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전 지성소 상상화 ⓒGetty Images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강조되어야 하는 것 한 가지를 들라고 하면, 로마서 3,25에 근거하여 모든 신도의 사제됨을 말할 수 있습니다. 자주 이야기했던 대로 이 구절에서 화목제물/속죄제물은 속죄소(힐라스테리온, 히브리어 카포렛)으로 고쳐 읽어야 합니다.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는 하나님이 현현하셔서 대사제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의 예수를 바로 그 속죄소로 삼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수의 피에 의지해서 믿음으로 그 자리에 나가는 대사제가 되었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의 이같은 이중역할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에서 대변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사제가 되는 이 변혁의 의미를 교회가 아직 충분히 현재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그 변화가 감춰지거나 소멸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사제입니다. 대사제는 직분에 따른 구별이고 그 역시 기본적으로 한 사제입니다.

성서에서 사제들은 그들의 역할의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편이며, 오히려 많은 경우 비판의 대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역할은 일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과 말씀이 그들에게 맡겨진 책무입니다. 이 둘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 만나고 작동합니다.

말씀으로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가야할 길을 밝히고, 예전에서는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회개와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이 일들을 통해 사제는 그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관계가 유지되게 합니다. 이같은 그들의 일은 형식이야 우리의 일과 같을 수 없지만 그 내용은 지금까지 계속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라기에 따르면 이러한 사제 전통은 하나님이 레위와 맺은 계약에서 시작되었고, 이 계약은 생명과 평화를 목표로 합니다. 레위는 하나님과의 계약을 어떻게 실현시켰을런지요? 당연한 일일 수 있겠지만, 그는 하나님을 외경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옷깃을 여밀 줄 알고 그 안에 삿된 것이 자리잡지 않도록 자기를 경계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선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그는 진리를 따라 법을 말하고 하나님과 평화를 나누며 사람들을 악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그의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특별하게 보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겨냥하고 있는 일상입니다. 미래의 일상을 앞당겨 오늘 사는 자가 레위였고 또 그의 뒤를 잇는 사제들 또한 그랬어야 했습니다. 사제들은 그들이 맡은 말씀을 증언하고,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법이 들려질 것을 기대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진리를 따라 법을 말하는 대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했습니다.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경고를 성서에서 자주 듣습니다. 이는 중도를 가라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한 예를 예수께서 말씀하신 고르반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제는 아니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부모에게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 다 되었으니 부모에게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어기게 했습니다.

반대의 예는 베드로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전통에 따라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엄격하게 구별해왔습니다. 그러던 그가 환상 속에서 보자기 안에 담긴 더러운 것들을 먹으라는 하늘의 소리에 그럴 수 없다고 하며 결코 먹지 않겠다고 대답합니다. 모두 세 차례 이 일이 반복됩니다.

자신의 신념이나 신앙을 지키는 것이 대단히 고귀한 일인 경우도 많지만, 그것 때문에 자기가 믿는 하나님의 말씀도 거부한다면,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위에 자신을 올려놓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말들 중에도 그러한 예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하나님이 심판하실 리 없다고 하거나 하나님은 그의 말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니 말씀하신 대로 심판하셔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고, 그 근원이 야훼의 사자로 일컬어지는 사제들에게 있다고 하니 놀라운 일입니다. 왜 그런지요?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그들이 진리를 따르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따른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얼굴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혹이나 위력으로부터 사람이 온전히 벗어나 행동하기는 쉽지 않고 기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사제들이라면 노력은 하고 반성하고 돌이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 노력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행동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준거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 이외의 다른 것들이 혹시 있다 해도 모두 그 안에 통합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준거점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진리를 따라 법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 때문에 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때로는 심판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때로는 심판 선언을 듣고 사람들이 돌이키면 그 심판을 취하하시는 분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과 평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지성소의 속죄소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 까닭은 비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의 전통을 강요하려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그리스도를 오해했고 그리스도의 일을 무효화시켰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가 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모두에게 동일한 자유를 주었고,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 안에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직무의 구별은 있을 수 있어도 구별이 차별을 낳지 않습니다. 모두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몸의 일부가 없으면 전체가 불편을 겪고 아프면 전체가 아픕니다. 통상적인 말로 바꾸면 부분은 전체를 위해 있고, 전체는 부분을 살리고 의미있게 합니다. 여기에 어떻게 차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생명과 평화를 목표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차별을 철페하고 동등케 하며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케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대사제일 뿐 아니라 사제로서 하나님의 목표를 위해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의 사랑으로 우리는 죄인임에도 그의 사제가 되었고 사람과 세상을 그의 사랑을 통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우리가 우리의 옛사람으로부터 다 벗어나지 못했을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사람을 향한 여정에 있고 그의 사랑은 우리의 준거가 되었고 우리에게 새목표를 주었습니다.

차별과 불평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눈이 되기를 빕니다. 권력자에 빌붙어 탐욕으로 말씀과 법을 곡해하고 교회를 파는 파렴치한 사이비들에 맞서 진리와 정의로 평화를 향하는 하나님의 행진에 참여하고, 거짓과 폭력으로 생명과 평화를 위협하는 불의 앞에서 하나님의 사제로 진리를 따라 행동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