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김경재] 장공의 부활체와 사후생 이해 (4)
김경재 고문 | 승인 2011.06.16 09:26

지난 5월15일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사후세계부정'발언과 관련하여 장공 김재준 선생이 이해한 사후생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는 취지로 연재중입니다. 덧붙여 이 글은 본지 고문위원인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제 24회 장공사상연구 목요강좌에서 발표했던 원고임을 밝힙니다.

부활사건의 가능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

2) 예수님의 부활체(復活體)는 형체변화된(transformed, transfigurated) 몸, 영적으로 승화된 몸

장공은 대체로 그의 생애에서 보면 이른시기(1935),『낙수(落穗)』에 실린 논문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연구”에서 예수의 부활체에 관한 상세한 지론을 펼쳤다. 그리고, 그 이후 50년의 세월이 지난 85세 무렵에도 예수의 부활체에 관한 그의 이해엔 변함이 없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면 그 부활의 몸은 대체 어떤 성질의 것이었는가라는 만인의 궁금증과 질문에 대하여 장공은 사도 바울의 영체에 관련된 설명(고전15:42~44)을 근거로 삼으면서 응답하였다. (1)그리스도의 부활체는 이전의 몸과 그 동일성을 가지면서도 그와 동시에 마치 산상변화에서의 변화된 때와 같이 영광 영화된 몸이었다. (2)영체라는 것도 몸인 이상 필연적으로 형체를 갖추었을 것이지만 ‘살과 피’의 생리적 존재는 아니다. (3)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가 몸으로 드린 속죄제를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응답이요 최종확증이다. (4)그리스도의 부활은 일반신자의 부활에 대한 전제임과 동시에 그 원동력이다.

그러면 생리적 존재이었던 혈육을 가진 몸이 어떻게 그 동일성을 잃지 않고 영체(靈體)로 화(化)하는가 하는 것은, 다른 모든 생명의 움직임과 창조가 신비임과 동양(同樣)으로 신비불가해(神秘不可解)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에 속한 행사요 인간의 알 바가 아니요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그러면 그의 육체적 존재를 하나도 잃지 않는 동시에, 그의 영적생명을 표현함에 가장 적응된 표현기관(表現機關)인 몸 즉 영화 영원화(靈化 永遠化)한 몸 이었던 것이다. 철(鐵)이 그 동일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내외(內外)가 아울러 변하여 영광과 열을 발함에도 비할 것인가?

위에 인용한 글 내용은 장공의 일생동안 변하지 않는 그의 부활체 이해의 근본신념이 되었다. 장공의 연령이 오십대 중반이 되었을 때(1954), 장공은 예수의 산상변모설화(눅9:18~36)를 텍스트로 한 설교형 신학논문에서 변모설화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1)예수의 산상변화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원래의 모습이란 것을 생각할 때, 신비라기보다는 현실이요, 변화라기보다는 원형(原形)의 드러남이다. (2)그리스도는 인간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신 것이고, 부활하신 몸으로 그 처음 익은 열매를 보여주신 것이다. (3)시공을 초월한 원형(proto type) 안에서 역시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의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만난 것 같이,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난다. 유대교 관계의 인물들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는 살아 있다. (4)그리스도 안에서 구약과 신약, 제사전통과 예언자전통이 만나 통전 완성되고, 십자가와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 하나로 된다. (5)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모든 만민은 ‘그의 말을 들으라“라는 하늘의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영과 몸이라는 두 개념은 상호 상충되는 대립개념이거나 모순개념으로서 모든 인간학은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인간존재는 몸이라는 육체적 요소를 지닌 존재이면서 자기초월적이며 영적존재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래서 인류사에 나타난 두 개념의 갈등해결방법에 세 가지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첫째는 헬라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전통에 기초하고 근대 데카르트의 인간학에 이르기까지 관철되는 가장 오래된 견해로서 ‘영육이원론’이다. 그러나, 영육이원론은 영과 육, 물질적 실체와 정신적 실체의 상호관계성을 해명하지 못한다. 둘째 해결방법으로서 나타난 것은 물질주의적 환원론이다. 모든 정신현상, 영적 현상은 결국 물질의 변화형태이며, 물질법칙으로 설명되고 물질에로 환원된다고 보는 유물론적 입장이다. 셋째 해결방법은 관념론적 철학이다. 궁극적인 실재는 정신적인 것, 관념적인 것으로서 순수의식이며 물질은 그것의 외화이거나 굳어진 응결물이다.

장공은 구약을 전공한 구약학자로서 히브리적 사유체계 안에서 이상의 세 가지 입장을 모두 부정하고 영과 육의 모순충돌을 ‘하나님의 창조적 권능’을 믿는 신앙 안에서 해결한다. 히브리적 사유 안에서는, 바르트의 설명대로, 인간은 ‘육체화된 영혼’(leibhafte selle, embodied soul)이면서 동시에 ‘영혼화된 육체’(beseelter Leib, besouled body)이다. 20세기 대표적 가톨릭 신학자인 칼 라너도 “육신으로부터 분리된 영혼은 실존할 수 없으며, 죽음 속에서도 세계와 관련된 형태를 지닌 새로운 육신성이 영혼에게 부여된다고 보았다.”

‘영혼불멸’ 사상은 그리스의 이원론적 철학에서 나온 것이어서 히브리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바울도 다소 이원론에 감염된 데가 있으나, 그가 ‘몸’, ‘부활의 몸’을 유난히 강조한 것으로 해서 가리어지고 있다고 하겠다. 어쨌든, 히브리 사상에서는 ‘몸’ 없는 영혼만의 삶이라는 데 대하여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몸’이 곧 삶의 거점(strategic point)이요, 삶의 표현기관이요, 따라서 삶의 ‘실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이라는 것은 ‘몸’으로서의 부활이다. 그러나, 그 몸이 반드시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생리적 실체와 꼭 같은 몸이라는 말은 아니다.…그 ‘몸’은 승화(sublimate)된 몸이다. 부활한 예수의 몸과 같이 자유로운 몸이다. 그 유지를 위해서 물질적 영양소를 보급할 필요도 없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자유로운 표현으로 사람들과 소통(communicate)할 수가 있다. 바울이 말한 ‘영의 몸’(spiritual body)이다. ‘영’이란 것과 ‘몸’이란 것과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라지만 그 연합이 가능한데에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난다. 이것은 영광의 몸이다. 인간은 본래 ‘몸’으로 창조되어, 몸으로 살다가, 이런 더 높은 차원의 몸으로 승화되어 영원히 산다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본래적 모습이었다고 본다.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장공의 ‘부활체’ 이해는 히브리적 사유체계를 따라서 ‘몸’의 중요성을 강조하되, ‘혈육적 몸, 생리적 몸’의 소생으로서가 아니라 질적으로 변화되고 승화된 ‘영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그 변화와 승화는 철저히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은총의 선물이요, 창조적 권능에 기인하여 영과 몸의 갈등이 종합 지양된 영체, 이성으로서 해명 불가능한 신비한 사건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존론적 신학이 강조하는바 처럼,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내면에서 볼 때, 그 십자가 사건 자체가 죽음의 권세 및 죽임의 세력들을 영원히 정복한 생명승리의 사건, 진리와 진실이 승리한 사건이다. 진리와 생명의 힘의 승리가 십자가 사건에서 ‘거리낌과 어리석음과 수치’의 형태로 그 의미가 감추어져 있지만, 믿음의 눈으로 볼 땐 십자가 사건자체가 승리한 영광이라는 것을 장공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활’은 십자가가 죽음의 권세에 의해 죽임당할 수 없는 생명승리의 사건임을 하나님이 입증해 주신 것으로 본다.
결국, 예수의 십자가 생명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요11:25)는 증언이 교리적 명제가 아니라, 현실적 사실이라고 강조한다.(계속)

김경재 고문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