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불리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그간 화석연료에 의존해 왔던 산업들의 위기와 이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의 실직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기본소득이 반드시 필요하다. ⓒGetty Images

지난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탈성장을 철학적 기조로 하고 안-줄-분-자와 ‘농’을 가장 중요한 전제로 삼는다면, 그 바탕 위에서 전환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과제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기본소득, 선거제도 개혁, 추첨제 시민의회, 연방제와 면ㆍ읍 자치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기본소득은 전세계적인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도 매우 뜨거운 이슈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매우 다양한 시각이 있다. 기본소득을 경제정책이나 복지정책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기후위기 따로, 기본소득 따로 보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지금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라면, 기본소득도 기후위기와 연관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도입할 명분도 더 존재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기본소득은 ‘전환정책’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하는 과정에서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산업들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마룻바닥(Floor)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물론 생태주의자 중에서는 기본소득이 더 많은 소비를 유도해서 생태계를 더 파괴하게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를 하는 사람도 있다. 기본소득을 경제정책으로 보고 지지하는 사람 중에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런 우려가 나오는 면도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반대의 질문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기본소득없이도 경제성장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되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경제성장주의를 통해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경제성장주의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경제성장없이는 먹고 살기 힘들 것’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는데 있다. 언론을 통해서도 이런 얘기들은 끊임없이 유포된다.

그래서 경제성장주의로부터 벗어나는 ‘탈성장’이 필요하지만,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일자리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불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이 존재하는 이상, 개발주의와 경제성장주의는 이 사회를 계속 지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전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다른 사회’,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사람들 사이에 퍼뜨릴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친환경농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농민에게 기본소득은 ‘전환을 위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관행농업을 하는 것보다 시장에서 얻는 소득은 줄어들더라도, 기본소득이 삶을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둘째, 기본소득을 잘 설계하면, 경제의 전환을 촉진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기후변화의 속도는 너무 빠르고, 기존에 도입하거나 논의된 정책으로는 실효성있는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생태부담금으로 배당을 준다’는 아이디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생태부담금-생태배당’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온실가스를 대량을 배출하는 행위 등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 제대로 된 부담을 지우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적, 환경적 비용은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들이 저질러져 온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런 행위들에 대해 정당한 비용을 부담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행위들에 대해 생태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태부담금을 매년 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통해 생산되는 제품들은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어차피 가격이 비싸다면 소비자들도 친환경적인 제품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기업들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은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물가가 오르게 되고, 서민들은 살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생활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야 가격이 오르면 소비를 줄일 수도 있지만, 생필품은 당장 구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강력한 생태부담금을 도입하려 할 때에, 큰 약점이었다. 그래서 이런 정책은 인기없는 정책, 비현실적인 정책으로 취급당하기 쉬웠다.

그러나 이렇게 걷은 돈을 재원으로 시민들에게 조건없이 생태배당금을 지급하면 어떻게 될까? 당장 시민들은 물가가 올라서 사는 게 힘들어진다는 걱정을 떨치게 될 것이다. 이런 생태부담금 징수-생태배당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을 통해서 온실가스 배출이 파격적으로 줄게 되면, 생태부담금-생태배당금도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생태부담금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런 정책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획기적으로 줄게 되면 좋은 일이다. 전환을 두려워하면 될 일이 없다. 필요한 정책은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세 번째로, ‘농’을 살리고 ‘분산’을 촉진하는 기본소득도 가능하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농민기본소득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농민’의 범주에는 농사를 주수입원으로 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농민을 돕거나 농촌에 보탬이 되는 활동을 하는 사람까지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귀향, 귀농, 귀촌을 통해 대도시 인구를 분산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형태의 농민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청년들의 귀농, 귀촌도 활발해질 것이다. 농촌이라고 해서 농사만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복지, 문화, 환경, 교육 등과 관련해서 다양한 일을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청년들은 농촌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기가 쉬워질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가장 확실한 농촌살리기 정책이고,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정책이다.

농민기본소득이 지급되어 귀농인구가 늘고 친환경농업을 하는 소농들이 늘어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일자리 정책이기도 하다. 앙드레 고르는 프랑스에서 유기농업이 활성화되면 농사를 전업적으로 해서 먹고사는 사람이 5배 늘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대한민국도 그럴 것이다.

하승수(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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