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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는 서양에만 있었을까?『남자, 남자를 사랑하다』
이정훈 기자 | 승인 2013.04.30 00:27

성적소수자에 대한 연구나 담론은 서구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서양 역사의 시대구분론에서 고전고대에 해당하는 그리스·로마 시기의 성년 남성과 소년 사이의 동성애를 가리켰던 파이데라스티아(paiderastia)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단순한 상호간의 육체적 성관계를 넘어서 훈육적 관계까지 포함하는 사회 관습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동성애에 관한 고대의 인식은 이후 시기와는 확연히 다르게, 포용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성애가 서양에서만 고대부터 존재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분명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문헌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부터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

한비자(韓非子)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있었는데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어머니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밤에 몰래 임금의 수레를 훔쳐 타고 나갔다. 당시 왕의 허가 없이 왕의 수레를 타면 두 다리가 잘리는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오히려 효성이 지극하다며 상을 내렸다. 또 하루는 미자하가 복숭아를 먹다가 맛이 너무 좋다며 반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기뻐하며 “그 맛있는 것을 다 먹지도 않고 과인에게 주다니, 진정 너의 사랑을 알겠도다.”라고 말했다. (「세난편」[說難篇])

이보다 확실한 기록은 전한(前漢) 시대를 다룬 정사(正史)인 한서(漢書)에 이런 관계를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동현(董賢)은 황제에게 총애를 받아 황제의 수레에 함께 오르고 좌우에 있었다. (중략) 항상 황상(皇上)과 함께 잠이 들고 일어났다. 일찍이 황제와 낮잠에 들었다가 황제의 옷소매를 베고 잤다. 황제가 일어나려 하였는데 동현이 깨지 않았는데, 동현을 움직이게 하기 싫어한 황제는 [자기 옷의] 소매를 잘라내고 일어났다. (「동현열전」[董賢列傳])

이상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중국 고대에 있어서 동성애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서도 신라 혜공왕과 고려 공민왕의 사례가 있다. 다만 이러한 사례들이 가지는 문제점은 (1) 유교적 가치관에 반하는, 군주로서 모범이 되지 못하는 행동으로서 황제를 비판하기 위해 정사에 기술되었다는 것과 (2) 높은 신분의 이들로 한정된 특수한 경우로서 일반 백성 즉 민간의 동성애 풍조를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료(史料)의 부족과 관련 내용이 없는 관계로 중국 고대의 동성애 풍조에 대해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동성애의 존재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이렇듯 연구가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 저작이 나왔기에 지면을 빌려 소개할 기회를 가져볼까 한다. 『남자, 남자를 사랑하다』(우춘춘 지음, 이월영 옮김[서울: 학고재, 2009], 이하 ‘본서’로 부른다)라는 이 책은 근대 이전 전통시대 중국의 동성애에 관한 유일한 전문적 단행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중국 동성애의 역사에 대해서 기술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본서의 원서인 明淸社會性愛風氣(北京: 人民文學出版社, 2001)는 전체적으로 이성애와 동성애를 모두 다루고 있지만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비중이 다른 저서들에 비해 현저히 높으며, 이 책을 번역한 본서는 동성애를 전문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1장, 4장, 6장을 편역 하였기에 하나의 전저(專著)라고 부를만하다. 중국 역사의 시대구분론에서 근세(近世)에 해당하는 명청(明淸) 시대만을 다루고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는 앞서 지적하였듯이 사료의 부족으로 인한 연구의 제약으로 인한 것이므로 본서의 성과는 중요한 것 같다.

사실 본서가 중국 동성애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인 저자에 의해서 쓰였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오늘날의 중국이 개혁개방을 거쳐서 어느 정도의 자유를 회복하였다고는 하지만 논저에 있어서 당국의 검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며, 중국 역사학계의 저변이 다양한 분야로 넓어졌다지만 일상생활사·문화사·여성사 등 미시사 분야에 있어서 주목받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저자인 우춘춘 선생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최종 학위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취득하였고, 현재도 그곳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의 일독할만한 논저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본다.

본서는 서론을 제외하고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 명나라 말기 남색의 유행”, “제2장 명나라 중기·말기의 동성애 문학”, “제3장 청나라 선비들의 남성 동성애 풍조,” “제4장 남색의 상품화: 소년배우 상공들의 세계”, “제5장 명청 사회의 이장벽 풍조”와 같다. 이러한 장절 구성을 통해, 본서는 명나라 중엽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4백여 년에 걸친 시기 동안의 남성 사회를 풍미했던 동성애 풍조를 풍부한 자료 제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중국 고대에 있어서는 앞서 지적한대로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지만, 본서가 다루고 있는 명청시대에는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동성애 풍조가 사회 상층의 황궁에서부터 하부의 민간에까지 존재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 중국 명청시대 남자 동성애를 다룬 『남자, 남자를 사랑하다』

일반적으로 전통시대의 중국은 한나라 이후 유학의 국교화(國敎化) 내지는 관학화(官學化)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풍조는 송대(宋代) 신유학(新儒學)의 등장 이후 더욱 엄격해져서 명청시대에 절정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학풍, 사회분위기 속에서 여성에 대한 정절은 당연시되지만 동성애 풍조는 비난받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고대 춘추전국시대부터 황제들에 의해 궁중에서 이루어진 남총(男寵) 현상이 지속되어오다, 명나라 중엽 이후의 방종한 풍조에 따라 성행하였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 중국에서 동성애의 유래가 오래되었고, 최상류층이자 권력의 중심이었던 황제도 동성애에 젖어있었기에 이런 풍조가 위에서부터 점차 아래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성애 풍조는 사대부 남성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냈고, 색다른 성적 유희였을 것이다.

이런 풍조의 주체는 사대부 혹은 부유층의 남성이었고 동성애를 ‘즐겼다.’ 반면 이들을 상대했던 나이 어린 미소년 혹은 연극의 남배우들은 생존을 위해 동성애를 ‘하였다.’ 동성 커플을 이루어 연애 관계를 가지며 서로 연모하였던 사이도 있었지만, 부유한 남성과 빈곤한 미소년/나이가 많은 남성과 나이가 어린 미소년/고귀한 남성과 미천한 미소년 등 주종적인 관계가 압도적이었던 사실도 눈에 띈다. 또한 이러한 미소년들은 미색 혹은 성적 매력을 상실하면 버려지기 일쑤였고, 이후의 이들은 비참한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추녀의 지아비가 되느니 미남의 첩이 되리라.” “미녀를 경시하고 미남을 중시한다.” “아름다운 가동(歌童)은 있어도 명기(名技)는 없다.”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심지어 명나라 말기 중국을 찾아왔던 마테오리치도 “공공장소 곳곳에 정성껏 화장한 남자 기생 모양의 젊은이들이 있다. 일단의 사람들이 이들을 사들여 그들에게 거문고 타고, 노래하며, 춤추는 방법을 가르친 후에 아름답게 단장시켜 마치 아름다운 여자처럼 꾸며 놓는다. 그런 후 이 가련한 소년들은 정식으로 매음 활동을 시작한다.”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였으니 동성애의 성행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인 셈이다.

본서의 장점으로는 명청시대에 다방면에 엄청나게 많은 수량으로 산적해있는 문헌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박람(博覽)이 아니라면, 아무리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이 자리 잡아 검색하기 용이해졌다고 해도 본서와 같은 충실한 내용을 담아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명사(明史) 등의 정사와 금병매(金甁梅), 용양일사(龍陽逸史), 유림외사(儒林外史) 등 유명 문학작품을 제외하고도 일반인은 물론 학자들도 일일이 섭렵하기 힘든 수많은 작품들을 근거로 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꾸린 것은 저자의 능력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본서의 원서 明淸社會性愛風氣와 직접적인 대조를 하지 못하여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본서에 실려 있는 많은 삽화들은 독자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동성애의 역사에서 소홀히 여겨진 동양, 그중에서도 동양 여성간의 동성애에 대해서도 본서의 말미에서 짧게나마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 방면의 연구에 있어서 퍽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여러 장점을 두루 갖춘 본서지만 아쉬운 점도 다소 있다. 중국인 특유의 ‘중국적 역사관’에 의해 명청시대 동성애를 고대와 연결하려는 점은 다소 부담스럽다. ‘중국적 역사관’이란 소위 순환사관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반복과 어떤 현상에 대해 역사적 시원(始源)을 찾아서 그 유구함을 보려는 것인데 일장일단이 있다. 다만 본서에서 이러한 시각을 일부 취한 점은 약간의 견강부회가 아닐까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다양한 사료를 읽어내고 채취한 것은 연구에 있어서 훌륭한 일이지만 이것이 과연 “남색 혹은 동성애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꼭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없는 사료들까지 채록되어 있어서 연구와 그에 대한 결론의 근거로 구성된 것은 독자들의 이견을 야기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도 든다.

그렇지만 아쉽고 부족한 점보다도 훌륭하고 흥미로운 점이 더 많은 책이 바로 본서이다. 또한 서양으로 집중된 동성애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 대해 시선을 동양으로 돌리게 해주고 시사점을 제시해주는 책이 본서이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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