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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가 아니라 오해라면, 행동으로 보여 주십시오”이훈삼 목사님의 “지금 먼저 필요한 것은 ‘오해의 해소’입니다”에 대한 답글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 승인 2023.08.15 23:44
▲ 지난 8월3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진행된 NCCK 총회 개최 장소에서 청년들이 김종생 목사의 총무 선출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홍인식

1. 이훈삼 목사님, 답해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목사님의 글에서 제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김종생 NCCK 총무 선출에 반대 운동을 펼친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들이 그 반대운동 이후에 에큐메니컬 운동에 어떻게 자리잡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의식을 두고 대화를 나누어볼 만하지 않을까 해서 첫 번째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만 목사님께서 당황하신 데 대해서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2. 본격적인 논지를 펼치기에 앞서 결과와 동기를 보는 관점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목사님이 말씀하신 결과와 동기에 관한 이야기도 크게 틀린 점은 없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결과를 더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상황이 끝난 후에도 그 상황의 결과는 이후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법이고 그러기에 그 영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하는 책임을 우리에게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동기가 선했다면, 그 선한 동기는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기도 할테고 말입니다.

3. 김종생 목사 개인에 대한 평가는 각자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목사님의 연이은 글에서 김종생 목사에 관한 언급은 대체로 김종생 목사가 간신히 일종의 ‘최저선’은 넘은 거 아니냐고 말씀하신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그 최저선을 넘는 것도 목사님이 여러 방법으로 설명하려고 애쓰신 NCCK의 구조적 요인과 닥친 어려움까지 고려해야 겨우 최저선을 넘는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겠구나 싶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목사님의 글이 그런 최저선 이야기로 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요인은, 가장 최근의 근 20년간을 담임 목회 4년 외에는 김삼환 목사와 명성교회의 외곽조직 일로 보내놓고 명성교회의 세습에 관한 질문에 “난 그 때 목회하고 있었다”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김종생 목사 본인에게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인사를 NCCK 총무로 선출하겠다니 당연히 반대운동이 일어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무 선출이 이루어져 반대운동을 했던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들이 많이 실망을 했습니다. 어느 청년 활동가의 글을 보니 그 분은 이번 총무 선출에 기장 교단 측 실행위원/대의원들이 침묵한 것에 대해서도 실망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목사님도 그런 실망이 있음을 알고 있으시기에 글을 쓰신 거라 생각하구요.

목사님은 그런 실망을 풀어나가는 실마리가 “오해의 해소”라고 생각하십니다. 이번 총무 선출에 실망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총무 선출에 찬성은 했지만 에큐메니컬 운동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도 앞으로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갱신과 호전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할텐데 전자가 후자에 대해 불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 불신을 그대로 놔 두면 함께 일하는 게 어려워질 거라 생각하셔서 그 불신이 오해임을 말씀하시려는 것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목사님이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서 하신 여러 말씀 때문에, 오히려 이런 인식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에큐메니컬 운동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도 NCCK의 그러한 구조적인 요인과 현재의 어려움까지 고려해서 김종생 총무 선출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것은 현재의 NCCK와 에큐메니컬 운동이 구조적인 한계에 부닥쳤다는 말이기도 하지 않은가 하는 인식 말입니다. 만약 구조적인 한계가 맞다면, 찬성한 사람들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해소한다 해도, 그 한계는 여전히 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4. 그러므로 여성, 청년, 현장(지역)활동가들의 활동에 대한 문제의식은 김종생 총무 선출에 실망한 그분들이 그래도 에큐메니컬 운동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정도로 국한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현재의 NCCK와 에큐메니컬 운동이 구조적인 한계에 부닥친 것이 맞다면, 그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해 나갈 활력이 과연 어디서 나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으로까지 나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 글에서 제가 쓴 것처럼, 현재 이 운동들의 상당수가 자생적인 경로를 걷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식과 관련해 한 가지 짚어 볼 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적 지평에서 사회적 실천을 하고자 할 때 보통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주로 구제 내지는 봉사 등의 말을 사용하며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공인된 주제 중심으로 일하는 양상이 한 편에 있다면, 주로 연대라는 말을 사용하며 사회적인 논란이 일어나는 주제에도 연대가 필요한 곳에 함께 하면서 그 활동에 대한 신앙고백을 ‘사회선교’라는 이름으로 구체화하는 양상이 다른 한 편에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교적 지평에서는 보통 전자의 양상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납니다만, 후자의 양상도 꼭 나타난다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지요.

이 글에서 주로 논하는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들은 앞 문단에서 이야기한 전자와 후자 중에서는 주로 후자, 연대와 사회선교의 입장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운동들이 사회적인 논란이 일어날 주제라도 연대가 필요한 곳에 함께 한다는 특징이, 이 운동들이 보여 주는 자생적인 활력의 한 근원이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이야기한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해 나갈 활력의 한 중요한 근원으로 이런 운동들이 사회적인 논란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보여주는 활력이 고려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다른 이야기를 좀 하면, 김종생 목사의 주요 경력으로 ‘한국교회봉사단 사무총장’이라는 직책이 소개되더군요. 그런데 그 한국교회봉사단이란 단체 말입니다. 김종생 목사가 9년 전 사무총장 사역을 그만둘 때는 김삼환 목사가 대표회장이었고, 9년이 지난 지금에는 김삼환 목사가 총재입니다.

게다가 불법 교회 건축과 학력위조로 교회 안팎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와, 총장으로 있던 대학에서 횡령을 저질렀던 장종현 목사, 네오마르크스주의 운운하는 헛소리를 버릇삼아 퍼뜨리고 다니는 소강석 목사 등등이 이사장이니 뭐니 등등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걸 보고 ‘한국교회’의 ‘봉사’와 ‘구제’라는 게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거였나, 이건 거의 면죄부 발부까지 포함하는 수준인데 하고 혀를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구제/봉사 등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시는 분들 중에 진정성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닙니다만.

5. 그래서 목사님. 목사님이 답하신 글 중에 이홍정 NCCK 직전 총무의 NCCK인권센터 관련 언급을 배제라고 해석하지 말라는 부분에 대해서 좀 심각하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사님도 말씀하셨듯이 인권은 NCCK 정체성의 한 축이었으며 NCCK인권위원회라는 조직으로 오랫동안 교회적/사회적으로 중요한 활동이 이루어져 왔던 영역입니다. 그리고 NCCK인권센터는 그 NCCK 인권위원회의 후신격인 조직이지요.

그런데 이런 역사를 가진 조직이 한 일을 가지고 아무리 NCCK와 조직적인 분리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NCCK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한 해명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인권과 관련된 NCCK의 역사를 부정하는 언행이라고 해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설령 NCCK인권센터가 그런 역사를 갖고 있는 조직이 아니라고 해도, 이홍정 직전 총무의 언행은 에큐메니컬 운동 중 적어도 NCCK로 집결되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영역에는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 인권 이슈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배제라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배제가 일어나는 한, 이 글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들의 활력과 NCCK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을 테구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우려까지 하고 있습니다. 김종생 총무의 재임 기간 중에 예장통합 또는 감리교 등에서 NCCK가 차별금지법 반대 입장이나 성소수자 혐오 입장을 한국교회 공통의 합의라는 명분을 들어 공식화할 것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고, 김종생 총무가 거기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물론 목사님도 설명하시고 저도 약간 알고 있는 NCCK의 구조적 요인상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실제로 그런 입장을 공식화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들에겐 또 한 번의 실망의 계기가 될 것이며. 그런 입장이 공식화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냥 최악을 막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일 테지요.

6. 이훈삼 목사님. 아마 이 글을 다 읽으신 후에도 목사님과 제가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는 부분이 그리 많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다만 목사님과 저를 비롯해, 목사님과 제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 더 생각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쟁점 정리를 겸하여 목사님께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목사님은 김종생 목사가 명성교회 외곽조직 활동경력을 주 토대로 하여 NCCK 총무에 선출되었다는 결과와, 이 결과에 대한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들의 실망이라는 상황을 '오해의 해소'라는 키워드로 풀어가고자 하셨습니다.

만약 ‘오해의 해소’라는 키워드가 적절하다면, 그것은 지금 이런 상황을 빚게 된 근본요인인 NCCK의 난맥상이, 제가 범주화하고자 했던 ‘구조적인 한계’라기보다는 (그 정도는 둘째 치고라도) 일시적인 문제일 뿐인 경우일 것입니다. 그래서 김종생 총무 선출과 같은 고육지책을 써서 일단 그 난맥상을 정리하고 나면 그것을 고육지책이라고 받아들였던 사람들과 고육지책으로라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람들이 함께 일해서 NCCK와 에큐메니컬 운동을 갱신할 수 있는 경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을 비롯해서 목사님과 같은 입장에 서셨던 모든 분들께, 지금 이 상황이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친 것이라는 냉엄한 지적까지 가지 않아도 에큐메니컬 운동의 갱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 주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해의 해소를 원하시는 입장이시라면, 에큐메니컬 운동의 갱신을 위해서는, 여성, 청년, 현장(지역) 활동가들의 자생적인 동력이 그냥 에큐메니칼 운동의 한 부분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갱신의 주도권을 잡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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