리를 전공했다. 미약한 엄지손가락의 힘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카카오톡으로 채팅하며 소통을 이어간다. 밀리의 서재로 독서하고, 유튜브로 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며,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와 드라마를 감상한다.

그의 바람대로 주어진 것들에 늘 감사하고, 자신에게 허락된 생각과 감정의 자유롭고 솔직한 표현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와 우정을 나누며, 지인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래오래 말이다.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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