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락하는 사회적 신뢰도에 직면한 한국 교회의 역할과 방향을 제시한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주년 사회선언문에 대한 릴레이 공개 토론회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경청과 응답”을 주제로 지난 9월 1일(월) 광주YMCA(광주시 동구)에 이어, 9월 22일(월) 영남신학대학교(경산시 소재)에서 2차 토론회가 개최됐다.
NCCK와 NCCK 100주년 기념사업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2차 토론회는 김명실 교수(영남신대)의 사회로 진행됐다. 송진순 교수(이화여대, 한국기독교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은옥 목사(대구NCC, 당산교회 담임), 김민 학생(영남신대원생)이 발제했으며, 조별 토론 및 발표가 이어졌다.
발제 1 | 송진순 교수
신뢰 잃은 한국교회, 사회선언문으로 길을 묻다 … 집필자 송진순 교수, 고민의 과정 밝혀
“성소수자 문제 등 내부 합의 어려워 … 풀뿌리 교회와 소통이 가장 큰 과제”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집필진 중 한 명인 송진순 교수는 “사회선언문이 무엇이며, 신뢰를 잃어가는 한국 교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정의하는 것부터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집필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송 교수는 선언문 작성 과정에서 마주한 세 가지 핵심 난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선언문의 정체성 문제, 둘째는 소위 '에큐메니컬 운동'이 일반 교회나 풀뿌리 단체와 소통하지 못한다는 비판 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제, 셋째는 소수의 집필진이 한국 교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가 하는 '대표성' 문제였다.
그는 선언문의 신학적 토대로 ▲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Missio Dei), ▲ 정의·평화·창조세계보전(WCC 핵심 가치), ▲ 사회적 약자를 향한 ‘주변부로부터의 선교’ 등을 제시했다. 또한 “1932년 남녀평등, 노동권 보장 등 시대를 앞선 내용을 담았던 ‘사회 신조’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했다”며 교회의 사회 참여 전통을 강조했다.
특히 송 교수는 집필 과정에서 겪었던 내부 쟁점들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가장 깊은 고민이었던 지점은 성소수자 문제였다”면서 “적극적으로 담아내기에는 교단 간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고 밝혔다.
수차례 논의 끝에 집필진은 해당 의제를 직접 명시하는 대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라는 포괄적 표현으로 담아내고 미래의 논의 과제로 남겨두는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과거 ‘사회 신조’의 반공주의적 배경에 대한 비판적 성찰 부족, NCCK의 활동을 자화자찬하는 것처럼 비칠 우려 등도 주요 쟁점이었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선언문은 완결된 문서가 아니라 앞으로 100년을 향한 대화의 시작점”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100년의 성과와 한계를 직시하고, 경청과 대화의 자세로 더 많은 실천적 노력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
발제 2 | 김은옥 목사
“신학적 선언보다 구체적 돌봄이 필요”… 소멸 위기 농촌 목회자의 절박한 호소
NCCK 사회선언문 토론회서 영덕 김은옥 목사, 농촌 현실과 담론의 괴리 지적
이어진 발제에서 NCCK 100주년 사회선언문에 대해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 주민들에게는 신학적 선언보다 구체적인 돌봄과 지원이 더 절실하다”는 현장 목회자의 날카로운 문제제기가 나왔다. 경북 영덕군 달산면에서 사역하는 김은옥 목사(대구NCC, 달산교회 담임)는 선언문이 담고 있는 거시적 담론과 농촌이 직면한 미시적 현실 사이의 큰 간극을 지적했다.
김 목사는 자신이 사역하는 영덕이 ‘향후 20년 내 인구 소멸 지역’으로 지정된 현실을 소개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씨족 중심의 배타적 문화로 귀촌인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갈등이 심각하다”며 “마을에 들어오려면 3년은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공동체 붕괴의 현실을 전했다.
또한 청정 자연으로 알려진 이면에 송전탑과 거대 풍력발전소가 들어서며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으며, 기후 변화로 파종 시기조차 혼란스러운 농민들의 심정은 “너무나 불안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목사는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사회선언문이 강조하는 생명, 평화, 정의의 가치는 농촌에 큰 희망을 주는 언어임이 분명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분명히 했다. "주민들의 절박한 삶의 문제 앞에서 신학적 언어는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며 "교회는 선언에 앞서 산불과 같은 재난, 고령화로 인한 돌봄 문제에 실질적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회의 역할로 ▲세대와 귀촌인-원주민 간의 갈등을 치유하는 화해의 중심 역할 ▲추상적 구호가 아닌 실질적 돌봄 제공 ▲'빈집을 활용한 청년 주택'과 같은 대안을 통해 농촌이 희망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비전 제시를 제언했다.
이날 김 목사의 발표는 사회선언문이라는 거대 담론이 현장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내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과제를 제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발제 3 | 김민 학생(영신대 신대원생)
“말이 아닌 실천으로”… NCCK 선언문, 청년 세대 향한 책임과 약속 강조
토론회 참가자, “절망에 익숙한 청년들과 함께 나아가는 이정표 돼야”
토론회 마지막 발제자 김민(영남신대 신대원) 학생은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는 시대 상황 속에서 발표된 NCCK 100주년 사회선언문이 절망에 익숙한 청년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실천적 약속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국의 드론이 국경을 넘나들며 전쟁의 위기를 실감하는 시기에 발표된 선언문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며 시대적 배경을 언급했다.
그는 이번 선언문을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새롭게 성찰하는 ‘의미 있는 이정표이자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과거의 영광과 부끄러움을 모두 인정하고, 우리 청년 세대와 함께 나아가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우리 청년들은 포기와 절망에 익숙하지만, 신앙의 전통은 희망과 소망을 가르친다”며 부활의 신앙을 근거로 교회가 청년들에게 희망의 근거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선언문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실천을 제시했다. “이 선언문은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며 “정의, 평화, 생명의 가치가 우리 삶의 현장에서 온전히 구현되기를 소망한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중앙의 선언, 지방의 응답… 영남에서 찾은 희망의 불씨
한편 총평을 맡은 김명실 교수는 “보수적인 토양의 영남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깊은 공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신학생들이 NCCK 사회선언문에 대해 부정적 선입견 없이 오히려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을 확인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앙이 아닌 지방, 도시가 아닌 농어촌의 관점에서 구체적인 문제들을 제기해준 것도 값진 소득”이라며 “영남지역 NCCK 활동의 미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조별 발표에서는 다양한 이슈들이 제기됐으며, 그 중에서도 ‘지방 인구 소멸’ 문제가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참석자들은 NCCK가 청년들의 안정적인 취업, 결혼, 육아 문제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모았다.
또한 대사회적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과 동시에 교회 내부에서부터 100주년 사회선언문의 정신을 실현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이번 토론회는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지역의 현실적인 고민 속에서 모색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