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사진; 김성룡

성 금요일 아침입니다. 고난주간의 막바지에 이르렀네요. 사실, 이맘때가 되면 적이 곤혹스럽고 괴로운 게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명색이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한 사람은 누구나 맞닥뜨려야 할 영적 통증이요 비명입니다. 스스럽다 못해 삶이 아주 죄스럽습니다.

왜냐고요? 화가는 살아낸 세월을 캠퍼스에 옮기고, 시인은 살아온 세월을 노래한다는데 전 그냥 엉거주춤 그 자체였거든요. 기껏, 구하고 찾고 두드린다는 일이 교회의 빈자리를 탐하고 사사로운 것들에 목숨을 담보하며 일희일비 했거든요. 가까운 것의 아픔과 필요에는 민감하면서도 세상을 읽고 세상과 소통하는 일에는 무덤덤했답니다.
 
인터넷을 통해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를 듣게 되었네요. 비릿한 슬픔과 아픔에 꼬박 밤을 지새웠지요. 불자동차 사이렌 소리보다 큰 울음덩어리가 터져 나오려 했습니다. 총 맞은 것처럼! 아, 함께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이었습니다. 20 세기 초 스위스의 신학자인 칼 바르트는 말했지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기도해야 한다.”

어떻습니까? 전 아니었어요. 여기저기서 총 맞은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청맹과니에 다름없었습니다. 찬물을 얼굴에 끼얹는 마음으로 교회당을 찾아 오래도록 한 영혼 한 영혼 붙들고 씨름했습니다. 모처럼 세상을 행해 축복의 말도 건넸습니다.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프지 않을 것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좀 치료해줘 이러다 내 가슴 다 망가져 총 맞은 것처럼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파-중략- 죽을 만큼 아프기만 해 총 맞은 것처럼.’ 신기하게도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9급 공무원보다 못한 목회사역을 반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지체들이 생활비 걱정 않고 세상일에 정신 빼기지 않도록 유형무형의 도움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뭐겠어요?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라는 당부 아니겠어요. 그런데 세월을 탓하며 상황을 들먹이며 끄떡하면 앓은 소리부터 내지질렀거든요. 꼭, 총 맞은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세상 한 켠에선 배 곪아 죽어가는 북한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의 공포로 웅크린 채 한뎃잠 자는 이라크 소년병도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생태계가 몸살을 앓고 있답니다. 뿐입니까? 88만원 세대라 일컫는 아들딸들이 죽음의 유혹에 빠져 젊음을 축지 박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시 ․ 취직 ․ 결혼이라는 절망의 트라이앵글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만 ‘총 맞은 것처럼’ 헐떡거렸습니다. 에고 남세스러운 거. 오호, 통재입니다.

전 아무래도 영혼이 바짝 야위었는가 봐요. 믿음의 주파수도 끄떡하면 윙윙거리거든요. 뭐, 기도가 단방약이거나 응급조치쯤으로 생각했지요. 아니면 변두리 인생의 악다구니 소원성취 쯤으로. 그도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 써먹는 비상수단이라 생각했었지요. 아침부터 젊은 가수의 노래가 가슴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쇠망치로 둔부를 강타당한 충격을 받았네요.

너나없이 총 맞은 것처럼 바동대거나 헐떡거리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말 한마디가 힘이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건, 시장 통이건, 출퇴근 지옥 철이건, 따뜻한 축복의 말 한마디가 지치고 곤한 이들에게는 샘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드린 기도야 오죽하겠어요.

기도의 사람 앤드루 머레이의 간증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아버지에게 빵을 구하지만 장성한 자녀는 자신의 직업과 미래에 관계된 모든 것을 아버지와 의논한다. 자녀가 연약하면 오직 자기만을 위해 기도한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자녀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이루어야 할 일들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와 의논하는 법을 안다.”

어때요?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이루어야 할 일들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와 의논하’고 계십니까? 아니, 의논은 해보셨습니까? 세상은 우리를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더군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어쭙잖은 저의 견해입니다.

원수로부터도 축복받아야 할 사람
자기 능력보다는 당신 덕분으로 살아가는 사람
칠흑의 순간에도 세상 아름답다고 믿는 사람
아픈 경험도 기어이 훈장이 되게 만든 사람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남도 생각하며 사는 사람
소금의 삶 살아감으로 결국은 빛이 되는 사람
살아가면서 한 뼘이라도 천국을 넓혀가는 사람
존재함으로 한 사람이라도 영향 받게 하는 사람
웃음과 유머로 주위를 말갛게 씻긴 사람
착한 삶 보여줌으로 당신을 찬양하게 하는 사람
내일을 위해 오늘부터 씨 뿌리는 사람
걸림돌도 디딤돌로 만들어 자잘한 간증 남긴 사람

찾고 구하고 두리번거리나 몇 사람밖에 없다
아니다, 그 첫 번째는 내 몫이다.

  -그리스도인 ․ 1- 미발표

아무래도! 지금 할 수 있는 건 보좌 가운데 계신 죽임 당하신 어린 양께서 여기 이 땅의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기도하는 일일 것입니다. 여느 때보다 찬송은 절절하고 기도가 한층 뜨거워진 성 금요일입니다. 교회 뒤편에 자리한 대학교정을 거닐며 세상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축복의 말도 건넸습니다. ‘세상을 옥죄는 거대한 힘을 깨부수는 무기는 희망이랍니다.’ 나의 무능을 고백하면 하늘의 능력이 덮친다고 하네요. 바로, 십자가의 능력 아니겠어요?

윤영배 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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