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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100년 전 질문, “근본주의자들이 승리할 것인가”
허호익(전 대전신대 교수) | 승인 2023.12.05 14:12
▲ ‘오번 선언(Aubern Affirmation)’ 원문 ⓒhttp://www.westminsterauburn.org/uploads/5/3/6/2/53624267/auburn_affirmation.pdf

루이 15세의 주치의였던 쟝 아스트뤽(Jean Astruc)은 1753년 창세기를 읽다가 1장 1절에서 2장 4절까지는 엘로힘이라는 신명(神名)으로 기록되었으나, 2장 4절부터는 야웨 엘로힘으로 다르게 기록된 것과 그 내용도 서로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의 자료비평학의 영향을 받은 그는 창세기 안에는 최소한 서로 다른 두 자료, 즉 엘로힘 문서(E)와 야웨 문서(J)가 있었고, 모세가 이 두 자료를 이용하여 현재의 창세기를 편집하였다는 놀라운 주장을 하였다. 그의 통찰은 성서의 고등비평학으로 발전하여 100여 년 동안 독일을 중심으로 여러 학자들에 의해 현존하는 성경 이전에 여러 문서들이 있었고, 그 문서들이 오늘의 성경으로 편집된 것이라는 문서설로 널리 수용되었다.

신학적으로는 후발 주자였던 신대륙 미국 대학에 문서설이 처음 소개된 것은 1890년이었다.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브릭스(Chrales A. Briggs) 교수가 “성서의 권위”라는 제목의 유니온 신학교 교수 취임 강연을 통해 성서의 고등비평에 근거한 문서설을 소개하였다. 이는 성경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어떤 의미에서 축자적으로 구술’되었다는 영감설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미국장로교회는 큰 충격을 받았고, ‘브릭스 사건’이라 불릴 만큼 큰 물의가 일어났다. 유니온 신학교가 소속해 있던 미국 북장로교회는 1892년 고등비평적 성서관을 정죄하고, 브릭스 교수와 그를 동조하는 교수들을 해임하였다.

문서설과 성서 고등비평에 위기를 느낀 보수적인 교회 지도자들은 기독교 근본 교리를 수호하기 위한 대중 전도 집회에 나섰다. 1878년 나이아가라에서 모인 사경회에서 14개의 항목으로 된 소위 ‘나이아가라 신조’를 채택하였는데, 그중 다음 5개 항목이 1895년부터 ‘5대 근본 교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1. 성서의 축자영감설, 2.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3.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4.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5. 그리스도의 재림

미국장로교(PCUSA) 총회는 1910년, 1916년, 1923년에 걸쳐 ‘근본주의 5대 교리’를 교단의 정통성 확립을 위한 필수적인 교리로 거듭 채택하였다. 따라서 목사후보생들에게 근본주의 5대 교리를 강요하였으며, 이미 안수 받은 현직 목사에게도 근본주의 5대 교리를 수용 여부를 검증하기에 이르렀다.

이토록 맹렬하게 전개되던 근본주의 운동도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뉴욕제일장로교회의 담임목사였던 포스딕(Harry E. Fosdick)은 1922년 5월 21일 “근본주의자들이 승리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근본주의자들의 편협과 불관용을 비판했다. 그리고 성서의 축자영감,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그리스도의 육체적 재림 등을 절대적 교리로 고집하는 근본주의자들은 온 세계가 무지와 빈곤과 전쟁 등의 사회악으로 죽어 가고 있는데도 “사소한 일로 다투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또한 이러한 시대착오적 발상과 세속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비판하고,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였다. 새로운 지식, 현대 과학, 새로운 신학을 거부하고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근본주의는 마침내 실패할 것이며,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근본주의자들은 포스딕 목사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 사이에도 근본주의 자체의 교리적 축소주의, 방법적 편협주의, 소아병적 부정주의, 전투적 호전성, 분열의 악순환을 자체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형성되어 마침내 성서비평학을 수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사 1,274명이 1924년 1월 뉴욕의 오번 신학교에 모여서 미국장로교총회에서 결의한 “근본주의 5대 교리”를 수용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교단 내 목사들의 사상과 교육의 자유를 주장하고, 앞으로 목사 고시에 응시할 목사후보생은 5대 교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결의하였다. 이것이 다음 6개 항목으로 요약된 오번 선언(Aubern Affirmation)다.

1. 성경은 오류가 없다. 그러나 성경 해석을 위한 최고의 지침은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개별 신자에 주어진 하나님의 영이다. 그래야 ‘양심의 자유’를 높일 수 있다.
2. 총회는 노회에 교리를 지시 할 권한이 없다.
3. ‘장로교의 표준에 어긋나는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총회의 치리는 장정(章程)에 명시된 정당한 절차에 벗어난 것이다.
4. 다섯 가지 근본 교리 중 어느 것도 목사 안수 시험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교리에 대한 대안적 ‘이론’도 허용되어야 한다.
5. 복음적 기독교의 범위 내에서 사상과 가르침의 자유가 필요하다.
6. 분열은 비난하되 화합과 자유는 격려해야 한다.

마침내 미국장로교회 내의 분열을 피하기 위해 구성된 15인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장로교단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의견에 대해 관용해 왔고, 총회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교리를 결정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거부하여 왔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 여파는 프린스턴 신학교의 분열로 이어졌다. 프린스턴 신학교는 1812년 설립 이래로 미국 보수 신학과 “성서영감설”의 본거지로서 군림해 왔다.

그러나 1914년 스티븐슨(J. Ross Stevenson)이 교장으로 취임한 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보수적인 신앙 전통에 서 있는 학자이지만 신학적 입장에서는 중용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결국 1929년 경에 이르러서는 근본주의자들이 소수로 전락하였고, 성경 무오설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이탈하여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는 포스틱 목사의 예고처럼 결과적으로 근본주의자들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수 십 년간의 논의 끝에 2011년 미국장로교회(PCUSA)는 동성애자 목사 안수를 허용하는 결의를 하였다. 그와 반대로 한국의 장로교(예장통합)는 2016년 총회에서 ‘동성애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동성애자·옹호자를 권징 할 수 있는 법 제정안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이듬해 총회에서 “동성애자, 동성애 지지자, 옹호자는 교회 직원(항존직, 임시직, 유급 종사자) 및 신학대 교직원이 될 수 없다.”(총회 헌법 시행규정 제2장 제26조 12항)는 규정을 만들었다. 2018년 총회에서는 동성애자·지지자의 목사 고시 응시를 제한하는 안건이 통과됐다.

2023년 예장 통합 총회에서는 동성애및젠더주의대책위원회가 “총회장·부총회장 후보, 노회장·부노회장 후보, 총회 산하 신학대학교 총장 후보자와 목사 후보생 고시(노회) 및 목사 고시(총회) 응시자는 동성애와 젠더, 제3의 성에 대한 견해를 서면으로 제출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총대들은 반대 의견 없이 그대로 통과시켰다. 최근 실제로 평소에 동성애를 옹호하던 어떤 청년이 노회의 강요로 자신의 소신을 저버리고 목사후보생 고시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문서로 제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장 통합이 ‘동성애와 젠더, 제3의 성에 대한 견해를 서면으로 제출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100년 전 미국장로교회가 목사후보생들에게 ‘근본주의 5대 교리’를 강요한 것을 연상시킨다. 100년 전 ‘근본주의는 승리할 수 없다’고 외친 뉴욕제일장로교회 포스틱 목사의 예언자적 선포와 1,274명의 목사들이 신앙 양심의 자유를 외치며, 비본질적인 근본주의 5대 교리를 거부하고, 오번 선언을 통해 “다섯 가지 근본 교리 중 어느 것도 목사 안수 시험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교리에 대한 대안적 ‘이론’도 허용되어야 한다. 복음적 기독교의 범위 내에서 사상과 가르침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외친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반동성애 강요는 결국 근본주의 5대 교리의 강요처럼 실패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허호익(전 대전신대 교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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