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5일(월)자로 국가인권위가 한센인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권고를 발표했다. 지금이야 ‘한센인’이라는 약간은 중화된 표현을 쓰고 있지만, 예전에는 “문둥병”이라는 거친 용어를 사용했었다. 그리고 이 한센인에 대한 갖은 악의적 소문이 만발했음도 사실이었다.

대표적인 악의적 소문이 자신들의 한센병을 고치기 위해 “어린 아기를 납치해 술을 담궈 먹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런 악의적인 소문을 만들어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소문을 만들어내는 이면에는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배제(排擠)’의 효과를 보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나에게 이 한센인에 대한 강한 추억 둘이 있다. 하나는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나를 고치기 위해 어머니께서 70년대 말 나를 업고 교통편이라고는 고작해야 고속버스(지금도 이것밖에 없다)밖에 없던 시절 전라남도 순천에서 내려 1시간이나 더 들어가야 했던 여수 애양 재활원에서 이들과 함께 지냈던 기억이다. 두 번째 기억은 내가 속해져 있던 교회 청년회에서 소록도로 여름 수련회를 갔을 때의 기억이다.

첫 번째 기억의 재활원은 이랬다.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이 병원은 처음에 한센인을 돌보기 위해 세워진 병원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손양원 목사님이 한센인들을 돌본 곳으로 유명하다. 그 병원 한 모퉁이에는 아직도 손양원 목사님과 그 아들들의 묘가 세워져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점차 늘어난 소아마비 환자들을 치료하고 수술하는 국내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최고의 병원이었다. 거기에 그 당시 서민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와 수술비가 일반 병원의 20%정도밖에 안 되었다.

소아마비 수술에서 최고라는 이 소문은 미국에서 직접 의사들이 방문해 환자들을 수술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병원비가 일반병원의 20%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거기에 세워진 병원 건물에서 비롯해 병원 내의 모든 물품들은 거의가 미국의 교회들이 선교의 일환으로 보내왔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라고는 알지도 못했던 초등학교 시절에도 한글이라고는 별로 보지 못했으니 이 말이 거짓은 아니었으리라.

나도 그 당시 미국 의료 선교사에 의해 수술을 받았고 속된 말로 찢어질 만큼 가난했던 우리 집안이 수술 받게 하기로 결정할 만큼 병원도 저렴했다. 저렴했다고 하지만 그 당시로서는 많은 출혈을 감당해야 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찾아간 여수 애양 재활원 병원은 태어나 몇 년이 안 되어 차마 눈으로 바라보기가 민망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내게 주었다.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이 남아 있는 사람이 없었고,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알아보기도 힘든 분들이 많았다.

내가 병원에서 지내며 곁 귀로 들었던 말 중에 “손가락이나 발가락, 눈이 떨어져 나가도 아프지 않다”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었다. 어린 나에게 그게 어느 정도로 충격이었는지 아직 감도 오지 않는다. 그냥 멍했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한 번 수술을 받으려면 최소한 몇 달은 지내야 했던 그곳에 교회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병원 근처에 있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병원에서도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 안쪽에 있는 것이었다.

한 번은 마을 안쪽에 있는 교회를 가게 되었다. 나도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이었고, 내가 타고 있던 휠체어를 밀어주었던 아이도 나와 2~3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둘이서 어디서 용기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수요예배를 드리기 위해 마을 교회를 가기로 작정하고 한참을 그렇게 마을 안쪽으로 갔었다.

마을 안쪽으로 향하는 길은 울창하게 우거진 숲 사이로 난 시멘트 도로였고, 여름 한 낮이었음에도 빛 몇 줄기가 다였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숲 군데군데 마치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집이 이어져 있었고 병원에서 보았던 한센인들보다 더 심한 분들이 지나가는 두 꼬마를 신기한 듯이 쳐다볼 때는 정말 무서웠었다. 그래서인지 그 아이와 난 열심히 휠체어를 몰고 갔었다.

그렇게 도착한 제법 큰 교회 건물은 마치 그 아이와 나에겐 구원의 방주 같았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들어간 교회 안의 광경은 더 가관이었다. 찬송이나 글을 읽기도 힘든 분들이 거의 생명을 걸고 노래하고 성서를 읽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한센인에 대한 기억은 소록도로 간 교회 청년 여름 수련회 때였다. 초등학교 시절 겪었던 경험이 있어서였을까? 다른 청년들보다 더 아무렇지도 않게 한센인들을 대할 수 있었다. 그 소록도 수련회에서 가슴 아팠던 기억은 수련회 아마 마지막 날에 한센인 집마다 방문하고 함께 예배드리는 순서 때 생긴 일이었다.

우리 일행을 기다리던 한 할머니께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자 일행이 찾아오면 주려고 삶아놓으신 계란을 들고 교회까지 찾아온 일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손가락 마디로 제대로 뭘 붙잡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던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그 계란을 주고 돌아가시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 뒷모습에 얼마나 미안함이 겹치던지.

사람에게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 등. 그래서 갖은 소문을 만들고 이야기를 퍼트린다. 악의까지 담아서 그렇게 한다.

혹 어떤 철학자는 서구 사회와 철학의 역사가 끊임없이 자신과 무엇을 동일시하려는 <동일화의 역사>라고 하던데. 그래서 또 어떤 철학자는 이러한 동일화의 욕망 때문에 남/여, 서양/동양, 백인/유색이라고 하며, 전자는 우월하고 후자는 열등하다는 허구적 이분법을 통한 <배제의 효과>를 만들어냈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이러한 배제의 효과가 넘쳐나는 사회이다. 자신과 같지 않음에서 발생하는 두려움을 배제라는 탁월한 수단을 가지고 처리하려고 한다. 어느 곳에 자신들의 생각과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빨간 딱지를 붙인다. 자신들과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설쳐댄다고.

저 한센인에게도, 저 평택의 어르신들께도, 저 서울역의 KTX 여승무원들에게도.

다행히 국가인권위가 한센인에 대한 인권침해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 및 보상 등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해 앞으로 이 분들에 대한 인권개선이 이루어질 것 같다. 바리기는 평택의 어르신들이나 KTX 여승무원들에게도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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