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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조선에 돌아오다 3<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08.06 17:29

장준하. 그 “글”의 사람

분명히 “친해하는 동포 여러분”하는 백범의 귀국성명 첫소리는 들었는데, 그 다음 말은 듣질 못했다. 2분 동안의 인사였으니 엎드려져 있었던 시간은 5분 정도였을까? 장준하의 「돌베게」가 전하는 대로는 백범으로부터 “장목사, 장목사가 이 2분짜리 귀국 성명 원고를 써 줘야겠어.2분이야.” 하는 명을 받고, 못 견딜 것만큼 떨리는 기분이었지만 그 백범의 명은 마치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명으로 임하는 것이었다. 장준하는 ‘붓을 옮기기 시작하여 한 오 분 안에“그 성명문을 써냈다고 했다.

장준하의 나이 스물일곱 되는 해였다. 내가 쓴 귀국성명문이 저 큰 이름의 육성으로 정말 방송이 될 것인가? 된다는 것인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 것이 아니라 전신을 실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저녁 8시 정작 “친애하는 동포여러분” 하는 바로 장준하 자신이 쓴 그 귀국성명문이 민족의 큰 지도자의 육성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라디오 앞에 엎디어져버린 장준하는 격한 감정에 휩싸여 다음 말은 바로 듣지 못한 체 흘려버려야 했다.

하늘은 눌리고 채이고 처지는 것들 외에 또 하나 자신의 삶에 헌신하는 자들로 자기 백성을 삼는다. 하늘은 장준하를 고마워했다. 거의 미친 듯이 살아내는 순간순간의 그 삶의 자세 때문에.

   
 
그래서 하늘이 장준하에게 준 것이 ‘글’에 대한 사랑이요, 더 나아가 ‘글 쓰는 재주’였다. 하늘이 주었다? 아니다 “있어서” 더 받은 것이다. 하늘이 장준하에게 투자를 한 것이다. 장준하의 ‘글 장사’에 말이다. 그는 글에 있어 특별한 달란트를 가진 자였다.

귀국성명 발표를 하고 돌아온 백범이 특별히 장준하를 찾았다. 백범 앞에 선 장준하를 백범은 웃음 띤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아주 조용한 음성으로 답례(?)를 했다. “수고했네, 장 목사.”

김구와 장준하 그리고 이승만과 최기일(崔基一)

26일, 장준하는 어쩌면 한국 현대사에 새 장을 열뻔 했던 특별한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 친구는 최기일(崔基一)이라 했다. 나이는 장준하보다는 두 살 아래, 형 동생 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거쳐 장준하가 일군에 지원 입대하던 날까지 함께 지내온 학우요, 교우였다. 게다가 더한 것은 부모들까지의 관계였다. 최기일의 부모님들은 장준하의 아버지 장석인((張錫仁) 목사가 담임으로 봉사하는 경북 삭주대관교회의 장로요 집사였다. 그런데 이 최기일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이랬다.

23일 「임정」의 환국이 이루어지고, 24일 국내외 기자회견이 열렸다. 장준하의 「돌베게」는 거기 모여든 기자들 중 특별히 조선 일보기자인 김영진(金永鎭)과 서울 신문 기자인 이정순(李貞順)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후에 장준하가 「돌베게」를 쓸 때 그의 가슴에 고마운 사람들로 깊이 남아 있었음을 말해준다. 24일 김영진은 임정 취재의 그 북새판에서도 장준하의 인터뷰를 따로 가졌고, 이정순은 장준하의 광복군사관에 김구의 수행원으로서 해방조국에 환국하기까지의 상당분량의 수기를 인수해 바로 다음날 그 두기자의 신문에 보도한 내용이 바로 장준하, 최기일의 상봉을 이루게 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조선일보의 그 김영진이 김준엽과 경응대학교(慶應大學校) 동창인데다가 죽마고우라는 사실이었다. 최기일은 장준하가 일군 입대 차 고향을 떠날 때 역에까지 나와 장준하를 전송했었다. 장준하는 그 최기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기일은 25일치 조선일보와 서울 신문기사를 마치 경전을 읽는 심정으로 읽어 내렸다.

“아, 형이 살아있었구나!” 최기일은 도저히 그저 있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형이 김구주석의 비서라니.......”, 그것도 무슨 섭리 같았다.
“나는 「이화장」(이승만)의 사람인데 말이다!” 그것이 어쩌면 큰일을 벌릴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만난두 사람은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애인들처럼 덜썩 얼싸안고 어쩔 줄을 몰랐다. 장준하는 최기일을 만나서 놀랐고, 또 한 번 그가 이승만 박사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역사를 품은 사람은 다 그런 것인가? 최기일이 경교장의 장준하의 기사를 읽으면서부터 백범과 우남을 하나로 엮던 그 의기(意氣)를 장준하 역시 꼭 같이 흘리는 것이었다.

장준하와 최기일이 밑돌이 된다면 백범과 우남이 조국을 떠받히는 두 기둥으로 세워질 수 있지 않겠는가?

장준하의 ‘글’잔치

그러나 시간은 장준하에게 다음 일을 재촉했다. 최기일은 돌아갔고, 바로 이어 다시 장준하에겐 일감이 주어진다. 역시 “글”일이었다.

내일 온 종일에 걸쳐 국내의 원로 지도자들과 회담이 있다는 것이었다. 회담 대상은 송진우(宋鎭宇), 안재홍(安在鴻), 여운형(呂運亨),허헌(許憲)네 사람으로 회담형태는 개인별이라 했다. 그러니 철야를 해서라도 네 분의 사상, 정치적 주장을 명기한 신상명세를 작성, 내일 아침 주석께서 찾으시면 바로 대면, 브리핑을 하라는 것 이었다! 엄부장 으로부터의 지시였다.

장준하는 제 속으로 빙긋이 웃었다. 그것은 현실을 투시하며 준비하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그는 환국즉시 경교장에 들어서자마자 신문을 찾았고, 손에 잡히는 신문들마다 스크랩하기를 잊지 않았다. 여운형은 일본의 조선 총독부 정무총감 「엔도호」(遠藤•원등)정권인수 요청을 수락 「건국 준비 위원회」를 조직, 자신이 위원장에 추대되고 허헌이 부위원장에 선출되어 드디어 9월 2일, 서울여고 강당에서 「조선 인민 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을 선포한 인몰로 송진우는 출중한 민족, 민주주의를 숭앙하는 인물로, 사실은 일본 총독부로부터 여운형이 정권 인수요청을 받기 이전, 꼭 같은 요청을 받은 바 있었지만 완강히 거절했고, 이후에 전개되어가는 여운형 중심의 정치 세력에의 참여역시 거부하는 터 였다. 송진우의시각엔 여운형이 사회주의에 매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완전히 공산주의세력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었다. 그는 민주•민족세력을 제창하며 여운형의 정치세력에 반(反)하는 동력을 「국민대회소집준비위원회」(國民大會召集準備委員會)라는 이름으로 조직해 낸다.

장준하가 준비한 안재홍의 신상명세는 이랬다. 안재홍은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는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해 부위원장까지 지냈던 인물. 안재홍의 여운형에 대한 인식은 신선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날이 가면서 안재홍으로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난제에 부딪히게 된다. 여운형을 둘러싼 공산당 세력의 오만이었다. 송진우가 본 여운형의 정치세력의 문제점이 안재홍에게도 그대로 문제로 노출 된 것이다. 그는 건준을 떠났고, 바로 탄생하는 「조선국민당」 당수로 추대 되는가 했더니, 그 조선 국민당을 비롯한 「사회민주당」, 「민주공화당」등 6개 정장이 국민당이라는 이름으로 합당을 이루어 내 그 당수에 추대 된 것이다.

임정(臨政)의 하늘에 낀 먹구름

장준하는 이미 이 같은 모든 사건들을 일별로 일목 요연히 정리, 마치 사건일지(事件日誌)처럼 준비해 놓고 있었다. 김구가 개인회담으로 맞아야 할 마지막 한 사람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총리인 허헌이다.

   
▲ 허헌
장준하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인물이 여운형과 허헌이었다. 허헌은 특히 그랬다. 9월 6일 서울경기여고 강당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여렸고, 600여명의 대표가 모인 이 자리에서 「임시정부조직법」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드디어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건준」은 이제까지 진행해온 일체의 업무를 이 「인민공화국」에 일임했다. 곧 이어 이 자리에서 조선 인민공화국의 조각(組閣) 인선이 이루어져 주석 이승만, 부주석 여운형, 국무총리 허헌, 그리고 내무부장에 김구로 발표된 것이다. 이것이 장준하의 장(腸)을 뒤틀리게 했다.

“국무총리 허헌이 내무부장 김구를 만나러 온다…….”

장준하는 이후에 전개될 정쟁(政爭)이 두려웠다. 천하의 두려움을 모르는 장준하였음에도. 허헌이 김구를 면담한 후 공산주의 사상의 기자들을 통해 보도한 ‘김구 선생께서는 앞으로의 계획들을 조선 인민공화국과 협의 하에 진행키로 했다“는 내용들이 더욱 그랬다. 물론 그 같은 기사들은 허헌의 전략 하에 보도된 것들이었음은 몰론 이다. 장준하는 신문 스크랩과 함께 일목 요연히 정리한 자료들을 김구에게 전달했고, 집약된 4인 별 명세를 별지로 브리핑했다.

“잘 됐어. 수고했군. 장 목사는 4인 개별 회담에 별석(別席)할거라지?”
“네. 엄부장님으로부터 그렇게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김구의 국내의 4인 대표 개별 회담을 마쳤고, 이 회담을 통해 김구는 어쩌면 대단히 어두울 수도 있겠다 싶은 국내의 상황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장준하는 여전히 이를 악물고 있다.

“이승만 주석에 허헌 총리? 김구 내무?......”

임시정부환국기행렬(臨時政府換局旗行列行列)

그러나 그 먹구름이 확산되는 현장에 있으면서도 ‘장준하에게는 또 하나 분명히 위로가 있었다. 그 위로는 백범에게도 한결같았을 것이다. 그 위로란 민중들의 환호였다. 그랬다. 민중들은 임시정부를 자신들의 정부로 확신하고 있었다. 오늘로 12월 1일 「임시정부환국기행렬」(臨時政府還國旗行列)이 있단다. 장준하는 김구가 라디오 환국성명을 내던 날과는 달리 이쯤 아침부터 백범의 경호를 겸한 행렬에의 참여를 준비한다. 임시정부 환국봉영회(還國奉迎會)가 준비 한 행사였다. 장준하는 백범을 경호, 행렬의 출발지인 서울 운동장에 도착했다. 그것은 실로 장관이었다. 눈이 마구 내리고 있다.

그런데 이미 운집한 인파로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다음날 시내 일간지들은 “3만의 인파”였다고 보도했다.

<필자 소개>

   
 
문대골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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