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 - 네 복음서의 다른 점

본문과 병행하는 구절(마태 26:6-13; 요한 12:1-8; 누가 7:36-50)은 네 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 마태는 마가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지만, 요한은 조금, 누가는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마가와 마태와 요한은 이 사건을 지배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상황에서 예수님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누가는 죄 많은 한 여인의 감사의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의 사건은 다른 복음서의 사건과 다른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가와 마태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는데, 누가는 죄 많은 여인이라 하고 요한은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라고 합니다. 마가와 마태는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이 베다니에 있는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고 하지만, 누가는 어떤 바리새파 사람 시몬의 집이라 하고, 요한은 나사로의 집이라고 합니다. 마가와 마태는 이 사건이 유월절 이틀 전에 있었다고 하고, 요한은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에 유월절 엿새 전이라고 하는데, 누가는 예수님의 활동 초기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합니다.

여인의 행위를 비난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가는 몇몇 사람, 마태는 제자들, 요한은 가룟 유다, 누가는 바리새인이라고 합니다. 비난한 이유에 대해서도 마가와 마태와 요한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누가는 죄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예수에 대하여 비난합니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마가와 마태는 여인이 기름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하는데, 요한과 누가는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는 기독교의 교리와 성서해석에 대한 교조적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복음서의 이야기를 하나로 뭉뚱그려서 죄 많은 여인이 마리아이고, 그녀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이면서, 예수님의 아내가 된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기도 합니다(4세기 교부들). 성서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하고, 성서의 말씀을 잘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성서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합이나 혼동은 유다복음서나 마리아 복음서, 특히 다빈치코드를 비롯한 예수님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영화에서 주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막연하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삼가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각 복음서마다의 의미를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 - 어떻게 기억되고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부분에서는 비슷합니다. 이 사건이 식사 중에 일어났고, 여인이 예수에게 기름을 부었고, 누군가가 그 여인의 행위나 예수님의 의중을 비난했고,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비난했던 내용을 따르면 여인의 행위는 노동자 1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값비싼 향유를 낭비하는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행위를 두둔하면서 그 여자와 그녀의 행위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기억될 것이라고 극찬을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행위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억되기는 하는데,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특히 여신도주일이나 여신도 헌신예배 때에 성서본문으로 단골이 되어 있습니다. “값 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 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께 바치리.”(346장)라는 찬송가는 누가복음의 이미지와 조금 비슷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틀린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의 것을 아낌없이 바치고 온 정성을 다해서 헌신하라고 강조할 때에 주로 사용되는 본문과 찬송입니다. 이 여인의 행위가 돈보다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보여주었고, 이는 구원과 은혜에 대한 감사의 당연한 행위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가장 귀한 것을 분에 넘치도록 바치는 신앙의 모범이 된 여인의 행위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목사를 섬기고 헌신하라고 합니다.

이 여인의 행위를 헌신의 차원에서 해석할 때에 그 여인이 어떤 상황에서 향유를 부었는지를 생략함으로써 무엇을 위한 헌신인지 모호하게 됩니다. 무엇인가 뜻 있는 일을 위해서 모금(헌금)을 하고 헌신하는 것은 공동체의 유지와 선교활동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무엇인지는 신중하게 살펴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또한 향유를 붓는 일이 당시에 귀한 손님에게 예의를 갖추는 행위였다고 해서 헌신과 봉사가 여성들의 몫으로만 강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여성이라는 것도 그러한 오해의 한 몫일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에서 이 여인은 죄 많은 여인이라고 했는데, 그녀를 막달라 마리아나 간음하다 끌려온 여인과 일치시킴으로써 여성들의 죄의식을 한껏 부풀리기도 합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 네 복음서의 의미 - 메시아 즉위식

복음서마다 조금씩 혹은 많이 다르고, 역사적으로 이야기를 뒤섞어서 잘못 해석하여 왔습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또한 마가복음에서 이 이야기는 헌신을 넘어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시 지배자들에게 죄인으로 취급되었던 사람들이 의인으로 높여지던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제사장들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면서 ‘소위’ 죄인들에게 하느님의 죄용서와 구원과 평화를 선포합니다. 참회의 눈물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은 감사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는 ‘소위’ 죄 많은 여인은 바리새파 사람보다 더 의롭고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이 여인의 행동과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지배자들은 힘없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붙이고 그들의 행동을 불법이라고 하지만, 자기들이야말로 더한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현실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법과 예의와 체면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들을 무시하고, 불법을 부추기며 조장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남한에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될 사람의 우선적인 조건은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헌법재판소는 정권의 시녀가 되어 말장난 하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향유로 씻는 행동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 행동을 먼저 행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활동을 그대로 본받고 따라함으로써 예수님과 하나가 된 참 제자입니다. 육체를 죄악시 하고 육체노동을 노예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영지주의에 반대하여 스스로 낮아져서 섬김을 행하는 참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섬김은 섬김을 받는 사람보다 내가 잘 나서도 아니고, 내가 남는 힘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행위로서 베풂, 나눔, 섬김을 이야기합니다. 모두가 좋은 행동의 모범이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베풂은 내가 우월하거나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면서 시혜적 차원의 일이고, 나눔은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돕는 일입니다. 그러나 섬김은 내가 스스로 종이 되어 기꺼이 나를 희생하고 포기하는 일입니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행동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지금 예수님이 걸어가려고 하는 그 길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왕이나 제사장을 임명할 때에 기름을 붓습니다(삼상 16:13; 시편 89:20). 그리스도나 메시아의 뜻이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한 여인의 행동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위임받는 즉위의식(coronation)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본문의 분위기를 상상하여 그려보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인정하는 즉위식의 장면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사건의 이야기는 다윗적 메시아 사상을 반박하면서 뒤틀고 있습니다. “성전이 아닌 예루살렘 성전과 마주 한 올리브산 베다니의 집에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 집권층의 권력 승계와는 무관한 소외 계층인 문둥병자의 집에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 대제사장이 아닌 당시 사회에서 주변화된 여인이 기름 붓습니다. / 기름부음을 통해서 특권이나 지배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례가 준비됩니다.”<켈버>

이 네 가지의 대조 속에서 예수님은 철저하게 낮아지고 수난 당하는 메시아입니다. 이름 없는 한 여인은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 지지합니다. 남성 제자들, 특히 그들의 대표자 격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조용히 불러 꾸짖으면서 항변하기까지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높은 자리에 앉겠다고 서로 분노하면 싸우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버리고 도망가고, 부인하는 상황에서 이 여인의 행동은 예수님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 길이 비록 죽음의 길일지라도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합시다. 이름 없는 한 여인과 그녀의 행동을

이 사건의 주인공은 이름 없는 한 여인입니다. 여기에서 이름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복음서에서 연약하고 소외받던 여인이나 아이들의 이름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에서 굳이 그녀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또한 어떤 일을 하면서 꼭 자기의 이름을 알리려고 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어떤 행사에 가면 내빈이나 참석한 사람들을 소개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물론 함께 연대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소심함 때문인지 저는 그러한 시간이 부담스럽고 썩 내키지 않습니다. 안병무 추모강연회 때에 황성규 목사님이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귀한 주체이기 때문에 따로 소개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서로를 위해 박수를 쳤습니다.

여러 단체가 연대하여 어떤 행사를 준비할 때에 각 단체와 관련된 사람들을 적당히 조정해서 순서에 넣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논의합니다. 참여 단체별로 구색 맞추기를 하면서 이름을 넣습니다. 예전에 한 단체의 집회에 참석했는데 그 순서지를 보고 실망했습니다. 한 꼭지를 여러 명이 나누어서 하고, 같은 순서를 이름 날리는 사람들이 반복해서 하는 것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꼭 그렇게 순서를 맡고 이름들을 넣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그 뒤로는 그런 행사나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피하게 됩니다.

이름 없는 한 여인의 행동은 몇몇 사람들이나 제자들의 비난과 대조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가룟 유다가 가난한 사람을 핑계로 그 여인의 행동을 비난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팔아넘기려는 유다와 이름 없는 여인은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님의 남성 제자들이 예수님의 길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극구 만류하던 상황에서 이 여인의 행동은 수난당하는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예언자의 일이었습니다. 세 번에 걸쳐서 수난을 예고한 그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임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선포한 사람은 바로 이 이름 없는 여인입니다.

공동체를 위하여 이름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헌신하며 섬기는 교우들께 감사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자기의 길에서 애쓰는 교우들께 감사합니다. 장로나 목사 임직식에서 자주 부르는 찬송이 “부름받아 나선 이 몸”(355장)입니다. 그 가사 중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는 구절이 있는데, 임직을 하고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이름을 내고 조명을 받고 중심이 되어 영광을 받으려는 마음(욕심)이 스멀스멀 일어납니다. 그러한 마음을 애써 누르지 않으면 안 되는 저의 모습을 고백합니다.

이름 없는 한 여인의 행동이지만, 예수님은 이 일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기억될 것임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예수님을 위하여 바치는 이 여인의 헌신은 값 비싼 향유를 부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손님 접대를 위하여 기름을 부은 것도 아닙니다. 헌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하여 헌신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여인의 헌신은 예수님이 걸어갈 길을 잘 알고 그 길을 열어준 사실에 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죽음을 원하지도 않았고 준비하지도 못할 때에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고 장례를 위하여 행한 아름다운 일입니다.

기억합시다. 이름 없는 한 여인과 그 여인의 행동을!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여인의 행동은 “아름다운(좋은) 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내(예수님의) 장례준비를 위하여 할 일”입니다.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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