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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하는 신앙“더 좋은 것을 위해 한 발자국 앞으로”(빌립보서 3:12-16, 히브리서 11:6-8)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7.31 02:04
▲ 성서는 안주하는 신앙에 대해 낯설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지난 한 주간 매일 동네를 순찰하면서 인간적인 걱정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극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관광객이 너무 적었기 때문입니다. 편의점 사장님은 수익이 작년과 비교해 반의반 토막도 안 된다고 말씀하시고, 펜션이나 민박을 둘러봐도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야 이런 경제적인 요소들이 평안 누림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평안의 핵심을 물질에 두고 있기에 지역 사회를 생각하면 인간적인 걱정을 하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주일 동안 고성과 서울을 오가며 여러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삶을 잠시 흔들기는 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안에 주어진 평안은 사라지거나 빼앗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시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요한복음 14:27의 말씀입니다.

진정으로 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해서 그럴 뿐, 성도가 그토록 바래야 할 것은 하나님이 이미 우리 안에 주셨습니다.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일들에 마음을 쏟지 말고, 이미 내 안에 주어진 평안을 성령님과 함께 선택하고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몇 달 전 정글이 되어버려 뱀이 나올까 무서웠던 사택 뒤 공터에 풀을 베고 야자 매트를 깔았습니다. 처음 야자 매트를 깔았을 때, 동네 분들이 다들 잘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좋아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야자 매트를 깔고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숙제를 해낸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며칠을 새벽기도 마치고 걷고, 낮에 또 걷고, 시간이 나면 마당으로 나가보곤 했습니다.

더 이상 풀 때문에 고생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야자 매트를 뚫고 풀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풀이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는 새벽마다 풀을 뽑아서 처음 야자 매트가 깔렸을 때와 같은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풀을 뜯는 속도보다 풀이 올라오는 속도가 더 빠르게 되었고, 바빠지고 피곤해지면서 며칠 풀을 뽑지 않게 되자, 야자 매트를 깔기 전의 모습과 비슷하게 되어갔습니다.

흐린 어느 날, 밀린 숙제를 다시 하듯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몇 시간을 뽑았지만 처음 야자 매트를 깔았을 때처럼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희한한 것이, 그렇게 깔끔하지 않은데도 풀이 무성한 것과 비교하면 너무 괜찮아 보였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야자 매트 위로 잔풀들이 올라와 있음에도 만족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곤 처음 야자 매트를 깔았을 때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아마 타인이 보기에는 ‘저게 뭐야?’, ‘저게 다야?’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더 좋은 것을 누릴 수 있었지만 저는 포기했습니다. 아주 조금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텐데 처음 좋았던 모습은 잊어버리고 ‘이정도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현재에 안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풀을 뽑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런 저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 말입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는데 노력하지 않고, 지금이 괜찮은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 안 좋았을 때 보다는 지금이 나으니 좋은 상황으로 여기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더 제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12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성도’는 좇아갑니다. 좇아가는 성도는 현재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애를 쓰고, 삶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갑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앞을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합니까? 뒤에 것을 바라봅니다. ‘내가 예전에 그랬었지.’라고 말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안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리 포기하고 몸을 내밀고 앞을 향해 나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의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노력하면 정말 기쁨을 누리게 될까?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은혜를 경험하게 될까?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

히브리서 11:6-8의 말씀입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7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에 대하여 경고하셨을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이 믿음을 통하여 그는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을 따라 얻는 의를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확실한 무언가가 있고, 보이기에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를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무언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그 일이 긍정적인 일이건, 부정적인 일이건 상관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나고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선택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바로 그 시간이 성도에게는 믿음이 성숙할 수 있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해 날마다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여 먹이를 찾고 사냥해야만 하는 밀림에 한 무리의 독수리가 살았다. 하늘 높이 비상하는 기술을 연마해 날카로운 시력으로 땅 밑을 응시하며 먹이를 찾아야 했다. 일단 먹잇감을 발견하면 높은 곳에서 화살처럼 내리꽂아 사냥했다. 먹이를 찾아 오랫동안 날아야 했지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생존해 나갈 수 있었다. 자신과 새끼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 더욱 강한 날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먹이를 찾아 독수리 무리가 긴 거리를 두고 연달아 날았다. 그러다 보니 밀림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게 되었다. 한참을 날다가 독수리들은 우연히 다양한 풀과 나무로 가득한 푸른 섬을 발견했다.

섬 위를 날면서 유심히 관찰해보니 온갖 종류의 새와 토끼, 설치류, 그밖에 유사한 작은 생물의 무리들이 평화롭게 뛰어놀고 있었다. 무척 끌리는 섬이었다. 반면에 놀랍게도 그들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는 사자나 호랑이, 표범과 같은 큰 동물은 찾을 수 없었다.

독수리들은 크게 안심했다. 이제부터는 몇 시간 동안 비행하며 힘든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 섬에 머물면서 쉽게 먹이를 사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오래 머물자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 늙은 독수리 한 마리만 제외하고 모든 독수리가 행복했다.

그 늙은 독수리는 동료 독수리들에게 말했다.

“우리의 강한 날개와 날카로운 시력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그 덕분에 아주 높이 장시간 날 수 있고, 날카로운 눈을 통해, 높고 먼 곳에서도 먹이를 찾을 수 있다. 많은 노력 없이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이런 환경에 머물면 우리는 게을러지고 편안하게 놀기만 할 것이다. 이런 자세는 길게 보았을 때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세기 동안 확실하게 익혀 온 사냥 기술과 기량을 차츰 잊어버릴 것이다. 가능한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이 말을 들은 많은 젊은 독수리 무리는 그를 조롱하면서 바보라고 놀렸다. 늙은 독수리가 섬을 떠나면서 함께 가자고 부탁해도 아무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와 동행하기를 거부했다. 낙담한 늙은 독수리는 나머지 무리를 뒤에 두고 홀로 섬을 빠져나갔다.

1년쯤 지난 뒤 늙은 독수리는 남아 있던 독수리들의 운명을 알아보기 위해 다시 섬으로 갔다. 많은 독수리가 이미 죽고 여러 마리가 부상을 입어 불구의 몸이 된 것을 보고 그는 놀랐다. 남아 있는 독수리들은 피폐해져서 힘이 없어 보이고 높이 멀리 날 수조차 없었다.

독수리들이 이처럼 불행한 상태에 처한 이유를 묻자 생존자 중 하나가 말했다.

처음 몇 달 동안 우리는 이곳에 머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먹이를 찾고 사냥하는데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았습니다. 몇 달 동안 우리는 전혀 날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모든 먹이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으로 활동하지 않자 우리는 강력했던 날개가 퇴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생물의 수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먹이도 부족해졌습니다.

더불어 섬의 저쪽 끝에 서식하고 있던 하이에나, 여우, 들개와 같은 중간 크기의 육식동물들이 갑자기 나타나 이곳에서 사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가능한 사냥감을 다 먹어 치우자 이 야생동물들은 우리를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오랫동안 편안하고 느긋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잡혔습니다. 본래의 민첩성과 기민함, 강하고 빠르게 나는 능력을 잃어 그들의 급습을 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리 중 많은 독수리가 부상을 입고 죽어 갔습니다. 먹이 부족과 현재의 힘든 환경에서 사냥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능함이 우리를 절망적인 나락에 빠뜨렸습니다. 당신의 조언을 듣지 않고 이곳에서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눌러앉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제가 좋아하는 류시화 시인이 쓴 책의 일부 내용입니다. 성도는 삶의 안정을 위해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위해 한 발자국 더 모험하는 성도, 사랑하고, 섬기고, 용서하고, 의를 선택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16 어쨌든, 우리가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지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합시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를 원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드러내실 것입니다. 머물러 있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십시오. 저도 남은 풀을 마저 뽑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은혜로운 삶, 기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기쁨과 은혜, 평안을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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