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선언서

오늘 우리는 ‘죽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석유화학 에너지에 기반한 공업 중심의 도시 문명 속에서 물질적 ‘풍요로움’과 생활의 '편리함’이라는 욕망에 사로 잡힌 채 그 종말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더 나은 풍요와 편리를 누리기 위해 '성장’과 ‘개발’ 위주의 인간 중심적, 경제 중심적 가치관으로 생명체인 지구를 죽임의 길로 내몰고 있다. 특히 WTO 체제의 등장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 세계화는 '시장(市場)'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혀놓고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도모하면서 인간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켜 민족 및 인류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이룩해온 한국의 경제성장과 오늘의 결과는 이런 현상의 세계적 상징이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으로 지구는 생태계 파괴의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으며(롬 8:22) 국지적인 기후 대변화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머지않아 전 지구적 차원의 기후 대재앙이 발생하리라는 예측은 현재의 ‘죽임의 삶의 구조’에 대한 종말적 경고이다.

오늘 이 '죽임’의 문명이 화학농약과 화학비료 중심의 관행농업 속에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음에 우리는 주목한다. 관행 농법은 생산의 증대와 노동의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땅, 농민, 작물 및 가축, 소비자 모두의 건강을 해치고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식량과 에너지는 앞으로 인류의 삶을 좌우할 결정적인 중요한 요소이다. 식량생산은 농업의 영역에 속한 일이다. 농업은 인간 생존의 근본적인 토대이다(창3:23). 그러나 한국 농업은 완전한 수입개방과 농업포기 정책으로 붕괴되고 있으며 농업 정책의 중심은 관행 농법에 두고 있다. 이제 한국농업을 지키고 생명 농업을 미래 한국 농업의 중심으로 삼는 일은 기독농민들과 도시, 농촌교회 및 여러 기독교기관들의 중차대한 사명이 되었다.

이에 생명농업운동의 현장에 있는 우리 기독인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마음과 뜻을 모아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을 창립하면서 이 운동을 전개하려고 한다. 우리의 생명농업운동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살림’의 길임을 믿는 신앙에서 비롯된다(눅 12:15). 이 길은 세계의 농업을 '죽임의 농업’으로 몰락시키고 있는 거대한 정치경제 지배체제에 대한 정의로운 투쟁이기도 하다. '생명 공동체 영성’(요 6:48)은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요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노는’ 상생의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는 바탕이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 하니라'(눅 9:62)는 말씀은 우리를 향한 준엄한 격려이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는 생명농업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뿐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고 살리는, 이 시대의 방주를 짓는 노아가 되기 위해 앞을 바라보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

2005년 11월 3일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