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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폭력이 되는 세상시온 산에 우뚝 선 십자가(미가 4,1-5; 골로새서 1,18-20)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11.16 01:39
▲ 성서는 이미 신들과 그 신들을 섬기는 백성들을 인정하고 그 차이조차도 받아들이고 있다. ⓒGetty Images

미가 3장은 정의를 역겨운 것으로 생각하고 올곧은 것을 비틀며 시온을 피로 세우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선언합니다. 시온은 정치가와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이 하나 같이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는 미가의 눈이 잘못되고 미가에게 이렇게 말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너무 하다고 보이십니까? 지금 우리 사회, 더나아가 세계는 미가가 비판한 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 조찬기도한다고 검찰독재자를 미화하고 희망으로 내세우며 축복을 비는 꼴이 결코 정상일 수 없습니다. 권력 앞에 하나님을 조아리게 만들면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거짓말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심판의 칼을 갈고 계십니다. 그들 때문에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돌무더기가 되고 성전 언덕은 잡초만 무성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다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같은 말씀 앞에서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옷깃을 여미며 묻게 됩니다.

심판은 정해진 것이나 심판의 목적은 파괴와 결별이 아님을 오늘의 본문은 보여줍니다. 심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설령 고통스러운 시간을 피할 수 없을지라도 그 고통은 새로움의 시작을 그 안에 담고 있습니다. 그 희망을 잡고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게 합니다. 견딜 뿐 아니라 희망을 현실로 ‘번역’하게 합니다. 부당하고 부조리한 억압적 질서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저항하게 합니다. 그 희망은 무엇일까요?

미가가 보여주는 희망과 미래는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잡초만 무성하던 곳이 세상에 우뚝 솟아 세상 모두가 그곳을 보고 그곳으로 몰려오게 됩니다. 서로 물고 물리고 죽고 죽이던 민족들이 그곳으로 올라갑니다. 이 사건을 일으키는 계기로 우뚝 솟는다는 한마디 말밖에 없음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상상력을 극대화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본문은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사람들은 그 산에서 부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찾지 않습니다. 힘을 바라지 않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길, 그의 말씀, 그의 법이 거기서 나올 것을 희망합니다. 도대체 그의 길이 무엇입니까? 그의 말씀, 그의 법은 무엇입니까?

야훼 하나님은 그 법으로 민족들과 민족들 사이를 재판하실 것입니다. 재판은 벌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분쟁을 해결하고 갈등을 조정함으로써 화해를 일으키고 전쟁이 그치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디. 단순히 전쟁을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구 평화를 달성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무기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아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고 전쟁이 더이상 없으므로 군대가 불필요해지고 군사훈련이 멈춥니다.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유토피아적 희망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 가운데 심으시고 뿌리 내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은 이러한 미래를 위한 법입니다.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모든 민족들 사이에 평화가 수립되도록 하나님은 그 법으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로서 이 꿈을 간직하지 않고 꿈은 단지 꿈일 뿐이라고 조소하며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을 지지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평화의 법이며 하나님의 길은 평화의 길입니다. 이 법을 품고 그 길을 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말씀은 현재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고발하고 이스라엘과 미국에게 공격을 당장 멈추고 평화의 길을 가라고 명령합니다. 전쟁의 중단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4절의 말씀은 전쟁 없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될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지은 것으로 자신의 삶을 꾸리고 자신의 노력을 그 누가 짓밟거나 빼앗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소박한 언어로 그려져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삶을 부정당하거나 침해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평화의 실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지향하는 미래사회의 모습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가장 큰 오류는 하나님이 이러한 미래를 지향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사실 처음부터 이러한 길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를 따로 떼어내 그만을 지키고 그만을 잘되게 하시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복되게 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 모든 민족들을 복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창 12,3).

그런데도 이스라엘, 또 교회는 이를 제대로 읽지 않았습니다. 더나아가 하나님은 이 세상을 평화의 세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창 1장). 그럼에도 이스라엘과 교회는 반평화적 세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지나친 것으로 여겨지십니까? 한 예를 들자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던 제주 4.3사건을 일으킨 서북청년단의 배후로 교회가 그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고 그 후예들이 정의롭지 못한 자를 위해 조찬기도회에 열심히 참여합니다. 이러한 것이 교회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야훼 하나님의 말씀과 길을 사모하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멈추게 하고 각 나라 안에서 안전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루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는 이를 위해 시온에 우뚝 세워진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고 그 아래 모여 있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기 위해 시온에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이렇게 이루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린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평화를 이루시고 세상을 화해의 장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부터 말씀의 강이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싣고 온 세상을 향해 흐르고 닿는 곳곳마다 생명을 살리고 평화의 미래를 가져옵니다. 이 평화의 소식이 하늘엔 영광의 사건이 됩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십자가 아래 온 세상이 몰려오는 화해의 날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가 흔히 말하는 선교가 아님을 우리는 이사야 본문 끝 5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모든 민족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이름을 따라 살 것이지만, 우리는 우리 하나님 야훼의 이름을 따라 살 것이다. 우리는 이 구절의 함의를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이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시온 산의 십자가에서 흐르는 평화의 법과 화해의 말씀이 세상을 평화로 이끌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세상은 다양성이 여전히 유지되고 차이들이 존속되지만, 전쟁이 폐지되고 무기가 불필요한 세상, 각자 자기가 한 일의 결과를 두려움 없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세상, 사랑으로 서로 연대하며 온갖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 공존할 수 있는 세상, 정의와 공의로 생명을 존중하고 서로 보충하고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앞당겨 사는 이 땅의 교회들과 또 우리들이 되기를 빕니다. 하나님은 화해를 위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말씀과 법을 사모하여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평화의 신을 신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위로와 쉼과 평안 가운데 화해를 위한 우리 삶의 길을 끝까지 가게 하시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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