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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塹壕)를 바꾸어 투쟁하기를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결단을 떠올리며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4.03.06 01:36
▲ 지난 4일 감리교 총회 재판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환 목사가 들어가고 있다. ⓒ임석규

지난 3월 4일 월요일 사회로부터 차별받는 성소수자들을 환대했던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가 소속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로부터 출교가 확정되었다. 기감 총회 재판위원회는 감리회 본부 감독회의실에서 이 목사의 상소를 기각하고 기감 경기노회의 결정대로 출교를 확정한 것이다. 이동환 목사 측은 재판에서의 절차적 하자·과도한 재판비용 부과·재판 중 난무한 혐오 발언 등 문제를 제기하며 총회 재판위원회에 상소를 제기했지만, 기감 총회 재판위원회는 교리와 장정 제3조 8항(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 금지 및 처벌 조항)을 위반했다는 기존 판결을 고수했다.

판결 직후 성소수자 환대목회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공동대책위원회는 감리회본부 앞에서 ‘성소수자 환대목회 이동환 목사 항소심 판결에 따른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기감 측의 판결을 규탄했다. 이러한 교회의 재판 결과에 대하여 당사자 이동환 목사를 포함한 참석자들은 “기감 측의 판결은 재판에서 드러난 절차상 하자를 총회조차 바로잡지 못했다며, 이번 판결로 차별과 혐오의 신앙을 공식화한 것이며 이 판결은 개신교 역사의 오랜 비웃음을 살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규탄하였고 “노골적인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벌인 기감 및 한국 교회가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교회는 어디까지 혐오와 차별의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것일까? 과연 교회는 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 사랑으로 세계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는 능력을 영영 상실해 버린 것일까? 과연 한국 교회는 회복될 수 있을까? 많은 의문과 절망감이 우리 모두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처참한 심정을 느낀다. 과연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을까? 과연 한국 교회는 변할 수 있을까? 만일 변하지 않는다면, 과연 오늘 우리들의 투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당사자 이동환 목사의 심정은 어떠할까를 생각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아픔이 솟구쳐 나온다. “기감이 확정한 출교 처분에 맞서 복직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해야만 했던 이동환 목사의 아픔과 심정을 누가 감히 완전히 이해하고 알 수 있을까? 이동환 목사를 향한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총회 재판위원회의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나기까지 이 목사는 물론 그를 지지하고 대책을 논의하며 투쟁한 모든 사람에게 감사와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

▲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

이동환 목사를 향한 기감의 계속되는 억압과 탄압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32년 전 브라질의 한 가톨릭 사제에게 발생했던 사건이 머리에 떠오른다.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의 사제직 포기 사건이다. 

레오나르도 보프는 1928년 브라질에서 태어난다. 그는 1959년 박사학위를 받은 후 프랜시스 수도회에 가담한다. 그는 1984년 《교회, 카리스마와 권력》이라는 저서를 출간한 이후 그 내용으로 인하여 바티칸에 불려가서 교리수호위원회의 재판을 받게 되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당시 보프는 수 백년 전 갈릴레이가 재판받을 당시 앉았던 의자에 앉아서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 재판에서 일 년 동안 저서 ‘출간 금지와 교수 금지’라는 침묵의 징계를 받는다.

국제여론에 밀려 침묵의 징계는 오래 지속 못 하지만 교황청은 보프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점점 높여간다. 이러한 상황이 10년 가까이 계속되자 마침내 보프는 1992년 사제직을 던진다. 그리고 1992년 6월 28일 세계의 모든 친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해방 여정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동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한다.

그는 공개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 스스로 달라져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그런 처지입니다. 나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되 방법을 달리합니다. 전쟁을 그만두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참호만을 바꾸는 것입니다. 투쟁은 계속됩니다. 사제직을 버리되 교회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는 계속하여 말하였다.

“지난 20년 동안 교도직 권위와 씨름을 하면서 얻은 주관적인 경험은 이것입니다. 이 권위는 잔인하고 무자비합니다. 아무것도 잊지 않고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나는 담벼락 앞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되돌아간다는 것은 본연의 정체를 희생하고 여러 해 신명을 바쳐 온 일을 단념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무엇이나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 안에는 모든 것을 싸잡는 일이란 없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예수는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넘어서는 안 될 한계선이 있으니 인간의 권리와 존엄과 자유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과감히 사제직을 던진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그의 삶의 창문을 열고(aggiornamiento) 용감하게 자신을 던진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와 존엄과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세상으로 나간다. 참호를 바꾸지만, 그러나 전쟁을 계속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 참호를 바꾸면 어떤가, 전쟁은 계속할 수 있는데…

이동환 목사의 출교 선고 유지 소식을 들으면서, 변하지 않는 교권주의자들을 내버려 두고 오히려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것이 더 나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담벼락 같은 이들을 향하여 돈과 마음과 힘과 정열을 쏟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세상의 사람들을 향하여 우리의 눈길을 돌리면 어떨까?

공자가 낮잠 자고 있는 재아(宰我)의 모습을 보고서 말했다고 한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쌓은 토담은 손질할 수가 없다고 했으니 너 같은 사람은 아무리 꾸짖어봐야 소용이 없다.”

이미 썩어버린 나무로 조각하기 위하여 그 나무에 도끼를 대면 조각도 할 수 없을뿐더라 도끼에 썩은 나무의 썩은 냄새만 배어들게 될 뿐이다. 이제 썩은 나무는 썩도록 내버려 두고 썩지 않은 나무로 아름다운 또 다른 조각품을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이동환 목사 출교 최종판결 소식을 들으면서 보프가 떠올랐다. 참호를 바꾸자. 차라리 길을 바꾸자!!!

“아주 쓴 맛을 보고 알기 전에, 그리스도 신앙과 희망의 인간적 바닥이 내 안에서 무너지고 각 위격의 친교라는 하느님의 복음적 모습이 내 안에서 위험에 빠지는 꼴을 보게 되기 전에 나는 차라리 길을 바꾸되 방향을 돌리지는 않습니다. 내 삶을 고취하는 동기들은 그대로 존속합니다. 곧, 가난한 이들에게서 시작되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투신, 복음에 대한 열정, 이 세상의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느끼는 연민, 억눌린 이들의 해방을 위한 책임, 비판적인 사고와 극도로 비인간적인 현실 사이의 매개, 그리고 끝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밝히고 실천한 것처럼 창조계의 어느 존재에 대해서나 자상하게 돌보는 다정한 마음들입니다.”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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