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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 감 3<안상님의 살아온 이야기-1997.1.26>
안상님 | 승인 2015.02.11 15:23

1987년이 저무는 날 이사를 했는데 그 전 날까지 마치기로 했던 보일러 공사가 끝나지 않아서 냉방에서 자고 새해를 맞았다. 그 편안한 아파트를 버리고 와서 난데없는 냉골신세가 되다니! 두꺼운 세타며 오리털 잠바를 껴입고 집안에서 털 부츠를 신어도 온 몸이 꽁꽁 얼었는데 아침햇살이 펴지면서 그 따듯함이라니! 나는 태어나서 그때 처음으로 햇볕의 고마움을 깨달은 것 같았다. 아! 하나님이 주시는 땔감이구나! 자연은 얼마나 신비한가? 그 춥던 몸이 녹기 시작하고 이 엄동설한에도 살길이 있다는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다. 이 집은 연탄 보일러였는데 하루에 32장씩 땐다고 했다. 아무리 내가 좋아서 택한 집이라고 해도 연탄을 하루에 32장이나 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보일러만 기름용으로 교체하기로 했고, 아주 간단한 공사로 여겼던 것이었다. 보일러 기사는 신년휴가도 없이 하루 종일 일을 해야했다. 공사는 다 끝났는데도 보일러 교체하느라고 빼버린 물을 다시 채우는데 온 종일이 걸렸다. 지금 생각하니 상수도가 오래 된 것이 더 문제였을 것이다. 수압이 낮아 물이 졸졸 흐르는 정도였으니까. 바로 얼마 전에 상수도 파이프를 다 새로 갈았더니 지금은 물이 콸콸 쏟아진다.

보일러가 가동되니 온 집안이 따듯해서 살 것 같았다. 며칠 후 뒷집에 산다는 노인이 찾아왔다. 우리가 이사 온 후로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사연인 즉 우리 보일러 소리가 그 집 벽을 울려서 시끄럽다는 것 이였다. 수리공을 불러서 두꺼운 스트로프를 그 집 벽에다 대고 시멘트 벽돌을 쌓아 벽을 발랐다. 이 정도면 소리가 안 날 것이라고 했다. 며칠 있으니 그 할아버지가 또 찾아와서 연탄아궁이에서 물이 나서 불이 꺼진다고 했다. 우리 집 공사 후에 그러니까 우리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었다. 밤 열한 시가 넘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잠을 못자서 골치가 아프니 보일러를 끄라는 것이었다. 그 밤은 보일러를 끄고 지냈다. 노인네와 싸울 수도 없고 우리는 처음 이사 온 사람이라 대문 앞에서 소리소리 지르는 것을 그대로 당하고만 있었다. 그 노인은 온 동네에서 소리 지르기고 싸우기로 유명해서 그 집에는 세 드는 사람이 몇 달을 못산다고 했다. 몇 번이나 그러기에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느냐 고 하니까 저녁 8시부터 아침 7시까지는 보일러를 틀지 말라고 했다. 참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지만 매일 와서 소리 지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 낮에 보일러를 켜놓고 밤에는 끄면서 그 겨울을 났다. 연탄아궁이에서 물이 나온다는 말도 또 와서 하기에 기술자 불러다가 고치면 그 비용을 우리가 물어주겠다고 했다. 또 하루는 그 옆집 할머니가 담 너머로 나를 보더니 자기는 밤에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집 뒤꼍에 10 드럼짜리 기름통을 들여놨는데 그 벽과 할머니네 마당이 붙어있으니까 그 기름통에서 불이 날까봐 무서워서 그렇다는 것이다. 보일러 공사하는 사람이 안전하다고 했고 또 겨울이어서 땅을 팔 수가 없어서 그랬다고 해도 몇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했다. 할 수 없이 그 봄에 땅을 파고 그 기름통을 묻었다. 이래저래 공사비는 이중 삼중으로 들어갔다.

집을 보러 왔을 때는 무심했는데 이사 와서 보니 부엌이 하도 춥기에 천정 위로 올라가보니 지붕이 썬 라이트라는 플라스틱 한 겹이었다. 부엌 바닥에도 온수 파이프를 깔아서 안방처럼 따듯하게 지내던 나로서는 기가 찬 일이었다.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이른 가을 이였으니 보일러를 갈면 되겠다는 생각만 하였던 것이다. 무슨 집을 이렇게 허술하게 지었나 했지만 부엌에 온수 보일러가 있었으니 연탄불이 항상 있어서 그리 춥지 않았을 것이었다. 우리가 보일러를 바꾸면서 온수 보일러를 다 뜯어버렸으니 불 끼라고는 가스 렌지를 쓸 때뿐이었다. 그 열기로는 부엌이 따듯해질 리 없으니 달리 난방을 마련해야 했다. 마침 전기 라지에터가 수입되어 깨끗하고 실용적이라고 하기에 알아보니 우리 부엌 크기면 월 30,000이면 된단다. 그런데 한 달 전기요금이 10만원이 나왔다. 웬 일인가 했더니 사무실에서 낮에 만 쓰는 것으로 8시간 기준이라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낮에만 조금씩 켜 놓았으니 한데나 마찬가지였다.

1988년 늦여름에 나는 신문에서 심야전기 광고를 봤다. 밤에 전기 사용량이 적어서 남아도는 전기로 물을 덥혀두고 난방을 하는 것이었다. 그 전 해에 독일에 갔을 떼 심야전기로 난방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이제 우리나라에도 있구나 싶어서 반가웠다. 소리도 없고 공해도 없다니 이 얼마나 구세주 같은 소리인가? 이제 겨울이 되면 또 기름보일러 때문에 뒷집 할아버지한테서 곤욕을 치를 일이 끔찍스러웠는데. 나는 업자를 불러서 공사비며 사용상의 여러 가지 장단점을 물어 보았다. 한전이 추천하는 업체로서 한전에서는 심아 전기 홍보 차원에서 전력시설도 무료로 해주고 설비책임을 진다고 했다. 뜨거운 물을 저장하는 탱크는 집에 와서 제작해야 한다면서 그 탱크를 세울 기반시설을 미리 해 놔야한다고 했다. 안방 서쪽으로 보일러실이 있었는데 그 만한 공간이면 충분하다며 1메타 깊이, 1메타 넓이, 2메타 길이로 파서 시멘트를 바르고 방수까지 해 노란다. 동네 업자를 불러서 일 년도 안 된 기름보일러를 다 철거하고 그 밑을 파고 방수까지 싹 해 놨다. 그러나 막상 탱크를 만들 사람이 오더니 그 공간은 턱도 없이 작다면서 안방 뒤의 두 평 남짓한 공간이 다 필요하다고 다시 기반 시설을 했다. 철판을 용접해서 물탱크를 만드는데 두 사람이 사흘이나 걸렸다. 그래도 반영구적이라는 이 시설을 하는 것이니 그만한 어려움은 당연하다 싶었다. 거의 500만원의 거금을 들여서 심야전기보일러를 설치해 놓으니 아주 큰일을 치룬 기분 이였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딸의 방바닥이 새는 것처럼 거뭇해 지더니 그 자리가 자꾸만 넓어져 갔다. 우리가 이 집을 살 때 전 주인이 보일러 설치할 때 파이프를 아주 좋은 것으로 했으니 오래 쓸 것이라고 해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파이프가 새는가 보았다. 여름이 되어 그곳을 파보니 파이프가 삭아서 구명이 났다. 그 방을 고치면서 마룻바닥이던 부엌과 식당, 재래식 온돌이던 뒷방과 이층 방에 다 파이프를 깔았다. 아들이 결혼하게 되어 이층 방을 늘리고 파이프 공사를 또 했다. 3,500만원이라는 돈이 들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 돈이면 아파트 전세를 얻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 살면서 집을 고치려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닌데 조금조금 고치다보니 큰 공사가 되어버렸다. 단열처리를 하느라고 벽과 천정에 스트로브를 넣고 보드를 부쳤다. 한옥의 그 많은 창을 겹유리로 갈았다. 위풍이 거의 없이 따듯해졌다. 그래도 서재와 마루는 썰렁했다. 천정에 단열처리를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다 땔감을 줄이려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심야전기 보일러는 몇 번이나 고장이 나서 애를 먹였고 그 업자는 자취를 감추어 버려서 AS 받기가 어려웠다. 그 때마다 한전으로,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고치려고 하면 또 다른 업자가 와서는 먼저 업자가 잘못해놔서 다 다시 해야 한다거나 거기에 맞는 부품이 없다고 해서 한전에다 야단을 해서 겨우 얻어다 고쳐주기도 했다. 아직 초기 단계여서 일어나는 시행착오의 피해를 소비자가 고스란히 당한 셈이다. 그래도 새로 설치하는 난방을 심야전기에 연결해서 쓰려고 했더니 이 시공업자는 동 파이프는 가늘어서 거기 맞지 않는다며 가스 보일러를 고집했다. 그 때 우리 집에서 200메타 아래까지 도시가스가 들어와 있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면 심야전기 보다 비용이 덜 든다고 했다. 그래서 새로 하는 보일러는 가스보일러가 되어서 결국 또 두 가지 난방시설이 되었다. 그러나 곧 들어 오리라던 도시가스는 소식이 없고 그 후 5년이 넘게 프로판가스로 살았다. 추운 겨울에는 사흘에 한 통 씩 들어갔다. 돈도 많이 들지만 가스 가져 오라는 전화를 자주 해야 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다.

안상님  sangnim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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