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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임정 제1차 국무회의<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08.18 15:29

아침부터 장준하는 점심시간을 맞기까지 몸 둘 곳을 모르리 만큼 서둘렀다. 실로 「역사적인 모임」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름 하여 「환국임정 제1차 국무회의」.
1층 응접실을 회의장으로 꾸며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점심 식탁에 앉기까지 철저한 잡부가 되어야 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됐다.
특히 대여섯 시간은 되었을 것이다. 그 좋아하는 신문읽기, 기사오려 모으기도 다 잊어야했다. 점심 자리에 앉아서야 신문을 찾아 폈다. 장준하의 돌베개는 12월 6일자 신문지상에 보도된 기사들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신문에는 대서특필로 오늘(12월6일), 「임정」의 첫 번째로 개최될 국무회의에 대해서 그 예정보도가 「크로즈엎」 되고 있었다. 신문마다 격한 논조로 그 의의와 역사성을 늘어놓고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인색하지 아니했다. 오늘로서 시국의 어떤 전환이 이루어질 듯이 전면을 「임정」 관계기사로 채우고 있었고, 이런 신문의 흥분은 오히려 나에게 불안과 기대를 함께 안겨주었다. … 낮 3시, 상상외로 헤아릴 수 없는 보도진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내외 기자들이 큼지막한 사진기들을 치켜들고 몰려들었다. 역사적인 첫 국내 국무회의가 개최되는 것이다. 그 서러운 망명 끝에 개최되는 이날의 국무회의가 고국에서 당당히 열리기까지 그 얼마나 뼈아픈 시련을 모두 몸으로 겪어야 했는가? - 이제부터 경향 각 신문, 방송에 톱기사로 보도하였기 때문에 – 어떤 신문의 지면도 모두 이 첫 국내에서의 국무회의를 초대활자로 뽑지 않은 것이 없었다. - 전 국민의 시선도 경교장으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시간이 흐르다 멈추고, 흐르다 멈추고 하듯 감정의 여울을 지으며 시간이 다가왔다. 국무위원들이 먼저 들어와 착석하고 마침내 김구 주석과 이승만도 입장하였다. 이 자리에 이승만은 구미위원단의 단장이라는 이름으로 참석한 것이다.”

장준하는 이 회의장에 입장하는 국무위원들을 안내하면서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여간 불길한 예감이 아니었다. 이승만만을 예외로 김구 주석을 비롯해 모든 국무위원들이 이상스럽게도(?) 미군정 당국과 아주 불편한 심기를 지니고 있는 터에 개최되는 국무회의였기 때문이었다. 장준하의 입에서 참으로 불길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언제까지나 그 이름들이 국무위원들로 불려질 것인가?”

그것은 하나의 예언이었다. ‘국무위원’이라는 이름이 곧 헛소리가 될 거라는 장준하의 그 예언은 이후 머지않아 사실이 된다. 「임정」은 이미 미군정의지지 대상이 아니었으니……. 그 온 민족의 기대 속에서 개최된 환국임정 제1차 국무회의는 내부의 불협화음으로 아무 의미 없이 폐회되고 말았다. “우리 대부분의 국무위원들(귀국 제2진)은 바로 어제 입국한 터라 오늘은 보고를 듣는 것으로만 하고, 우리들도 국내 정정에 직접 접할 기회를 가진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는 강력한 제동엔 김구도, 이승만도 없었다. 장준하를 울게 한 것은 미군정의 냉대만이 아니었다. 오늘 아무 의미 없이 깨어져 버린 모임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오늘의 그 결과는 좀더 큰 것에 기인한 것이다. 객관적 정세를 보더라도 우선 미군정이 우리 「임정」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요. 주관적 여건으로 봐서도 그러한 벽을 뚫고서라도 「임정」 요인들 스스로가 일치단결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장준하는 길을 잃는 듯, 길이 막히는 듯 했다. 결정적으로 ‘김구 중심의 대한민국’의 불가능이 점쳐져 오는 것이었다. 일순 짙은 외로움이 전신을 엄습했다. 12월 19일, 서울 운동장에서 「임시정부개선(凱旋)환영회」가 개최되었다. 임시정부 요원들은 물론 국내의 모든 지도층 인사들이 참여하는 환영회였다. 개선(凱旋)? 장준하는 도저히 그 대회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개선이라니……. 장준하에게 있어 「임정」의 환국은 개선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의 장준하에겐 그랬다. 장준하의 양심이 「임정」의 귀국을 「개선」이라하는데 허락되지 않았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그 환영회의 자리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장준하의 심정을 알아챈 것은 노능서였다.

   
▲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 환영대회

“장 대위, 환영회라지 않나. 우리도 가야지.”
“다녀오게나. 난 몸이 좀 좋지 않아. 좀 쉬어야겠어.” 장준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노능서, 노능서는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듯 아주 조용히 경교장을 빠져 나갔다. 왠지 서러웠다. 노능서 마저 장준하를 떠났고, 홀로 남으면서 장준하는 울기 시작했다. 서러웠다. 장준하가 그의 평생에 가장 서러웠다는 경우였다.

왜 였을까? 장준하는 천상천하에 홀로 있는 것 같았다. 광복군 청년 장교 장준하의 최초·최후의 기대와 의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였고, 「한국 광복군」이었다. 그런데 지금 장준하는 역사와 자신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어디 있는 것인가?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는 어디에 있는가?

매일매일 이어지는 「임정」 분위기가 싫어진다. 아버지 장석인의 품성을 쫓아 청교도적인 삶을 스스로 서원했던 장준하는 분명한 자주 독립국가의 실현보다도 중경에 있을 때보다 더 하다고 느껴지는 자파의 세력 확장을 위해 광분하는 국무위원들, 요원들의 행태가 더 할 수 없이 분노스러워 간다.

귀국에는 환영회니, 위로회니 하면서 밖으로부터의 연회나 주석이 이루어지던 것이 이제는 국문위원들 쪽에서 외부에 능력있다 여겨지는 인사들과 접선 「임정」 외의 것으로 변절되어 간다. 그 사이 최기일이 다시 다녀갔다. 일부러 준하 형을 만나러온 최기일은 뭔가 좀 망설이더니 아주 무겁게 입을 여는 것이었다.

“장 형님, 난 아무래도 이화장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서요.” 참 말은 해석을 요하지 않는다 했다. 참 말에 무슨 해석이 필요하겠는가! 요 며칠 사이 장준의 마음이 그랬다. 김구 또한 「임정의 주석」에서 한독당의 당수로 형편없는 추락이 분명해져 오고 있는데……. 그리고 최기일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장준하 역시…….

“일 다운 일을 해야할 것이 아니냐?”(돌베게 p499. 삼중당 1971)
장준하가 하늘로부터 입은 큰 은혜가 있었다. 그것은 실로 위대한 축복이었다. 거암의 장애에 부딪힐 때마다 위로 솟구치는 것이었다. 비약이었다. 경교장을 떠나야 한다는 심기(心起)! 그 해방 전후의 공간에서 김구는 거의 신격화의 지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민족의 우러름 속에 있는 거인이었다.

그런데 지금 장준하는 그 거인을 벗어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장준하의 말대로 김구가 싫어서도 더구나 변질해서도 아니었다. 국정의 장악에 실패한다면 실패하는데로 그 거인 곁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괴롭혀 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모든 인생이 그러하듯이 장준하에게는 “장준하의 삶”이 있었다. 괴롭고 가슴 아픈 나날이었다. 그렇게 그런 중에 역사의 해 1945년이 갔고, 46년 새해가 왔다. 46년 1월 어느 날, 경교장 비서실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노능서가 그 전화를 받았다. 장 비서를 찾는 전화였다. “네, 누구십니까? 제가 장준하입니다만…….”

“준하야, 나 애비다.” 장준하에게 그것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천둥치는 소리였다. 아버지 장석인이 어머니 김경문(金京文과) 두 아우 명하(明河)와 익하(益河)를 데리고 월남을 해온 것이었다. 장석인은 자신의 아들 준하가 지금 경교장에 김구 주석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는 터였다.

장석인은 아들 준하가 며느리 희숙의 안부를 묻기 전에 먼저 아들 준하를 위로했다. “네 아내는 함께 못 왔지만 곧 내려올게다. 내가 내려오면서 너의 장모와 아내를 만나 깊은 이야기를 듣고 왔다. 우선은 염려가 되겠다만 몇 달만 기다리면 틀림없이 모두 내려 올꺼다.” 아버지가 월남해서 하셨단 말씀대로 4월 초순경 그렇게 애타하던 아내 희숙이 장모이신 노선삼(盧仙三) 여사와 월남에 성공해 서울에 모이게 됐다. 너무 좋았다. 정말 기뻤다. 그러나 장준하는 개인이 아니었다. 한국 광복군 대위이면서 「임정」 김구 주석의 비서다. 맘대로 찾아 달려가 만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장준하의 공인의식이었다.

장준하는 4월 그믐 무렵 조용히 김구 주석을 뵙고 2,3일 정동의 휴가를 요청했다. 월남한 가족과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장준하는 김구로부터 의외의 답변을 듣게 된다. “장 목사, 아내를 한번 부르게나, 나도 한번 보고 싶군…….” 장준하의 칭호는 여전히 장 목사였다. 장준하도 놀랐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희숙은 정말이지 몸둘바를 몰랐다. 장준하에 대한 김구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 것인가를 증거해 주는 대목이었다. 김희숙은 마치 죄인이라도 되는 듯 불려와 김구 앞에 섰다.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자네는 참 귀한 신랑을 두었어, 잘 살아야지.”그러면서 김구는 자신이 끼고 있던 금반지를 빼어내 김희숙의 손을 이끌어 그의 손가락에 꼬옥 끼워주었다. 김희숙은 온천지가 깜깜했다. 한 동안 멍했다. 김희숙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옆을 돌아보니, 그 잘난 얼굴의 신랑이 방긋이 웃고 있었다. 그 금반지는 「임정의 환국」을 축하하는 봉영회에서 김구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곧 장준하는 그 김구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필자 소개>

   
 
문대골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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