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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과 <건국전쟁>, 어느 편에 설 건가이승만을 다룬 두 작품, 참과 거짓이 싸우고 있다
허호익(전 대전신대 교수, 연세신학연구회 종신회장) | 승인 2024.03.05 01:17
▲ 이승만을 다룬 두 작품, <백년전쟁>과 <건국전쟁>

이 칼럼을 쓰기 위해 <건국전쟁>을 보면서 영화 전체를 녹취하였습니다. 20명 미만 관객 대부분이 노인들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어떤 할머니가 “눈물이 난다. 저렇게 훌륭한 분을…”이라고 탄식했습니다. 이미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모두 5편으로 제작한다는 이 영화를 여러 교회가 단체 관람을 했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3950명, 제자교회까지 포함해 5,000명 이상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김덕영 감독은 “사실은 이건(<건국전쟁> 제작) 제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저는 그냥 도구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영화 제작과 개봉 후 흥행에 교회의 역할이 컸다”며, “대한민국의 위기의 순간마다 기독교가 앞장서서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친북·좌파 세력이 강한 상황에서 결국에는 기독교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실의 빛을 세상에 드리우는 작업을 기독교가 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기독일보> 2024.02.14.)

이 영화의 기본 논지는 이승만은 하버드와 프린스턴을 나온 당시로는 최고의 스팩을 지닌 훌륭한 지성인이며, 교육과 외교를 통해 독립운동에 헌신한 교육자요 애국자이며, 3.1운동 배경에는 이승만의 영향력이 있었고, 자유민주의와 여성 참정권에 기초한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이며, 6.25 전쟁이라는 국란을 극복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북한의 남침과 적화야욕을 물리치고, 의무교육과 토지개혁과 원자력 연구의 출발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경제 강국으로 도약시킨 토대를 만들고 단군 이래 최초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더 높인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승만을 독재자이며 분단을 획책하고 멸공을 외친 친미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승만 괴뢰 정권타도’를 외친 북한의 선동에 놀아나는 좌파들의 역사 날조이며, 이승만 정권으로 인한 일부 피해자들의 한풀이라고 비난합니다. 제주 4.3 사건도 ‘우발적으로 일어난 폭동’인데 피해자들의 주장만 정당화하여 선전 선동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승만은 철저한 반일주의자이며, 미국편에 서서 단독 정부를 수립했기 때문에 지금 남한이 북한 보다 잘 살게 되었으며,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과 무관한 것이며 이기붕을 부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측근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합니다. 1959년 12월 재일 한국인 975명의 북송이 시작되자, 한국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생각한 이승만이 북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1960년 3월 15일 네 번째로 대통령 선거에 나선 것이며, 이는 민족의 장래를 위한 ‘장기 집권이지 독재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의무교육을 통해 자유와 민주와 선거의 가치를 학교에서 가르쳤기 때문에 “현실에서 부정선거가 일어나니까 (4.19가) 일어난 것이죠. 그렇게 본다면 이승만 정권은 실패만 한 정권이라고 절대 말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백범 김구는 “북한이 내려오면 그냥 남한은 끝이다. 근데 내가 왜 이승만을 도와주느냐.… 대한민국이 건국이 돼도 북한에 의해서 통일됩니다. 나는 그때를 기다리기에 이승만 박사 주도의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하는 데, 펙트 체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한 김구를 “우리 독립의 주역으로 생각하고 애국자로 생각하는 것이 잘 못”이라고 하였습니다.

‘영화인 99%가 좌파’라고 주장하는 김 감독은 2월 26일 자신의 SNS를 통해 가족의 거듭되는 액운을 막기 위해 친일파 조부의 묘를 이장하는 줄거리의 영화 <파묘>의 흥행에 대해 “또다시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며,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을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2월 28일 논평을 통해 “<건국전쟁>이 증거 하는 역사적 사실들은, 그동안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많은 왜곡과 거짓으로 엮여졌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고 했습니다. 이어 “아직도 이승만은 친일파이며, 독재자이며, 미제의 앞잡이이며, 남북 분단의 원흉이며, 부정선거를 획책했던 대통령으로, 그래서 어떤 원수보다 더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소련군이 해방군이며, 김일성의 6.25 남침은 조국 해방을 위한 성전(聖戰)이라는 거짓말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갈 사람들이 있겠는가?”라며, “선각자 이승만은 우리나라를 위하여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한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외손자 필립 안 커디씨는 <건국전쟁>에 나오는 “이승만의 역사적 평가에는 중요한 결함이 있다”며, “그(이승만)는 과연 영예로운 독립운동가인가?”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이승만이 ‘대한인동지회’를 만들어 도산에 대적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금을 횡령했다고 주장한 커디씨는 “재미한족연합회는 1940년대 초부터 한국전쟁 이후에 이르는 기간, 이승만이 어떻게 독립운동을 방해했는지 공식 리포트를 남겼다”며, 자신이 기부한 관련 문서들이 독립기념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세계일보> 2024.02.20.)

이승만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2012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 이승만의 두 얼굴>을 통해서 입니다. 수년 전 이 역사 다큐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승만은 자신을 안중근과 같은 독립투사로 보이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그는 습관처럼 손끝에다 입김을 부는 괴상한 행동까지 했는데, 하와이 한인들이 궁금해 하면, ‘내가 일본 감옥에서 고문을 당해 아직도 손끝이 시리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승만은 평생 동안 ‘일본 감옥’ 근처에도 가본 적 없다고 합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조선인 목사가 절실히 필요했는데, 이를 간파한 배제학교 졸업생 이승만은 목사가 되겠다는 서약을 하고, 선교사들의 후원으로 1905년 조지 워싱턴 대학에 특별생으로 편입되는 특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어서 미국 교단의 후원과 이승만의 요청으로 하버드 석사와 프린스턴 박사 학위를 2년 만에 한꺼번에 받은 것은 극동의 작은 나라의 목사가 되겠다는 기독 청년에 대한 예외적인 특별 대우였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그 후 목회를 하지도 않았고 목사 안수를 받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1914년 7월 14일 이승만은 한인들이 모아준 여학생 기숙사 건립기금 2,400달러로 하와이에서 부동산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이승만은 자신에게 땅을 판 프레드 베링거에게 그 땅을 담보로 1,400달러를 빌렸다고 합니다. 1년 후 베링거가 빚을 갚으라고 하자, 이승만은 자기 빚을 국민회가 갚으라고 떠넘기고, 국민회 재산인 여학교도 단돈 1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일종의 공금 횡령이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된 이승만은 외교를 통해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공채를 팔고 성금을 모으기 위해 여행을 하면서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최고급 호텔에서 잠을 잤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인 여자들에게도 접근해 마치 재벌 2세처럼 최고급 음식을 사주며 데이트를 즐겼으며, 특히 나이 마흔여섯에 자신을 숭배하는 스물두 살짜리 여대생과 주 경계를 넘어 여행을 한 것이 발각되어 1920년 6월 샌프란시스코 경찰에 의해 기소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아내가 아닌 여자와 단 둘이서 주 경계를 넘어 여행하는 것을 불륜으로 처벌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비밀 해제된 미국 CIA 문서 <이승만의 인격>에는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이 목적을 추구하며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단언하였습니다.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추구한 지도자라는 평가입니다.

임시정부가 임시대통령 이승만을 탄핵했다는 것도 <백년전쟁>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에 따르면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법기관인 ‘임시의정원’은 1925년 3월 11일 ‘이승만은 구실을 외교에 가탁해 직무지를 떠나서 5년간 원양(遠洋)의 한구석에 격재(隔在)해 난국 수습과 대업 진행에 아무런 성의도 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허무한 사실을 제조·간포(刊布)해 정부의 위신을 손상하고 민심을 분산케 했다’며, 같은 달 13일 ‘본원은 임시헌법 제22조 제14항에 의거해 임시대통령 이승만을 탄핵하고 심판에 회부하기로 결의’했고, 18일에 원안대로 가결했습니다. 후임으로 박은식 임시대통령을 선출했으니, 이승만은 박근혜 이전에 처음으로 탄핵된 대통령인 것이지요.

<건국전쟁>에서는 700만 명이 넘는 병력으로 3대 군사 강국이었던 일본에 맞서 3000명 정도의 소규모 독립군으로 무장독립 투쟁을 하는 것은 요원하므로,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이승만의 선택이 현실적이며 탁월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당시에 이미 이승만의 외교활동이 실제로는 ‘조선의 국제연맹 위임 통치 청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격분한 단재 신채호는 “차라리 나를 죽이구려! 미국에 편안히 들어앉아 위임통치나 부탁하는 이승만을 어떻게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반으로 모신단 말이오? 따지고 보면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 아니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란 말이오.”라고 비분강개했다는 것도 <백년전쟁>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내용들이 포함된 <백년전쟁- 이승만의 두 얼굴>을 방영한 시민방송(RTV)이 사자(死者) 명예훼손을 했다는 이유로 2013년 5월 박근혜 정부의 방송통신위원회는 제작 관계자에 대한 중징계를 명했고, 이에 불복한 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오랜 송사 끝에 2019년 11월 대법원은 <백년전쟁>이 “방송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유지 의무와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건국전쟁>를 단체 관람하신 교회들은 <백년전쟁- 이승만의 두 얼굴>도 단체로 시청하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역사가 황현필이 <영화 ‘건국전쟁’의 왜곡>을 역사적 사료를 통해 조목조목 비판한 8편의 동영상과 <이승만의 25가지 과오>도 꼭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백년전쟁>과 <건국전쟁> 중 어느 편이 역사적 진실에 가까울까요?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라는 찬송가 가사를 생각납니다. 한국교회는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허호익(전 대전신대 교수, 연세신학연구회 종신회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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