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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법 위에 서 있는 것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08.19 20:54
▲ 내가 받은 자비와 은총은 거저 받은 것이기에 우리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 ⓒhttps://abidingwordtx.org/podcast/jesus-church-lives-in-forgiveness-matthew-1821-35/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 종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냐.(마태복음 18,33)

이것은 베드로가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하느냐고 질문했을 때 예수께서 그와 관련하여 말씀하신 무자비한 종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스스로 일곱 번까지입니까라고 덧붙이자 예수께서는 일곱번씩 일흔 번까지라고 고쳐주십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비유를 덧붙이십니다. 왜 그리하셨을까요?

베드로의 질문 상황과 이 비유는 딱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형제들의 관계와 종들의 관계가 다르고 주인과 종의 관계가 새로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이 덧붙여진 이유는 너희가 형제를 마음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그리 하실 것이라고 하는  35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곱번씩 일흔번이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이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마음에 없는 용서는 그 횟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그 의미는 크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 비춰 비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왕에게 달란트를 빚진 자가 빚을 청산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왕은 어떻게 할까요? 그는 빚진 자와 그의 가족 모두를 노예로 팔아 빚을 갚게 하려고 했습니다. 빚진 자는 가족 해체와 채무노예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왕에게 사정하는 것 뿐입니다. 조금만 참아주면 다 갚겠다고 청합니다. 그러자 왕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갑자기 왕의 속에 들어왔습니다.

불쌍한 마음이란 의도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불쌍한 마음이 든다고 꼭 그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빚을 반드시 받아내야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면, 불쌍한 마음은 설 자리를 잃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왕은 불쌍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의 빚을 전부 없애주었습니다. 이것은 왕이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라기 보다 불쌍한 마음을 더 넓게 하고 그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훈련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불쌍한 마음 때문에 맺어진 왕과 그의 종의 관계는 그것으로 완결되지 않습니다. 그 종에게 작은 빚을 진 동료 종이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종은 동료 종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게 했습니다. 이 일이 왕의 귀에 들어가자 왕은 그를 불러 그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를 준엄하게 이릅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왕이 그의 종에게 자기처럼 할 것을 처음부터 요구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왕은 그가 자신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와 맺었던 관계를 취소하고 그가 동료 종에게 했던 그대로 그에게 했습니다. 변덕일까요?

그 종의 무자비한 행태 때문에 왕의 불쌍한 마음은 실망으로 바뀌고 분노로 대체되었습니다. 불쌍한 마음은 부당한 일이나 태도를 수용할 수 없고 그 빌미로 작용될 수도 없습니다. 불쌍한 마음은 오히려 그러한 것에 대해 단호합니다.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은 법대로 하는 것이기에 냉혹한 것일 수는 있어도 부당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태를 본 사람들이나 그것을 들은 왕에게 그것은 그릇된 일입니다. 판단의 기준이 법에서 그 종이 받은 은혜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법 위에 있는 자비입니다. 그가 경험한 은혜는 그를 통해 다시 나눠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왕은 노했고 그의 자비를 거둬들이고 법대로 그를 처리합니다. 이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재현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자비가 자비를 낳고 사랑이 사랑을 낳을 때 그 자비와 사랑은 온전해집니다.

우리에 대한 하니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바꾸고 불쌍한 마음을 낳는 오늘이기를. 마음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용서하고 마음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하나 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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