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강연을 맡은 강덕상 교수. ⓒ에큐메니안

19일 국회 토론회에 이어 20일 오후1시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에서 ‘간토 조선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간토학습회’가 열렸다.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와 달리 이번 학습모임은 일반 시민과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간토 조선인 학살 사건을 알리고자 마련됐다.

기장 교회와사회위원회 전병생 목사는 “대한민국 정부는 간토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에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아 희생자의 한을 풀어주지 못했으며, 재일 동포들의 차별에 대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역사에서 교훈 얻거나 반성하지 못한다면 분단 극복과 친일 청산, 민주사회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주제 강연을 맡은 강덕상 교수(시가현립대 명예교수)는 “일본이 민주화 되었다고 하지만 재일 동포들은 일본의 차별정책 하에서 여전히 해방되지 못했다.”며 “간토 대진재 조선인 학살에 대해 밝히는 것은 일본의 배외 정책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리고 민중운동의 촉매가 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강 교수는 학살 당시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분하는 것으로 ‘쥬고엔 고짓센(十五円五О錢)을 발음하도록 했으며, 이는 관헌에서 조선인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자경단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관헌이 주도했으며, 일본 정부나 군부의 주요직에 있던 사람들은 독립군 토벌, 3.1운동 학살에 참가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는 “군대, 경찰뿐만 아니라 자경단이 주체가 된 재향군인, 소방단원, 청년단의 멤버들은 갑오농민 전쟁, 의병 전쟁, 3·1운동 토벌에 참가한 조선에 대한 멸시와 적대감에 물들어 있는 충실한 ‘천황 교도’였다.”며 이는 “국가 범죄라기보다 민족에 의한 민족 범죄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각 지역별 학살현장 조사 보고’에서는 도쿄 스미다구, 요코하마, 치바 지역의 학살과 증언이 보고됐다. 니시자키 마사오, 야마모토 스미코, 히라카타 치에코 선생은 각각의 지역에서 간토 조선인 학살을 조사 및 발굴해온 활동가들로 많게는 40년 동안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일들을 진행해 오고 있었다.

▲ 도쿄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는 나시자키 마사오 선생. ⓒ에큐메니안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

도쿄에서 활동 중인 니시자키 마사오 선생은 1923년 9월1일 대지진이 발생하자 도쿄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3만8천명이 화재에 희생됐다고 한다. 화재에 의해 피난하던 중 조선인이 방화했거나 우물에 독약을 살포했다는 유언비어가 돌았고, 지진 당일 밤부터 조선인 학살이 자행됐다고 한다. 2~3일 후에는 치바현에서 군대까지 동원돼 학살이 벌어졌다.

게다가 희생된 유골을 경찰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어 발굴되었으며, 운반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마저도 1982년 ‘간토대진재 시 학살당한 조선인의 유골을 발굴하고 추도하는 모임’이 결성된 후 10년에 걸친 자료조사 덕분에 알려지게 된 사실이다.

마사오 씨가 찾아낸 증언 중 신창범 씨는 4일 아침2시경 자경단이 피난민을 일일이 확인해 조선인을 가려내어 일본도와 쇠갈고리를 휘둘러 학살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평소에 알던 젠이치라는 사람이 자경단이 하는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 자신에게 ‘통역해 달라’고 소리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본도로 죽임을 당했다. 무서워진 신 씨는 동생과 정신없이 도망쳤지만 발각되어 자경단과 격투 끝에 정신을 잃었다. 그 후 신 씨는 학살당한 시체가 모아져 있던 경찰서에서 동생에 의해 발견됐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증언을 전한 마사오 씨는 “대학생 때 간토 조선인 학살에 대해 듣게 되면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기에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고 한다. 마사오 선생은 현재 스미다구 학살 현장에 추도비를 세운 후, 바로 옆에 집을 얻어 살고 있다. 그가 추도비 옆에서 사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추도비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우익들로부터 추도비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 요코하마 지역에서 활동 중인 야마모토 스미코 선생. ⓒ에큐메니안

바다를 걸어 다닐 정도로 많은 시체

스미코 씨는 교사 생활을 하던 중 조선인 요코하마 지역에서 조선인 학살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된 후 40여년을 조사해 오고 있다. 그는 “간토 조선인 학살이 일본 역사에서 사라지고 있다. ‘학살’이란 말은 ‘살해’로 바뀌고 군대와 경찰은 개입은 없었다고 한다.”며 일본 학교 속에서 재일 동포를 위한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며, 이는 일본 아이들과 재일 동포 아이들 모두를 위한 것임을 주장했다.

그녀는 요코하마 지역에서 7백여 명이 학살됐다고 하지만 숫자에 대한 정확한 증거나 자료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시신은 어디로 갔을까? 그녀는 의미 있는 증언을 전했다. 학살한 조선인의 시체를 바다에 버렸고 시체 위를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요코하마에서도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는 지진이 발생한 9월1일에 이미 발생해 있었으며 내용은 ‘조선인에 의한 방화, 강간, 독약 살포, 습격’ 등이었고 당시 경찰자료로 남아 있다. 내용은 ‘오후7시경 鮮人(조선인을 비하한 말) 200명 습래하여 방화, 강간, 우물에 독약의 의심 있음이란 유언비어가 코토부키경찰서 관내 나카무라쵸 및 아이자와야마모토 방면에서 전해짐’

이러한 내용의 유언비어는 공적 기관을 통해 전달됐으며 자경단과 경찰, 군대 등이 동원되어 조선인을 학살했다고 한다. 또한 학살은 강가나 철교 등지에서 벌어졌으며 심지어는 경찰서 내에서 학살은 서슴없이 벌어졌다.

그녀는 “자경단의 중심은 재향군인회로 청일과 러일전쟁, 3.1독립운동 탄압에서 조선인을 학살했던 군인”이라고 전했으며, 경찰과 군대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이미 조직된 점을 강조했다. 자경단은 진재 이전부터 경찰의 지도하에 자위단 등의 이름으로 활동해 왔고 무기를 소지해 왔으며, 유언비어가 유포된 후 즉각적으로 조선인 학살에 가담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치바 지역의 학살을 조사 중인 히라카타 치에코 선생. ⓒ에큐메니안

불하(拂下)된 조선인, 자경단에 학살

치에코 선생은 육군 나라시노 수용소에서 벌어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 증언했다. 그녀는 “유언비어가 돌아 조선인과 중국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육군 나라시노 수용소가 개설됐다.”며 하지만 “군대는 ‘조선인을 줄테니까 받으러 오라’고 지시하여 조선인을 자경단에게 넘겨 죽이게 한 사건의 사실이 곳곳에서 밝혀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2003년에 나온 헌병대 자료에 의하면 ‘조선말을 아는 상등병 3명을 사복으로 수용소에 파견, 조선인의 움직임을 빠짐없이 알아내게 하여 유력한 자료를 얻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그녀는 “수용소 내에 스파이를 침투시켜 조선인을 선별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선별된 조선인을 군대는 동사무소를 통해 자경단에 연락해 불하했으며, 자경단을 조선인을 받아 군의 명령대로 학살해 공유지에 묻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지역에서 발굴된 일기에서도 증언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치바 지역의 조선인 학살을 조사하던 중 마을 사람들은 학살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조선인 희생자들을 오래전부터 공양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학살한 조선인을 묻은 곳 중 하나는 ‘나기노하라’라는 곳인데, 이곳에 대한 발굴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겨우 발굴에 대한 합의 끝에 1998년 9월, 매스컴과 외부인의 철저한 통제 속에서 유골을 발굴했고 유골은 다카츠 칸논지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학살이 일어난 지 75년 만이었다.

그녀는 “동일본대진재를 통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신화가 새빨간 거짓이었음이 증명됐다. 형태를 바꾼 유언비어가 국민들을 놀아나게 한 것이다.”며 “역사의 사실을 밝히고 드러내는 것은 한국을 위한 것만이 아닌 우리 일본인들의 역사, 우리 자신들의 역사이기에 우리가 짊어져야할 짐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4시간에 걸친 간토학습 모임은 참가자들의 질문과 응답으로 이어졌으며, 특별법 제정의 중요성과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활동들을 함께 다짐하며 일정을 정리했다.

▲ 1923한일재일시민연대는 7월 2일 '간토 조선인 학살지역'을 방문할 계획이다. ⓒ에큐메니안

고수봉  gogo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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