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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짜리 전등이 켜는 희망라오스 태양광발전기 지원활동 이야기 (8)
이영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1.06.21 11:16

 

‘라오스 스모그’

라오스에서 나는 ‘다른’ 천식으로 잠깐씩 고생을 좀 했다. 나의 천식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부터 늘 그랬고 서른이 넘어서야 병인 줄 알 정도였으니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처음 라오스에 갈 때는 적이 걱정이 되었다. 인구는 물론 저질연료를 쓸 수밖에 없는 차량들이 집중되어 있는데다 완벽한 고산의 분지인 카트만두를, 서울 못지않은 초고층 빌딩과 쓰레기로 열에 들떠 있던 마닐라를, 제어되지 않는 개발로 엉망이 되어버린 개도국 도시들의 대기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오스의 수도 위양짠은 전혀 달랐다. 몇 해 전 아세안(ASEAN) 개최를 위해 말레시아 자본이 지은 라오스 최고층 던짠팰리스 호텔을 비롯해 고층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위양짠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중심도로가 일본의 원조로 흙길을 면한 것도 불과 몇 해 전.

   
▲ 라오스 수도 위양짠의 한 가운데 위치한 탇루앙. ⓒ 사진제공: 이영란
탇루앙(황금탑, 우리 남대문과 같은 라오스의 국보)과 빠뚜싸이(승리문, 우리의 독립문이나 프랑스의 개선문 격), 허캄(매컹 강변에 위치한 상징적인 대통령궁)을 잇는 남북 중심도로도 2000년대 초반까지 흙길이긴 마찬가지였단다. 그 수도의 신작로를 오가는 것들도 번듯한 세단보단 저녁 무렵에야 북적이게 되는 오토바이가 더 많았고. 라오스는 보통의 천식을 악화시키는 일반적인 스모그는 아예 없는 나라다.

   
▲ 빠뚜싸이 아치의 천장 부조. ⓒ 사진제공: 이영란
그런 라오스에서의 천식은 당연히 ‘다른’ 스모그 때문이었다. 해마다 3월이면 라오스 산간 지역은 연기와 재로 휩싸인다. 건기의 막바지에 화전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2010년 싸이냐부리 지역엔 가옥이 불타고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길까지 화염이 덮쳤다. 며칠 밤씩 놓는 불이어도 라오스는 풍부한 수목 덕분에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번질 염려 없이 화전은 평화로이 이루어져왔다.

그런데 이제 이런 통제할 수 없는 화전이 늘고 있다. 아무리 건기라지만 어머니 강 매컹(Mekong)까지 마르는 가하면 반대로 우기엔 비가 오지 않아 폭염 속에 며칠씩 단수가 되는 난리가 늘고 있는 것이다.

   
▲ 잿빛의 건기에 만들어진 화전이 우기에 들어서 온통 초록으로 찬란하다. ⓒ 사진제공: 이영란
   
▲ 2011년 1월 건기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 싸이냐부리와 루앙파방 도계를 따라 흐르는 매컹(Mekong) 풍경. ⓒ 사진제공: 이영란

산골학교를 지켜줄 태양광발전기

2010년 3월 라오스 건기의 절정, 역시 대기는 찌르듯 쏟아지는 햇빛보다 뿌옇게 번지는 화전 연기로 더 뜨거웠다. 처음 찾았을 때 보다 그간 길이 좋아졌으니 이젠 두 시간이 채 안 걸릴 거라던 읍내사람들의 예측은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세 시간을 넘기며 빗나갔다. 목적지 반싸멛은 새로 생긴 싸이싸탄군(郡, 원래 싸이냐부리군에 관할이었던 이 지역을 2010년 1월 분리시켰다)내에서 가장 읍내(싸이냐부리 도청소재지)와 가까운 마을로 어림잡아 봐도 2백여 호는 모여살고 있는 이 고산의 마을들 가운데서는 꽤 큰 중심지였다. 그래서 중학교가 있는 것이고.

   
▲ 반싸멛에 있는 초등학교 교실 내부. ⓒ 사진제공: 이영란
1970년대 미국의 융단폭격(라오스에 투하된 포탄의 양이 한 명당 1톤에 이르렀으며 여전히 제거하지 못한 불발탄과 지뢰가 많아 위험한 지역이 있다)으로 초토화된 이후 라오스에는 유난히 어린 인구가 많다. 1년 만에 다시 온 여기 학교에도 판자로나마 덧대어 지은 교실이 하나, 대나무와 갈대로 엮은 기숙사도 한 채가 늘었다. 라오스는 어디나 산골학교도 예외 없이, 들어오는 학생이 늘고 그만큼 기숙사에서 지내야 하는 중학생도 늘고 있다.

   
▲ 여름방학에도 읍내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태양광발전기 설비를 관리하고 있는 선생님(노란 옷)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필자(빨간 두건) ⓒ 사진제공: 이영란
새로 군교육청이 들어서는 문제로 차로 2시간이 걸리는 옆 마을로 회의 가신 교장선생님을 대신해 나를 안내해 준 캄파이 선생님은 가을이 오기 전에 (라오스는 9월에 개학해 5월에 학년을 마친다) 또 한 채를 더 지어야 한다고 했다. 
 
   
▲ 활짝 웃어 보이는 어린이문화센터의 학생들. 읍내에는 정규 학교는 물론 어린이를 위한 제도가 제법 갖춰져 있기도 하다. ⓒ 사진제공: 이영란
만일 여기 중학교가 없다면 읍내 소수민족학교로 가야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일 년에 한 번, 방학에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1박2일을 걸어서 가더라도 읍내로 떠날 수 있는 학생은 그나마 돈도 마음도 부자인 부모를 가져야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게 산골학교를 지켜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된다. 어린 학생들이 멀리 읍내나 도시로 나가 가족과 떨어져 살지 않도록, 더욱 아예 배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굳이 화폐가 없이도 집을 짓고 살고 끼니를 이어 살 수 있는 평화로운 라오스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 바로 이것이 산골학교에서도 짧은 두어 시간이나마 태양광발전기로 불을 켜고 재생에너지에 대해 지구전체를 배려하는 생각에 대해 알아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큰 이유였다.
   
▲ 두메산골 반싸멛 들어가는 길에 있는 작은 마을들. ⓒ 사진제공: 이영란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돕는 이들
 
이 산골학교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준 곳은 많았다. '에너지정치센터'는 라오스 이야기를 듣고 에너지자립이 절실한 산골학교에는 재생에너지 체제가 필수적일 것을 것임을 짚어냈고, '아름다운재단'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지원금을, 지하철노조는 신문광고를, 여성주의 저널 '일다'는 인터넷 모금을 도왔다. 태양광발전기 설치와 교육 관련한 모든 직접비용 외에 현지조사와 결과확인을 위해 내가 라오스를 오가는 비용까지 첫 번째 태양광발전기 약속은 이렇게 십시일반으로 지켜질 수 있었다.
   
▲ 산골학교 태양광발전기 지원활동을 위한 주한라오스 대사님의 추천서. ⓒ 사진제공: 이영란

라오스 현지에서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맡은 곳은 재생에너지 회사 썬라봅(Sunlabob, 태양에 시스템이라는 뜻의 라오스어 ‘라봅’을 붙인 작명이 안성맞춤이다)이다. 썬라봅은 우리 사업의 취지에 적극 공감해 7개 교실에는 하루 2시간씩, 세 채의 기숙사에는 하루 4시간씩 불을 켤 수 있도록 태양광발전기와 전선, 전구 등 시스템 전체를 설치하는 비용을 6000달러 수준으로 깎아줘 우리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썬라봅은 느긋한 라오스에서 하는 일답지 않게 내가 도착하는 날까지 마치기로 한 기한보다 앞서서, 태양광발전기 설치하고 유지관리를 위한 교육훈련까지 야무지게 끝내 더욱 믿음을 주었다. 
 

   
▲ 산골학교에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도운 라오스 재생에너지 회사 썬라봅. ⓒ 사진제공: 이영란
송전선으로 오는 보통의 전력은 아니지만 관리책임을 맡게 되는 싸이냐부리 도(道) 광산에너지국과 라오스전력공사 관계자도 나보다 먼저 학교를 방문해 태양광발전기 설치상태 점검을 마치는 기민함을 보였다. 지난 1월 설치 1년 후 사용상태 점검을 위해 방문했을 때는 멀리 수도에서 오는 썬라봅보다 싸이냐부리 광산에너지국 자체가 일을 하게 되면 비용이 덜 들지 않겠냐며 태양광발전기 지원활동에 직접 참여하고자하는 의욕도 보였다. 학교자체의 태양광발전기의 유지․관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물론 지역 주민들의 소득과 기술습득을 위해서라도 중요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제안인 것 같았다.
   
▲ 라오스 싸이냐부리도(道) 에너지광산국 국장과 재생에너지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 사진제공: 이영란
   
▲ 에너지정치센터의 지원으로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한 것을 기념하는 간판. ⓒ 사진제공: 이영란

 
태양광발전기 설치 기념간판이 선 학교 입구 언덕을 오르니 여전히 까만 얼굴로 해맑게 웃는 학생들이 먼저 보였다. 교무실에서 뛰어나온 선생님들은 반갑다는 인사보다 고맙다는 인사로 연신 두 손을 모았다. 캄파이 선생님은 교실 건물마다 기숙사 방마다 나를 안내해 설치된 태양광발전기 집광판과 전구들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 두 손을 모아 인사하는 라오스 학생들. ⓒ 사진제공: 이영란
두 군데 산골학교에 더한 약속

선생님과 학생들은 설치와 동시에 썬라봅 기술자로부터 태양광발전기 관리와 수리를 위한 교육을 받았다. 1년 보증기간 안에라도 꼬박 1박2일이 걸리는 수도에 있는 썬라봅으로부터 수리할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자체로 고치는 게 훨씬 빠를뿐더러, 무엇보다 태양광발전기는 외부의 지원에 의지하지 않는 지속적인 에너지 ‘자립’이 기본목적이니 말이다.

내가 일부러 물었다. 아까 둘러본 올 가을에 새로 지어야하는 기숙사에 썬라봅 기술자 없이 전등을 가설 할 수 있겠냐고. 이미 칭찬을 받는 학생 같은 표정으로 선생님이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열심히 배웠고 지금 이것도 기술자를 도와 우리가 직접 설치한 겁니다.”        
  
처음 이곳을 찾을 때부터 도움을 주었던 싸이냐부리 교육청은 이번에도 험한 길을 갈 수 있는 사륜구동 차량과 그 두메에서 잠자고 먹을 곳까지 마련해 주었다. 라오스의 도움은 그저 한 번의 도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 앞에 선 태양광발전기가 이 기숙사 옆으로 지어질 새 기숙사로도 연결되게 된다. ⓒ 사진제공: 이영란
   
▲ 라오스 읍내와 두메산골을 오가는 차량 내부 모습. ⓒ 사진제공: 이영란

 이번 일정을 동행한 교육청 캄씽 선생님은 반싸멛 말고 그 사이 이 지역에 새로 생긴 중학교 두 곳을 더 보여주었다. 반싸멛에서도 각각 두 시간씩을 더 들어 가야 하는 두메에, 이미 해는 기울어 멀리 화전을 일구는 산불만 환한 깊은 산골에서 대나무 기둥에 풀잎으로 지붕을 얻은 새로운 학교들을 만났다.

반싸멛의 학교보다 더한 산골, 열악한 조건임에도 내년이면 더 늘어날 학생들을 위해 또 역시 풀잎을 지어 올릴 교실과 기숙사를 걱정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밤보다 더 어두운 교무실 겸 교사 기숙사에 모여 있었다.

한 참을 늦어버린 첫 번째 약속을 이제 가까스로 지켰는가 싶은데 다시 기약하지 못할 새로운 약속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번엔 눈물대신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 나을 것이라는 바람을 손으로 꼭 잡았다. (끝)

   
▲ 건강과 행운의 바람을 담아 필자의 손목에 무명실을 묶어주고 있는 학생들. ⓒ 사진제공: 이영란

이영란 님은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행정학과)에 있으면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서 2년 동안 라오스 북서부 싸이냐부리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이영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forveg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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